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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ug 08. 2021

어린이를 존중하는 어른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사계절:2020)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p. 197


어린이 책 편집일을 하면서 어린이 책을 좋아하게 된 작가는 마침내 독서교실을 열었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놓은 어린이 책을 가지고 커리큘럼을 짜고 양육서를 공부하고, 어린이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 것인지까지 고민하고 계획하여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교실에서 만난 어린이들을 통해 작가님이 바라보는 세상은 조금 달라졌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정, 철저한 준비,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 이미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에세이를 읽어도 그렇지만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참 많은 나의 정보를 결국 독자에게 보여주게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을 내어 놓으려면 '나의 경험', '나의 주변', '나의 일상'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된다. 작가님의 삶을. 어린 시절 단칸방에 살았고, 지금은 남편과 둘이 살고 있으시다. 아이는 낳지 않기로 선택하셨다. 아이를 낳지 않음을 선택하였는데, 어린이책 편집을 하고 어린이 독서교실을 하면서 주변의 편견에 적잖이 시달렸던 것도 같다.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p. 16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하여 독서교실 일을 시작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계속해서 마음의 중심을 잘 잡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어린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면서 운영하고 있음이 책의 글들을 통해 느껴진다. 그런 글들을 읽으며 현재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공감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반성하기도 한다. 아이의 어떤 모습을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도 하고, 쉽게 무시해 버린 것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더 소중하게 존중하며 보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다짐 같은 걸 하기도 한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 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p. 20


책은 온도가 없다. 그런데도 '어린이라는 세계'를 다 읽고 나면 나보다 조금 더 온도가 높은 아이의 손을 잡았을 때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조금 작고, 따뜻하고 몰랑한 손의 감촉과 온도를 나는 좋아한다. 가끔 이대로 커지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을 정도로. 어린이를 어린이로 보는 눈을 가진 어른의 시선을  느낄 때면 내가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것은 좀 닮지 말았으면 싶었다. 한마디로 나는 기대도 걱정도 그냥 내 맘대로 하로 있었다. 이모도 이러니, 부모님들이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간다.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p. 91


한때 나도 내 아이가 나와 비슷한 나를 닮은 어린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이가 6살 무렵에는 앞으로 아이가 초중고를 지나며 겪을 나와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부터 앞섰었다. 유아기까지만 해도 아이는 부모와 성향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어린이가 되면서 조금씩 보인다. 아이와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의 사람이라는 것이. 아이는 나의 영향을 받았고, 남편의 영향을 받았고, 또 다른 주변 어른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간략으로 진행한 아이의 MBTI검사지를 받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ISFJ인데 아이는 ENTP였던 것이다.


그 무렵에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MBTI와 비슷하게 나왔다. 나는 2번 유형인데 아이는 7번 유형이었다. 나와 생각하는 방법,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다른 어린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날이 다른 방식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이전에는 아이를 내가 보는 틀에게 끼워 맞추려고 했었지만, 이때 깨달은 어떤 지점으로 시작하여하는 아이를 나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전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떤 부분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불편해지던 아이의 태도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은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면서 나의 어린이의 고유성을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그때의 나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리고 조금 더 건강하게 어린이를 만나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는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p. 253


김소영 작가의 책은 세상의 모든 어른이 읽어야 할 것 같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고 어린이를 존중하는 어른이 되려면 말이다. 책은 그렇게 어린이를 존중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돌보는 어른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 많은 어른들에게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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