진심에 일관된 콘셉트가 더해진다면

전국 축제 자랑(김혼비;박태하 에세이(민음사:2021)

by 릴리안

전국 다니며 지방 축제의 면면을 살펴본 '전국 축제 자랑'의 서문 '축제장 앞에서'에는 두 작가가 이 책을 어쩌다 쓰게 되었는지 나온다. 누구나 우리나라 축제를 자랑하겠다는 말에 갸웃할 꺼라 예상했나 보다. 여행지 소개 책도 아닌 에세이라니. 그래서 이 책이 더 끌렸다.


"김혼비와 박태하는 부부다. 김혼비는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느라 국내 여행을 다녀 본 경험이 많지 않고 '사람'에 관심이 많다. 박태하는 국내 여행은 좀 다녔지만 혼자 다니느라 어딜 가도 뻘쭘했고 '공간'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술을 먹으면 '한국 사람들은 왜 이럴까'와 '한국이라는 공간은 왜 이럴까'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여기서 '이렇다'는 긍정적 부정적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그것은 곧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K스러운'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곤 했다. 우리는 그 'K스러움'의 근원을 찾아, 그리고 김혼비의 국내 여행력 상승과 박태하의 뻘쭘 지수 하락을 위해, 정념과 관성이 교차하는 한국의 지역 축제를 쫓아다녀 보기로 했다."-축제장 앞에서 중에서


축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두 부부가 쫓아다녔다는 '정념과 관성'이 교차하는 지점이 나는 늘 어려웠다. 부부 중 굳이 나와 닮은꼴을 찾자면 '박태하'작가에 가깝다. 뻘쭘함이 너무 벅차다. 그러면서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섞어 '왜 이럴까'를 말한다. 친정에도 벌써 15년이나 된 지역축제가 있다. 처음 전화로 아버지가 지역 축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아버지는 많이 진지했고, 즐거워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축제를 구경하러 그즈음 집에 오면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고 말하셨다. 나는 조금 웃었다. 한국의 축제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동네를 풍경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뻘쭘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기 싫어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랑 거리를 찾아내어 외지인이 구경하러 오게 한다. 그때에 맞추어 지역특산물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더불어 지역의 소상공인도 살린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강릉단오제 같은 행사는 있었겠으나, 그 외에 다른 축제는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생겼다는 강한 추측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어렸을 때도 동네에 축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동네에 꽹과리 소리가 울렸다. 동네 아저씨들이 농악단이 되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꽹과리, 북, 장구를 들고 하얀 옷을 입고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고 다니셨다. 집집마다 음식을 나눠먹고 아이들은 농악단 구경에 신이 났었다. 한국의 축제는 그렇게 주민들이 모여 한 해의 농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 진짜 같았다. 특산품과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비슷한 지역축제가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김혼비, 박태하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외지인을 부르기 위한 알맹이 없어 보이는 이상한 축제라고 웃고, 외면만 했던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들은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를 탐험하며 축제 곳곳에 생생한 진심을 찾아주었다. 지금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한국의 축제는 서양의 감정적인 축제나 우리나라의 농업에 기반한 24절기를 위한 제례 같은 자연발생적인 축제가 아니다. 책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쇠락해가는 지방자치를 살리기 위해 비용이 적게 들면서 단기간에 업적을 자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겠다.


지방 소도시의 침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한때의 풍요를 누린 후 사람들이 빠져나간 탓에 유독 그림자가 크게 느껴지는 곳들이 있다. 처음 와 본 영산포가 그랬다. 일제가 수운을 이용한 곡물 수탈을 위해 일찌감치 등대를 설치할 만큼 번성했던 이곳은 옆 동네인 나주와 합쳐지며 그 하위 행정구역이 되었다. 그러니까 영산포는 ‘지방의 도심’도 아닌 ‘지방의 부도심’, 이촌향도의 직격탄도 더 빨리 세계 맞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 날인데도 동네에서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범상치 않은 오라를 뿜는 홍엇집들이 늘어선 ‘600년 전통 홍어의 거리’에도 오가는 발걸음이 없었다. p.67


박태하, 김혼비 작가는 그렇게 만들어진 축제를 외지인의 눈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기록한다. 지역주민이나 축제 참여자와 인터뷰를 한다거나, 축제의 모든 장소를 다니며 재차 확인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축제를 담기 위한 목적으로 갔으니 온전히 축제를 즐기는 것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냥 축제에 젖어들어 참여하고, 술 마시고, 잠을 자는 말 그대로 축제에 참여한 부부로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그들만의 눈으로 만난 반짝이는 진심과 훌륭한 콘셉트를 찾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읽고 있으면 가고 싶어 진다. 그건 아마도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성실히 지켜 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p. 280)'라는 본래 목적을 제대로 살려 무심한 듯, 재미있게, 애정을 담아 기록한 그들의 글 덕분일 것이다. 한국의 축제들, 그 안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진다. 이제 그 안에 들어가면 나는 완전히 다른 눈과 감각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나의 살던 고향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만드는 성실한 축제의 '흥'을 즐겨볼 예정이다.


우리가 이 축제에서 본 수많은 공연 중 가장 진심 넘치는 공연이 바로 여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합의된 흥을 서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우러나오는 흥을 주고받는 풍경. p. 131


'전국 축제 자랑'은 여러 축제를 다녀온 이야기를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축제는 이성적인 논리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감성을 움직이는 축제는 자연스러운 진심이 담겨야 가능하다. 하지만, 진심 하나만으로 축제가 만들어지고 호응을 받을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진심에 일관된 콘셉트가 더해져야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건 우리가 사는 한국,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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