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안 Mar 22. 2021

수박수영장

안녕달


 더운 여름 시골 마을에 수박수영장을 개장한다.  제일 먼저 수박수영장을 찾은 사람은 할아버지 한분이다. 할아버지는 사다리를 타고 수박 위로 올라가 수박씨 하나를 '쑥' 빼고는 그 안에 '쏙' 들어간다. 그리고 "음. 시원하다."라고 말한다. 표정이며 자세가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다.  하나둘 수박수영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구름 아저씨가 구름을 팔러 오신다. 먹구름은 샤워용, 하얀 구름은 햇볕 가리기 용이다.


 수박수영장을 읽고 있으면 일단 군침이 돈다. 여름이면 서걱서걱 베어먹던 수박 생각이 간절해지기 시작한다. 다음으론 들쩍지근해진다. 진짜로 수박수영장에 들어가면 어느새 몸이 끈적끈적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엄마 여기 들어갔다오면 끈적끈적하지 않아?'라고 말하는데 순간 수박을 먹고 난 뒤에 내 손에 남아 있던 끈적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단연 시원함이다. 파란 하늘과 초록색 나뭇잎과 수박의 검정 줄, 그리고 빨간 수박이 가득 그려져 있는 이 책은 책 자체가 여름이다. 그 사이 서걱서걱, 삭삭 같은 의성어는 뜨거운 여름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서 시원한 수박을 베어 먹던 그 시절 여름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우리 아이들에게 여름은 외가이다. 겁이 많은 두 아이는 놀이기구도 못 타고, 물놀이 가서도 깊은 물도 못 들어간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노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었던 두 아이... 얼마 전 외가에 산 아래 지하수를 끌어서 만든 작은 물놀이장이 개장했다. 어린이 놀이터 만한 그곳은 물의 깊이도 어른 무릎 정도이고, 작은 미끄럼틀이 전부이다. 그런데 두 아이는  처음에 그 미끄럼틀도 못 타고 엎어져도 물에 빠지지 않을 그곳에서 튜브를 타고 놀았다. 지하수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발을 담그고 있으면 머리 뿌리가 쭈뼡 서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외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마당에서 커다란 튜브와 김장할 때 쓰는 아주아주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오가며 노는 즐거움이다. 여기에는 사촌동생들도 합세한다. 그리고 얼마 전 외삼촌이 사놓은 해먹과, 외할아버지가 여기저기 버려진 나무들을 모아 설계도면 없이 뚝딱뚝딱 만든  꼬맹이 세명도 태울 수 있는 그네도 있다. 밤이면 옥상에 올라가 모기장을 치고 그 안에 선풍기와, 요강을 가져다 놓고 초등학이 된 아이들이 우리와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와 잠을 잔다. 거기에 끼고 싶어 유아들이 버텨보지만 도시와 다른 깜깜한 옥상이 무서워 결국 아래로 내려와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며 엄마 곁에서 잠이 든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러 서울로 올라왔을 때, 향수병이 생겼었다. 우리 집은 왜 서울에 없는가. 적어도 도시에 살았으면 이렇게 힘들게 부모님을, 고향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면서 외로워했더랬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친정이, 아이들의 외가가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가는 길이 멀고 힘들어서 울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무서워하던 아이들이 시골 여름 물놀이에 빠져 여름방학에 외가에 다녀오면 다시 내년 여름을 기다린다.  


큰애는 외가에 내려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나중에 집을 물려 달라고 말했다. 자식들이 모두 외지에 나가  사는데 그런 말을 해주는 손녀가 좋았던지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러마' 약속하셨다.  마당에 있는 흙도 파고, 겨울엔 딸기를 실컷 먹고, 봄에는 블루베리도 따서 먹고, 가을이면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는 곳. 마당 가득 뽑아놓은 배추와 무를 가지고 10명이나 되는 가족들이 마당에서 김장을 하는 곳.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곳. 10여분을 걸어가면 엄마가 다닌 초등학교가 이제는 폐교가 되어 야영장이 되어 있는 곳.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들을 읽으면 나는 친정이 풍경과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들도 수박수영장을 읽으며 외가가 떠올랐을까? 둘째 아이는 그냥 수박이 먹고 싶은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법 침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