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람들의 얄팍한 선의
각 나라 정부에서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어두고 있다. 그런데 법과 제도가 오히려 약자를 괴롭히고 구속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법과 제도는 정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일까. 아니면 사회 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울까. 보기 싫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불행한 사람들의 우울한 삶을 행복한 사람들에게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 한정된 구역 안에 몰아넣고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심지어 약자들의 불행마저도 물질적, 정신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어 안락사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 덕분에 병원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법을 만들고 수호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존중하고 있다고 자위하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이 과정 속에서 배제된다. 사람들은 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어보지 않은 일은 이해하지 못한다. 간혹 안락사의 악용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악용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세상 어떤 법과 제도도 제정이 불가능하다. 모든 법은 악용될 가능성이 현저하기 때문이다.
솔직해지자. 기득권은 노예가 탈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굳이 들고 나와서 총대 메고 욕받이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법과 제도 중 일부가 선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산전수전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 따라 진정성 없게 만들어놓은 것들이 태반이다. 소위 말하는 정책 기관과 현장 사이의 괴리인 것이다. 에밀 아자르가 쓴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얼핏 봐서는 슬픈 동심에 관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이와 같은 화두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모모는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자기가 몇 살인지 모른다. 파리 빈민가의 엘리베이터 없는 7층에서 로자 아줌마, 다른 고아들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사는 곳 근처 비송 거리에는 기본적인 위생 시설이나 난방 시설조차 없는 빈민촌이 있다. 이곳에는 주로 흑인들이 살고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95kg나 되는 몸을 이끌고 매일 7층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의 똥 냄새가 진동하면 손에 든 짐을 끌어안은 채 소파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로자 아줌마는 유대인이었다. 아줌마는 젊은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돌아왔다. 그 뒤로 창녀들의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매춘부들은 양육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자기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창녀들은 로자 아줌마에게 양육비를 주고 아이들을 맡겼다. 로자 아줌마는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드는 사람과 친분이 있었다. 그 결과 시에서 조사라도 나올까 봐 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모모의 출생증명서도 위조된 것이었지만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나이가 실제 나이와 달라 보인다는 이유로 학교 입학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모모에게 지식을 가르쳐준 사람은 길거리에 앉아서 양탄자 장사를 하는 하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코란과 빅토르 위고의 책을 들고 다녔다. 모모는 자기도 어른이 되면 ’불쌍한 사람들(빅토르 위고의 책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날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박하차만 홀짝거렸다. 모모가 다시 한 번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모모는 울음을 터뜨렸다.
로자 아줌마는 자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깰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인가는 꿈을 현실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옷장 아래 숨겨둔 열쇠를 꺼내 건물 층계를 내려가기도 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 아래에는 방공호처럼 생긴 지하실이 있었다. 그 지하실은 아줌마가 마련해놓은 임시 거처였다.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낡아빠진 고물 침대와 매트리스, 감자 자루가 몇 개 있었고 버너와 양철통, 정어리 깡통이 든 상자까지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그 낡은 소파에 앉아 쉬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교활한, 심지어는 정복자 같은 미소’였다. 아줌마는 더 이상 무서워 할 게 없다는 듯이 방으로 돌아와 잠들곤 했다.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들처럼 다시 나란히 누워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했던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틀린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로자 아줌마네 집에는 가끔 초인종이 울릴 때가 있었다. 초인종 소리는 전혀 반가운 소리가 아니었다. 빈민구제소에서 조사를 나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다른 여자들은 아이들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이곤 했다. 그러면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도 약에 취해 쓰러져 잠들었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기가 한결 쉬워졌다.
로자 아줌마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흥분할 일이 생긴다거나 아이들 중 누군가가 아주 고약하게 굴면 –그런 경우는 늘 있게 마련이다- 아줌마 자신이 신경안정제를 잔뜩 털어 넣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치고 받고 난리를 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것만 봐도 로자 아줌마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모모는 술회한다. 약을 먹은 로자 아줌마를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초인종 소리였다. 아줌마는 독일인들을 두려워했고 아직도 아우슈비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초인종 소리는 아줌마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줌마는 서서히 건강을 잃어갔다.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불행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날 때가 된 것이었다. 사는 동안 겪은 일에는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아줌마가 계속해서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모모는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를 물어보았다.
