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mor Fat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안 Jun 12. 2021

다른 생각을 기다린다.

출근길 매일 보이는 재개발 아파트를 보며 사라지고 있는 이전의 추억을 생각했었다. 점심을 먹는 중 그 길을 매일 지나는 다른 직장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길을 지나가는 우리는 동시에 눈썹을 아래로 내리며 "너무 안타깝지 않아요.", "그죠. 그죠.", "나 아침 출근길에 사진 찍었잖아요.", "어머 나돈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내가 생각하는 안타까움과 결이 달랐다.


동료 1 "그 나무들 너무 안쓰럽지 않아요. 아직 수명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베어버리다니."

동료 2 "나무들을 뿌리 채 살려서 다른 곳에 옮겨 심는 것보다는 잘라서 버리는 것이 더 경제성이 좋으니까요.(이 분도 눈이 팔자로 내려앉았다. 재개발로 뿌리째 난도질당하는 나무들이 안타까우셨던 거다.)"

동료 1 "그러니까. 너무 안타까워."


동료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나무가 아름다웠고, 베어져 버리니 좀 안쓰러웠다. 꼭 저렇게 할 수밖에 없나 잠깐 생각했지만 나무에 관한 미련이 남아서 사진을 찍은 건 아니었다. 내 휴대폰 카메라의 초점은 앞으로 사라질 아파트 건물에 있었다.


"기억하는 소설"은 창비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읽고 글을 썼었다. 이전에는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도 독자 리뷰를 자주 보지 않았고, 어쩌다 본다 해도 책을 구매하기 전에 이 책을 살까 말까 할 때 참고용으로 보아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단 책을 받고, 읽고, 나만의 서평을 썼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출판사 리뷰부터 다른 사람들의 북리뷰 몇 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다시 좀 멍해졌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이렇게나 관점이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랬기 때문이다. 아주 다르진 않지만 조금씩 다르고, 특히나 결론은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리뷰어의 내용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내용도 이 책의 어떤 부분에는 있었고, 그런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는 점. 나는 그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은 그림 찾기에 자주 등장하는 야구공을 못 찾다가 찾은 것처럼 기뻤다.


그러고 보니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에서도 비슷한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같은 책을 읽고 각자가 책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비슷한 키워드도 나오지만 완전히 다른 키워드가 훨씬 많다. 어떤 키워드는 "그러네 나도 읽을 때 저 부분도 생각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네." 하는 것도 있고, 어떤 키워드는 읽었음에도 완전히 생소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함께 읽었던 책에 이해도 높아지고, 함께 읽은 사람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조금 더 끈끈해진다. 읽은 책과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과도.


새삼 세상에는 많고 많은 생각들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재개발되는 아파트 단지를 보고도, 책 한 권을 읽고도 사람들은 살아온 경험과 지금 처해져 있는 상황 같은 것들로 완전히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나 한 가지를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말, 문화적 상대성이라는 말이 현실적인 감각으로 와닿는 순간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도, 다른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조금 더 넓은 눈으로 세상과 책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도.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난 아침 출근길에는 오래된 아파트 건물과 함께 누렇게 색이 바랜 잘린 나무와, 아직 뽑히지 않아 싱싱함을 자랑하는 한 그루의 장미 덩굴이 보인다. 어쩐지 조금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생각으로 새롭게 맞이한 아침이. 나는 이제 사라져 가는 나무에도 눈을 돌리며 아쉬워하고 다른 방법으로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장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볼 때마다 고민하게 될 것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또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나는 조금 더 많은 것을 보듬는 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가는데 모래 한 알의 힘을 보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과 시작 사이의 어디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