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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r 17. 2021

마법 침대

존 버닝햄

존 버닝햄이라는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한다. 수채물감과 색연필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재료와 그림체로 그림책을 표현하는데 색감이 풍부하여 책을 읽고 있노라면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작가의 원화 전시회에서 큰 그림으로 볼 때는 소장하고 싶은 욕망이 득실득실하게 했다. 무표정한 주인공들과 어우러진 따뜻한 색감을 보고 있노라면 단전 아래에서 어쩐지 아련해진다. 작가님의 그림책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지각대장 존'이 있다. '지각 대장 존'을 처음 만났을 때 묘한 노란색에 반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마법 침대'는 아이가 커져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작은 침대 대신 새로운 침대를 사러 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새 침대를 사러 가는 길에 눈에 띈 중고가게, 그곳에서 사게 된 침대가 알고 보니 어디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법 침대였다. 새 침대 사라고 보냈더니 또 허름한 헌 침대를 사 온 아빠와 아들은 엄마와 할머니에게 혼이 난다. 그러나 조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날 밤 조지는 마법 침대의 주문을 우연히 알게 되고 침대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지각대장 존'하면 떠오르는 색이 존이 환상의 세계에 속했을 때 보이는 노란색이라면, 마법 침대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색은 침대를 타고 떠나는 조지의 뒤에 흐르는 색이다. 환상과 무서움이 공존하는 빨간색.


조지 가족은 여름휴가를 떠나고 그 사이 할머니는 조지의 침대를 새 침대로 바꿔 놓는다. 조지는 왜 자신의 침대를 마법 침대라고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조지에게 의견을 무시하고 침대를 바꿔 버렸을까? 그들은 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그 순간 조지는 굴복하지 않고 쓰레기장으로 가서 마법 침대를 찾아 다시 여행을 떠난다.  다시 침대에 올라탄 조지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지만 나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지각대장 존'에서 존은 마지막에 고릴라에게 잡힌 선생님에게 이 동네엔 고릴라가 살지 않아요. 하고 선생님을 구해주지 않는다. 작가 소개를 보면 존 버닝햄은 어린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상이 많은 조용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닐 서머힐 학교'를 다녔다고 적혀 있었다. 청년시절에는 병역을 기피했다고 한다. 버닝햄이 그리는 그림 속 아이들은 바가지 머리에  볼이 통통하고 수줍은 모습을 하고 있다. 지각대장 존을 보면서도 묘하게 아팠던 마음이 마법 침대를 보면 조금 더 구체화되는 기분이 든다.  내 머릿속에서 '버닝햄은 아이들은 사랑하지만 어른들을 사랑하진 않는구나. 여전히 아이에 세계에 환상의 세계에 있구나.' 같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존 버닝햄'의 타고난 성품일 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어떤 이유 때문에 생긴 걸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버닝햄은 좋은 그림은 그리지만 행복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 아름답고 환상적이지만 보고 있으면 어쩐지 추운 겨울 아주 예쁜 노을 아래 등을 구부리고 혼자 걷고 있는 사람이 떠오른다.


몇 년 전 미술관 관람 프로그램에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전시회를 보고, 그 둘의 관계를 들으며 "그 둘은 왜 헤어지지 않았을까요?"라고 설명해주시는 분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이 "두 사람은 아마 일반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보다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지 않았을까요?"라고 하셨었다. 누구나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삶이라니. 그런 생각이나 삶은 어쩌면 '그렇게 살아야겠다' 따로 결심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저 처음 만들어지면서부터 주어진 것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삶을 통해 그렇게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들이 훌륭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영감을 주는 것 좋은 일이지만, 스스로는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은 정말 힘들겠다.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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