무서워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모모는 그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모모 앞으로 오는 송금이 끊겨버렸다. 모모는 빈민구제소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끔찍한 곳이었다. 그러나 로자 아줌마의 병세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창녀들이 더 이상 그녀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아이들마저 모두 떠나자 모모와 아줌마 둘만 남게 되었다. 먹고 살 돈이 바닥 나자 흑인 이웃들이 차례차례 돌아가며 그들을 도와주고 돌봐주었다. 로자 아줌마의 건강은 사실상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가파른 7층 계단은 그녀의 심장을 망가뜨렸다. 아줌마의 가슴과 배와 엉덩이는 따로 구분되지 않는 커다란 드럼통 같았고 머리숱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배를 곯아가며 지냈지만 95kg에 육박하는 로자 아줌마에게 살을 빼라고 말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모모는 생각했다.
주변에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모모는 우산에 옷을 만들어 입히고 모자를 씌운 다음 아르튀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우산은 모모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친구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모모는 아르튀르를 들고 나가서 광대짓을 했다. 그러면 간혹 동전을 던져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리의 아이들을 잡아가는 경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짓도 마음 놓고 할 수는 없었다. 모모는 교회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진정한 신앙생활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허울 좋은 신앙이라든가 정상인들의 사회에 대하여 냉소와 불신을 품고 있었다.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갔다면 모모나 로자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지독한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어느 날 모모는 백화점에 심부름을 갔다가 서커스 모형을 구경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서커스를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모모의 어깨를 붙잡았다. 스물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그 여자에게서는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가 났다. 그녀는 모모가 왜 울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모모는 그 여자가 사회복지위원회 사람일까 봐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항상 별일 아닌 듯 접근해서 행정조사를 벌이곤 했다. 행정조사는 끔찍한 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당장 송금이 끊기고 먹고 살 길이 없어져서 거리로 내몰릴 처지가 되어도 고아원이나 빈민구제소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 그만큼 당시의 프랑스 고아원은 끔찍한 곳이었던 듯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로 빈민구제소로 보내지곤 했다. 길바닥에 나와 있는 모습이 일반인들의 눈에는 몹시 불편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자신들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강제로 빈민구제소에 보내버리는 것이다.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그 여자는 자기가 본 아이들 중에서 모모가 가장 예쁘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모는 마음 속에 희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짓고 떠났다.
로자 아줌마는 심장이 안 좋았고 숨 쉬는 것조차 보통 사람보다 네 배는 힘들었다. 그런데도 병원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주사는 안 놔주면서 죽을 때까지 붙잡아두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 병원에 가면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억지로 살아 있게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고문을 무서워하는 로자 아줌마는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차라리 자살해버리겠다고 말하곤 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아온 노인네를 억지로 살려두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개 더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인생이 그런대로 달콤했기 때문에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는 내내 꿀을 빨아온 사람들이 이제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평생 꿀을 빨리고 살아온 사람의 등에 마지막으로 빨대를 꽂았다. 평생 위선적인 얼굴을 하고 로자 아줌마를 괴롭혀온 사람들도 그들이었다. 나치 대원들도 국가의 법과 제도를 준수하는 사람들이었고 사회복지위원회 사람들도, 병원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사람들은 진작에 안락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노망이 나서 화장을 하고 교태를 부리는 것만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사람이 아프면, 눈이 커지면서 표정이 풍부해진다. 로자 아줌마의 눈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으면서 자기를 때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개의 눈 같아졌다.
통증 때문에 로자 아줌마의 눈은 놀란 것처럼 커져 있었다. 이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방금 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놀라 부릅뜬 눈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모는 지난번의 그 금발머리 여자가 주차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모는 자기도 모르게 그 여자를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영화 촬영장에서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였다. 배우들이 총을 쏘면서 피를 뿜고 쓰러지는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란 모모는 그들이 연기를 하는 세트로 뛰어 들어갔다. 금발 머리 여자는 내 친구가 왔다며 사람들에게 모모를 소개시켰다. 그 여자의 이름은 나딘이었다. 나딘은 모모에게 그 우산이 네 친구냐고 물어보았다. 모모는 저능아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우산이 어떻게 친구가 되느냐고 대답했다.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저능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모가 생각하기에, 저능아란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자라지 않기로 마음 먹은 아이들이었다.
동시녹음이 잘못되어 목소리가 제때 나오지 않으면 배우들은 연기를 다시 해야 했다.
