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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un 16. 2021

냥이야 무슨 생각해? 릴리는?

이봐요,까망씨!(데이비드위즈너: 비룡소:2014)

"릴리야 네가 좋아할 만한 그림책을 발견했어. 이거 봐. 우리 집 냥이랑 똑같이 생긴 고양이가 나오는 책이야."

"엄마, 우리 집 냥이 안 닮았는데.."

"(책을 펴서 보여주며) 아니야 이것 봐 표지만 보면 얼굴이 까맣지만 배가 하얗잖아. 냥이랑 똑같이 않아?"

"아니야 엄마 다르게 생겼어."

"그래, 그래 그래서 안 닮아서 안 읽을 거야?"

"아니 읽을 거야..."

"엄마 이거 왜 글이 없어?"

"응. 그 책은 원래 글이 없이 읽는 책이야. 고양이랑 개미가 어떻게 말을 하겠니. 우주인이 하는 말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고."

"이래서 이렇게 이렇게 생긴 글자가 나오는 거야(손으로 허공을 마구 휘젓는다.)"

"응 외계인 말은 못 알아들으니까 그런 글씨야. 다 읽었어? 어땠어?"

"응.. 싫었어. 내가 싫어하는 개미가 나오잖아. 우리 집 옷장 밑에는 개미 없지?"

"있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우리 집 냥이가 까망씨 처럼 다 잡아 주지 않을까?"

"엄마! 우리 집 냥이는 아무것도 안 하잖아. 개미도 안 잡을 것 같은데.. 우리 집에 진짜 개미가 있는 거야?"

"없어 없어.. 릴리는 왜 개미가 싫어?"

"으~~ 징그럽잖아."


게슴츠레한 눈의 까망씨를 보자마자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코숏 턱시도 냥이가 생각났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고양이의 일상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만만한 물건만 보이면 신나게 축구 경기를 벌이다가 어딘가에 늘 골인을 시켜버리고 그것을 찾겠다고 주변을 정신없이 헤매는 냥이의 꼬리를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현관, 부엌 싱크대 아래 서랍장, 소파 밑에 골인시킨 물건들은 다 찾았는데, 우리 집 냉장고 아래에 골인시킨 물건들은 아마도 '이봐요 까망씨'에 나오는 옷장 아래처럼 먼지가 쌓인 채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우주선을 보고 뛰어가는 까망씨의 뒷모습은 또 어떻고. 절대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파리를 보며 마구 뛰어다니는 냥이가 딱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고심 끝에 사 온 고양이 장난감에는 언제나 무심하다. 진짜 무심한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집에 고양이를 키우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강아지는 좋음, 무서움, 싫음의 표현이 확실하다. 사람이 옆에 있으면 거의 깨어있고 가족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사랑을 퍼붓는다. 반면 냥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있으면 안겨들고 달려들면 도망간다. 그런 이것도 그때그때 너무 달라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가 아주 잘 기록되어있는 '이봐요 까망씨'를 함께 냥이를 키우는 딸과 공감하기 위해 권했는데...


아이가 그림책을 보는 눈은 완전히 달랐다. 일단 까망씨는 우리 집 냥이와 다르게 생겼다. 우리 집 냥이는 얼굴이 완전히 까맣지 않고 흰색과 까만색이 섞여있다. 얼굴의 생김새도 다르다. 종은 같을지 몰라도 생긴 모양이 다르고 하는 행동이 조금씩 다르다. 아이는 그런 것들을 찾아낸다. 아이에게 냥이는 동류의 어떤 고양이들 중에 한 마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냥이였던 것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 한 송이처럼. 그러니 엄마가 말하는 '닮았지'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글을 읽은 게 느려 늘 그림만 보던 아이가 이제는 글씨를 읽을 줄 안다고 글줄이 없는 그림책에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도 신기하다. 엄마가 한번 읽어주고 나면 두 번 세 번 그림만 보며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을 만들어내던 아이였는데. 그 시절이 다 가버려서 이제는 글씨가 없는 것에 아쉬워한다. 혼자서 그림을 보며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예뻐서 최대한 글씨를 늦게 알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다 알아버려서 그림 말고 글을 찾는 것이 혼자 조금 서운해졌다.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니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몰라서는 안 되는 나이라 더 늦출 수도 없다. 그래도 아쉽다.


이전에는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함께 보고 엄마가 질문하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또, 또 읽어줘'라고만 하던 아기였었다.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고 제법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기특했다. 하루하루 아이와 살아가는 날이 많아질수록 많이도 알아가는 기분이지만,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아는 그 아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냥이는 본래 말이 없는 동물이란다. 자기들끼리의 의사소통은 몸짓으로 이루어지며 인간과 살게 되면서 소리를 내면서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면 소통이 아닌 줄 아는 어리석은 집사를 위해 소리를 내어 주는 것이라 한다.  녀석의 우아한 몸짓을 보면 그런 것도 같으다. 정말 답답할 땐 그때그때 다른 소리들로 나를 부른다. 그럴 때 좀 미안해진다. 내가 얼마나 답답하게 굴었으면 저럴까 싶어서.  


냥이와 릴리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그림을 늘 보여준다. 그들에게 나도 그렇겠지. 그렇지만 대화를 통해(말로, 몸으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그리고 또 서로가 달라지고, 때때로 알려준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같이 사는데 크게 문제는 없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몰라도... 냥이가 어느 날 우주선을 발견했지만 내가 몰라도, 릴리가 어느 날 개미를 발견해도 징그러워하지 않게 된 걸 내가 몰라도 괜찮다. 국 가족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다.  우리는 자주 가족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친밀한 관계이긴 하겠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 또한 어느 곳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눈빛을 나누고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 될 때에야 비로소 가족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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