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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ul 14. 2021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 175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명동 예술극장)

공연소개 |   국립극단

2017 퓰리처상 수상작

 지난해 온라인 극장을 뜨겁게 달군 <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 >이 관객들의 염원을 담아 다시 무대에 오른다. 두 번의 퓰리처상 수상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이자 동시대 가장 날카로운 지성 린 노티지의 완성도 높은 희곡으로, 거대 시스템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노동자들의 사투를 흡입력 있게 그려낸다. 노동문제와 인종차별 이슈를 과감히 드러낸 분명한 주제의식, 관록의 배우 박상원을 비롯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그려낼 연대와 대립, 그 속에 발견할 미래의 희망까지, 지금 꼭 봐야 할 무대가 찾아온다



명동 예술극장에 들렀다. 명동을 오가며 작고 우아한 이 건물에 여러 연극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명동을 오랜만에 들렀다. 연극 공연장은 스쳐 지나갔으며, 내가 명동에서 주로 했던 일은 친구와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약속의 시작점은 거의가 명동역 7번 출구에 있는 밀리오레 건물이나 그 맞은편 건물이었다. 두 건물이 모두 문을 닫았다. 상가들이 모두 빠져나간 건물은 한낮인데도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명동 예술극장을 향해 걸어가는 길 곳곳에 문을 닫은 상점, 토요일 한낮에 대로가 텅텅 비어있는 모습은 내가 아는 그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그 동네를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은 관광객은 아닐 텐데도 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스웨츠: 땀, 힘겨운 노동'은 보호관찰관이 두 청년을 인터뷰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한 때 아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얼굴을 보기만 해도 덜덜 떨리고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을 느낄 수 있다. 둘은 교도소에서 나온 후 서로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이야기를 보호관찰관에게 하고 있다. 그러다 둘이 실제로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정면으로 마주친 그들은 흠칫 놀라고 천천히 걸어와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진다. 긴장된 상황 속에서 갑자기 두 팔을 크게 벌려 포옹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8년 전인 2000년으로 돌아간다.


 시놉시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의 바(Bar). 스무 살 언저리부터 같은 공장에서 일해 온 신시아와 트레이시는 동료 제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지만 어딘가 냉랭한 분위기가 감돈다. 신시아가 관리자로 승진하면서 같은 자리에 지원했던 트레이시와 불편한 사이가 되었던 것. 갈등은 공장 라인이 순식간에 폐쇄되면서 절정에 달하고, 두 사람의 아들 크리스와 제이슨마저 일자리를 잃고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의 삶과 오랜 연대가 녹아 있는 그 '바'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공연소개 |   국립극단


공장 라인이 폐쇄된 이유는 공장이 비싼 미국 시민 정규직 노동자를 더 이상 고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는 연휴기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라인을 빼서 멕시코에 공장으로 옮긴다. 이제 반발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다. 회사는 끄떡없다.  가장 일찍 이 땅에 터를 잡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백인과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지만 온전한 주인은 되지 못한 흑인이 노조원들이다. 회사는 이미 노조원들은 알아볼 수 없는 스페인어로 파트타임 공고를 붙였고,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하려는 남미 이민자들은 넘쳐난다. 그렇지 않더라도 더 싸고 오래 일할 노동력이 멕시코 같은 남미지역에서 공장을 세우면 그만이다.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고 회사가 새롭게 파트타임을 구하면서 일자리를 잡게 된 사람 중 한 명이 '레딩의 바'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던 에반이다.


어쩐지 처음부터 좀 이상했다. 주요 무대는 공장 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바이고 그 바에 모인 사람들은 바를 지키는 매니저를 포함에서 모두 대화를 주고받는다. 딱 한 명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는 청년을 빼고. 파마머리를 하고 마른 몸에 큰 눈을 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청년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유령 같았다. 그런데 그 청년이 모두가 실직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파트타임으로 그들이 빠진 자리를 채우러 가자 모두들 그에게 화를 낸다.


그들은 멀어지고, 소리 지르고, 싸운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변했다고 말하며 비난한다. 그들이 뒤엉켜 비난하는 모습 뒤로 다양한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배우들의 연극과 뉴스를 함께 보고 있는 관객들은 모를 수 없다. 그들이 서로를 아프게 하며 무너지는 것이 그들 나쁜 사람이라 생겨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거대한 시스템을 검토하고 변화시켜야 하는데 서로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극 안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입체적이다. 175분의 러닝타임 동안 서로가 주고받는 자연스러운 대사만으로 그들의 양면적인 감정을 잘 나타낸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들 각자가 나빠지는 이유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으며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기업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꼬집는다. 극의 배경이 되는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벌어진 미국 내의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라는 거대 전염병 이 모두의 눈을 가려주면서 오히려 심화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반성하게 되었다. 연극을 보러 오는 길에 마주쳤던 외국인들에게 내가 보냈던 시선에 대해서. 그리고 시선을 돌려서 여전히 명동을 힘겹게 지키고 있는 상인들을 본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종종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진짜 이유를 모른 채 서로를 할퀸다. 그러지 않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이 연극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았다. 이렇게 좋은 연극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https://youtu.be/OsIYeC23U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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