그러면 멋진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서 살아 있을 때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단추를 누르자 모든 것이 뒷걸음질쳐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거꾸로 달리고 개들도 뒤로 달리고, 무너졌던 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시체에서 총알이 튀어나와 기관총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살인자들은 뒤로 물러서서 뒷걸음질로 창문을 훌쩍 넘어 나갔다. 비워졌던 잔에 다시 물이 차올랐다. 흐르던 피가 시체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고 핏자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상처도 다시 아물어버렸다.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로자 아줌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아줌마는 이제 대부분의 시간을 착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카츠 선생님은 로자 아줌마가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식물과 같아질 것이고 그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모모는 창녀들이 젊었을 때는 사람들이 창녀들을 성가시게 쫓아다니지만 일단 늙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젊은 창녀에게는 포주가 있지만 늙은 창녀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하밀 할아버지마저 치매끼가 발동하여 온전한 정신이 아닐 때가 많았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를 불렀다.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어느 집 대문 그늘 아래 앉은 모모는 무엇인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제일 좋은 방법은 현실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밀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시인들이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가 나를 빅토르라고 불렀던 것이 갑자기 떠올라 웃음이 났다. 어쩌면 신이 할아버지를 통해 시인이 되라는 계시를 내게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내면의 상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 상상을 의식화하고 내면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뇌라는 필터에 의해 한 번 굴절된 세상이다. 인식의 폭에는 한계가 있고 완전히 객관적인 세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찰나의 순간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조금 전에 인식했던 그 세상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모는 비송 거리 모퉁이의 카페에서 흑인들과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카페 주인은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미성년자 보호법에 걸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모모 같은 열 살짜리 아이는 마약 문제로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 같은 아이를 볼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바로 그런 문제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미성년자들을 극진히 보호한다. 너무 보호하는 나머지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감옥에 처넣을 정도로.
흑인 왈룸바 씨는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왈룸바 씨는 자기 고향인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을 보살피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고 주장했다. 파리는 도로와 층계와 구멍이 많기 때문에 노인을 잃어버리기 딱 좋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프랑스 같이 크고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노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노인들은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종족 단위로 모여 사는데 노인들은 인기가 많다고 했다. 죽어서도 종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주소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보잘 것 없는 소굴에 모여 살게 되는데, 그들이 거기, 엘리베이터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아파트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들이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해 소리쳐봤자 너무 힘이 없어서 아무도 듣지 못한다고 했다. 왈룸바 씨의 생각으로는 정부가 아프리카에서 일손을 많이 데려와서 매일 아침 여섯 시에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몸이 나빠진 노인들은 치워버려야 할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노인들이 살아 있는지 어떤지 아무 관심도 없다가, 이웃에서 악취가 나니 가보라고 경비원에게 말할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복지제도는 근본적으로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제도로 발현되었을 때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프랑스의 사회복지제도는 아프리카의 사회복지제도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정교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잘 사는 나라고 행복한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불우 이웃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보다는 kpop 같이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내용이 시청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왈룸바씨의 증언 대로라면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을 공경하는 데 보다 진심이지만 프랑스에서는 기계적이고 요식적인 행위가 된지 오래였다. 진심이 아닌 제도는 근본적인 결함들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과 정책을 만드는 장이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은 지켜야 했다.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 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모모는 의사인 카츠 선생님에게 로자 아줌마를 안락사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안락사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카츠 선생님은 '우리는 문명국가에 살고 있으며 너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모모는 ’벌 받을 일을 하지 않은 사람 중에 중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 고 생각했다. 벌을 받는 건 언제나 힘 없고 약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뜻이다.
'선생님이 인정머리 없는 늙은 유태인이 아니고 심장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진짜 유대인이라면, 좋은 일 한 번 해주세요.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그놈의 알지도 못하는 하느님 아버지란 작자 때문이에요. 그 작자는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낯짝도 안 보여요. 그 낯짝을 재현시키는 것조차도 안 된대요.
‘나는 절대로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
어쨌든 모모는 정상인들이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 속에 살아가고 있는 힘 없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는 계속해서 모모와 그 이웃들을 괴롭힌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고 자신들의 어깨에 불필요한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 모모는 그렇게 냉담하고 얄팍하고 고지식한 정상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카츠 선생님은 로자 아줌마를 더 방치했다가는 생명이 위독해질 것이라며 당장 병원에 입원시킬 태세였다. 모모는 아줌마가 기계 장치에 의지해서 몇십 년을 더 연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임기응변을 발휘해야 했다. 이스라엘에 사는 로자 아줌마의 친척들이 며칠 안에 그녀를 데리러 올 것이라며 거짓말로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로자 아줌마의 지하실이 결국에는 쓸모가 있었던 것으로 판명났다. 아줌마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숨을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초인종 소리와 세상의 정상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장소가 아줌마에게는 필요했다.
로자 아줌마를 지하실에 숨긴 모모는 그곳에서 아줌마와 함께 생활했다. 아줌마가 숨을 거둔 뒤에도 모모는 그곳을 나가지 않고 시체에 향수를 부어주고 색조 화장을 해주면서 머물렀다. 냄새 때문에 지하실 문을 박차고 사람들이 들이닥칠 때까지. 모모의 사연을 알게 된 나딘이 모모를 입양해가면서 모모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