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림 읽기

읽고 쓰기를 시작하면서

by 릴리안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p.447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012년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일본 추리소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한 문장으로 창제 수업의 문을 열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말 그대로 나미야 씨가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나미야 씨는 잡화를 팔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상담편지가 오기 시작한다. 그 편지에 나미야 씨가 답장을 주니 편지가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이 책에 왜 기적이라는 말이 붙었을까? 이야기는 나미야 씨가 상담을 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나미야 씨가 돌아가시고 폐가 수준이 되어버린 나미야 잡화점에 어느 날 밤 세명의 도둑이 숨어든다. 그런데 그 밤 오래전에 왔어야 하는 편지가 나미야 잡화점에 도착하고 도둑들은 고심 끝에 편지를 쓴 사람들에게 답장을 한다.


추리의 요소와, 따스함, 판타지까지 더해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우리나라에서만 100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내담자가 상담편지를 보내면 나미야 씨나 도둑들이 답장을 쓰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런데 신기하게 나미야 씨나 도둑들이 보낸 조언을 상담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편지를 보내며 스스로 정리한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행동한다. 447페이지의 등장하는 나미야 씨의 마지막 상담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면 우리는 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보려 하지 않거나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담자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지금 어떤 지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 서있는지 내담자는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이다.


나미야 씨의 충고보다는 내가 발견한 나의 지도를 상담자는 따라간다. 그렇다. 읽고 쓴다는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의 지도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창체 수업 시간 동안 우리는 그런 활동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상담자에게 나의 상태를 알려 주기 위한 편지를 쓰는 일이다. 이 글은 당신과 나만 읽을 꺼고 답장을 받을 수도 없지만 이제 누군가가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읽고 느낀 점을 써보자.


예를 들면 나는 지금 마음이 무척 찝찝하다. 그런데 '찝찝한'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찝찝한'만 읽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아침에 걸어오다가 물웅덩이가 있어서 살짝 잘 피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 지나가던 자전거가 웅덩이를 치더니 그 물이 나의 바짓단에 튀고 말았다. 친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바지는 어느 정도 말라가고 있지만 그래도 찝찝하다'라고 써서 읽은 사람이 글을 쓴 사람의 '찝찝한'을 알도록 써야 한다. 이렇게 쓰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이전에 명료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 시간에는 그런 글을 써보도록 하자.

p. 447

그림을 읽고 나의 생각을 써보다. 무언가를 읽고 정리해서 작성하는 일은 직면하게 한다. 이제 곧 보여줄 197장의 그림은 모두 유명한 그림이어서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어떤 그림인지 평가를 받았을 테고 역사적,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그림 들일 테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읽을 필요는 없다. 내가 읽고 싶은 대로 그림을 읽으면 된다. 그림을 보고 마음에 닿는 그림을 고르고, 왜 이 그림이 마음에 닿았을지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듯이 자세하게 기록해본다. 그리고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림에 어울릴 법한 노래를 골라본다.


이미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있다. 먼저 그런 작품들을 몇 가지 살펴보고 거기에 착안해서 함께 나만의 그림과 노래를 골라보자. 먼저 그림을 하나 보자. 프리다 칼로의 유작 'Viva La Vida'이다. 6살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고, 10대 시절 버스 사고로 부서졌던 사람. 고통을 이겨내며 그림을 그리던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다. 그들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디에고 리베라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 프리다 칼로는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세 번의 유산을 끝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 그녀가 그린 그림은 일평생 몸의 통증과 배신과 유산에 따른 마음의 고통에 시달렸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가 유작으로 남긴 작품에는 다양한 모양과 색을 가진 수박과 'Viva la vida(인생 만세)'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콜드플레이는 'Viva la vida'라는 그림을 보며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동안 갈채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림과 동명의 노래를 만든다. 이 노래는 프랑스 시민혁명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앨범 재킷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그 그림 위해 번지듯이 적혀 있는 'Viva La vida'는 강렬하다. 앨범 재킷을 보면 민중이 주인공인 듯 하지만 노래를 들어보면 주인공은 민중이 아니다. 민중을 맞이하고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왕이다. ‘인생 만세’라는 제목을 들으면 행복한 삶일 것 같지만 그림의 주인공도, 콜드플레이가 부른 노래의 주인공도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의 화자는 시민 혁명군을 맞이한 왕이다. 왕은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와 사람들의 함성,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노래한다. 그러면서 내가 없어진다고 세상이 변할 것 같으냐는 말을 내뱉는다.


프리다 칼로의 지나온 삶의 궤적과 연결된 그림들, 그리고 평론가들의 말을 모아 보면 그녀의 유작 또한 자신의 삶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바람을 피우며 혁명에 몸담았던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은 당시 멕시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멕시고에서 엄청난 거물이었지만, 종국에는 프리다 칼로가 미국까지 유명해지면서 유명세는 프리다 칼로가 더 높았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칼로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모습은 그녀이면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 자신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녀의 그림은 개인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콜드플레이는 이 그림의 아이러니에서 시민혁명을 떠올린다. 하나에서 새로운 하나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두 번째는 노래가 그림이 되어 나온 경우를 보여준다. 1972년 발표된 김민기의 '작은 연못'을 2021년 정진호 작가가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창비에서는 계속적으로 노랫말로 된 그림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작은 연못'도 그 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1972년 당시 '작은 연못'은 금지곡이 되었다. 김민기는 노래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노랫말이 당시 사회를 비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작은 연못'은 깊은 산속 작은 연못의 붕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다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결국 연못이 오염되어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으로 노래가 끝이 난다.


1970년에 수많은 금지곡 중에 하나였는데 '작은 연못'이 금지곡이 된 이유는 붕어 두 마리가 남북한을 상징한다는 이야기와, 박정희와 김대중을 상징한다는 지점에서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1년 정진호 작가는 이 노래의 어떤 메시지를 담아서 그림책으로 표현했을까? 그림책 작은 연못은 환경문제를 주제를 삼고 있다. 붕어 두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마트의 수족관이 되고, 깊은 산은 뾰족한 공장이 되었다가 쓰레기 산이 된다. 오솔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작은 연못도 없다. 넓혀진 강과 거대한 다리 그 사이로 흐르는 시커먼 하수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매연이 있을 뿐이다.


'작은 연못' 노래는 '아무것도 살지 않죠'로 끝이 난다. 비극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정직호 작가는 그림책에서 노랫말이 끝나고 2장의 글이 없는 그림을 그려두었다. 정진호 작가는 그곳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둔다. 우리는 이렇게 같은 노래와 그림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이어갈 수 있으며, 그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긍정하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도 이런 작업을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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