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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n 10. 2023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

드라마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 중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 영상 매체가 원작보다 좋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소설 쪽이 훨씬 좋았는데 이 드라마는 원작만큼 드라마도 좋았다. 굉장히 어렸을 때 본 드라마였는데 기존 드라마와는 상당히 결이 다른 작품이었다. 인물들 간의 대사를 통해 서사가 진행되는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달리 성우가 나레이션을 통해 주인공의 머릿속 상념들을 읊어주곤 했다. 주인공이 장님인데다 내면의 심리 변화가 드라마의 주된 테마였기 때문인 듯하다. 원작은 ‘롤리타’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다.     


남자주인공(배우는 권인하)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부모가 물려준 유산은 쓰고도 남을 정도였고 예술평론가라는 그럴듯한 직업과 단란한 가족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렸을 때 나무 위에 올라가서 놀다가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내연관계를 맺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그는 나무에서 떨어졌다. 놀란 어머니가 달려 나오다가 남편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화를 내며 차를 몰고 나가다가 교통사고로 즉사한다. 유산은 어머니에게로, 그녀가 죽고 난 뒤에는 그에게로 상속되었다.     


어른이 된 그는 한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짓궂게도 그는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된다. 우연히 마주친 어떤 여자(배우는 이미연)에게 반해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님이 되어버렸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게 된 그는 그 여자와 함께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집에는 분명 둘 밖에 없는데 자꾸 어디선가 다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그의 번뇌가 시작되었다. 이 집에 너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여자는 그럴 리가 없다는 말로 그를 안심시킨다. 아마 환청을 들은 걸 거라고. 그는 여자를 믿기로 결심했다. 그 말을 믿어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녀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웃음소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고, 더 노골적이 되어가고, 따라 웃는 그 여자의 웃음소리도 점점 더 비웃음이 되어간다.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아있을 때 그는 옆자리에 여자 외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걸 '느낀다.' 서재에서도 거실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다른 남자의 존재를 느낀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여자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왜 다른 남자를 끌어들여서 굳이 자신을 괴롭히려 들겠는가. 그러나 그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다른 남자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이다.     


잃어버린 시각 대신 육감이 발달할수록 그는 다른 남자의 존재를 더 또렷이 느낀다. 한편으로 여자를 의심한다는 건 시력을 잃은 그가 마음까지 병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자기 마음을 지옥 들여다보듯 들여다본다.     


이제 웃음소리는 더 이상 자신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자와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노골적으로 그를 괴롭힌다. 어린아이가 힘없는 곤충을 잡아 괴롭히듯 그의 무기력함과 신체적 결함과 좌절을 보면서 새디즘적인 쾌감을 맛보는 것 같다. 그는 그들의 인형, 바보, 광대로 전락한다.     


분노와 배신감과 질투로 이성을 잃지 않게끔 제정신을 유지시켜준 달콤한 거짓은 이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침내 그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결심한다. 서재 속 깊숙이 숨겨둔 권총을 쓰다듬으며 복수를 계획한다.     


그는 한동안 아주 얌전하게 지냈다. 집에 그와 그녀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혹은 그녀가 불러들인 제3의 인물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것처럼.     


마침내 여자가 마음을 놓았을 때 그는 여자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그때 여자의 애인인 제3의 남자가 나타나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실랑이 끝에 총알이 발사되고 그가 총알에 맞는다. 흐릿하게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그는 생각한다.     


편안하다.

드디어 끝났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이 드라마가 왜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실을 직시하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 때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건 거짓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혐오한다.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도 그런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이야기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글이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알아버린 이발사는 진실을 발설할 경우 죽임을 당하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고픈 욕구를 대나무밭에서 소리를 지르는 걸로 해소한다. 반면에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드는 자신에게 예정되어 있는 죽음을 이야기를 통해 지연시킨다.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기보다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재미있게 각색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세 가지 길 밖에 없다. 첫 번째는 달콤한 거짓말을 믿고 장님인 척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통스럽고 뒤틀린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진실을 직면하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말 진실한 말은 발설하는 순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가 겨눈 총알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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