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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ul 03. 2021

어딘가에 내가 남는 것은

불멸(밀란 쿤데라:민음사:2010)

1부 ‘얼굴’의 1장


그 부인은 예순이나 예순다섯 살 쯤으로 보였다. 나는 어느 현대식 건물 맨 꼭대기 층 헬스클럽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그녀는 수영복 차림으로 풀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강사를 지나쳐 사오 미터쯤 갔을 때 문득 그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 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중략….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중략…. 나는 이상하리만치 감동했다. 그때 나의 뇌리에 아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녜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이름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에서 내가 쓴 소설책은 ‘만약 독자가 내 소설을 한 줄이라도 건너뛴다면 소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p. 533)’라고 말했다. 나는 되도록 행을 건너뛰지 않고 읽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이 책의 반절도 이해하지 못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자를 읽는 것과 이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는 책이었다고나 할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1부 1장에 내가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나는 이 장면만 생각하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작가가 만들어낸 아녜스가 내 앞에서 수영복을 입고 손을 흔드는 잔상을 일상 곳곳에서 만났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몸짓을 하는 아녜스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면도날(서머싯 몸)’처럼 작가가 극 중에 등장하지만,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면도날’의 첫 장을 읽어나가면 현실 어딘가에 실존해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면도날’에 등장하는 작가 서머싯 몸이 모든 등장인물에 비판과 칭찬을 적절히 하는 부분에서 인간적인 애정이 보이는데 이런 면들이 그들이 실존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불멸’은 책 안에 등장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마저도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무대에 서 있는 연극배우처럼 보이게 만든다. 불멸에서 작가 밀란 쿤데라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조롱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콕콕 찌르는 대상은 비단 등장인물인 아녜스, 아녜스의 남편 폴, 딸 브리지트, 동생 로라 등뿐만이 아니다. 불멸의 작가 괴테, 베토벤, 그들 사이에 있었던 한 여인 베티나, 밀란 쿤데라의 친구로 등장하는 아베나리우스도 비껴가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들 모두를 사랑했음이 느껴진다. 서머싯 몸의 애정이 아버지 같은 것이면, 밀란 쿤데라의 애정은 냉소적인 젊은 삼촌의 애정 같다.


보통의 소설은 기승전결을 따라 주인공은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고, 마구 흩어진 사건들이 어떻게 해결되는가가 궁금해서 읽게 된다. 그런데 ‘불멸’은 주인공 아녜스의 결말이 중간에 갑자기 나타나 독자의 허를 찌른다.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내가 두 석 장을 한꺼번에 잘못 읽었나 해서 다시 앞으로 가서 읽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줄거리는 계속되고, 독자의 궁금증도 해결해준다. 아녜스의 인생 이야기 자체도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신파답고 재미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1장 1부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나의 궁금증으로 마지막까지 끌고 간 이야기는 ‘어딘가에 내가 남는 것(불멸)’에 대한 ‘작가의 결론이 어떻게 날까?’였다.


불멸은 550페이지이다. 모두 7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얼굴은 주로 아녜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고독감을 느끼는 아녜스, 자신의 길이 보이지 않는 아녜스. 그러면서도 아녜스는 온전한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꿈꾼다. 아녜스의 집은 방이 4개지만 자신의 방은 없다. 남편은 거실을 아녜스의 공간으로 하라며 방해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아녜스는 ‘하지만 커다란 테이블이며 저녁 방문객들에게만 길든 의자 여덟 개가 있는 거실에서 어찌 편히 있을 수 있겠는가?’(p. 49)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2부 불멸로 가면 별안간 유명한 작가 괴테와 괴테의 많은 여인 중 하나인 베티나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3부 투쟁은 갑자기 1, 2, 3….으로 나가던 소제목이 사라지고 자매, 검은 선글라스, 육체, 덧셈과 뺄셈, 연상 여자 연하 남자 같은 소제목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소제목에는 아녜스나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그 제목에 적합한 정의를 내린다. 작가만의 생각이 들어간 정의들은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고 실소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4부 호모센티멘탈리스 괴테 이후에 등장한 베티나와 베토벤 같은 낭만주의를 표방하는 세대에 대한 대변을 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모 센티멘탈리스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가치로 정립한 사람으로 정의해야 한다. 감정이 하나의 가치로 간주되면 그때부터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느끼고 싶어 하며, 또한 우리가 모두 우리의 가치들에 긍지를 느끼는 만큼 우리의 감정들을 전시하고 하는 유혹이 커진다.’ p.314라고 적혀있다.


5부 우연과 6부 문자반은 아녜스와 관련 있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다시 연극 밖에서 설명만 하던 작가와 작가의 친구가 극 안의 인물로 등장한다. 7부 축복은 묘하게 1부 얼굴과 겹치며 마무리가 된다. ‘해리포터’가 멋진 이유는 끝도 없이 많다. 그중 하나가 매 편의 마지막에 착착 맞춰지는 퍼즐의 완성이다. 조앤 롤링이 거대한 한 편의 사건 퍼즐을 만들었다가 조각조각 내어 시의적절하게 독자에게 던져 주는 느낌이 말도 못 하게 짜릿했다. 그리고, 대충 읽어서 잊어버렸던 사건의 퍼즐을 쫓아 다시 앞쪽을 읽으며 감탄을 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라는 소설은 사유의 퍼즐 같다. 밀란 쿤데라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불멸의 덩어리를 마구잡이로 흩트려 놓고 독자가 찾도록 숨겨 놓았다. 곳곳에 숨어있는 그의 생각들을 발견할 때 묘한 희열을 느끼게 되는데 다 발견하지 못한 듯한 묘한 찝찝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의 냉소적인 질타나 몇몇 부분의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불멸’이 ‘사회적’인 부분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풍부하게 주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내가 세상에 남겨짐에서 ‘온전한 나 자신’ 하나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 각각의 사람에게 다르게 기록됐으며, 사진 속에 남겨진 나는 내가 아는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닌 나이기도 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어딘가, 누군가에게 ’ 기록됨‘ 또는 ’ 잊힘‘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불멸’은 세대의 변화, 권력의 변화, 가장 늦게 잊힐 것처럼 보이는 창작물들도 언젠간 인간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멸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살아있지만 잊히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잊힐까 봐 목소리를 내고 사진을 찍고 올린다. 그런 것들은 다시 우리를 옥죄인다. 수많은 거울에 나의 모든 모습이 비치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내가 만든 나는 아니다. 나의 손짓,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누군가가 생각하고 뱉어낸 어떤 것의 흔적일 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의 흔적을 계속 재생산하고 있다면 ’불멸‘은 존재하는 것인가?


불멸을 읽으며 영원불멸의 어떤 것, 무언가를 남기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베티나처럼 영원한 불멸을 꿈꾸기보다는 괴테의 부인 크리스티아네 같은 삶을 꿈꿔본다. 현실에 충실했고, 사람의 구하는 용기도 가졌던 여자. 머리는 땅으로 몸은 하늘 위로 올라가 있는 아녜스나, 머리는 하늘로 몸은 땅으로 내려가는 모습의 로라와 베티나로는 살고 싶지 않다. 몸을 땅 위에 세우고, 머리는 앞을 보며 걸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불멸에 등장하는 많은 책과 인용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의도한 바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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