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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n 15. 2023

소문의 여자 - 오쿠다 히데오

드라마 '소문의 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발휘되는 건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한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타인을 비난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발동되곤 합니다.     


작가가 서문에 쓴 말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보여주는 지방 도시는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하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유착관계로 얽혀 있는 곳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소한 이익 때문에 불의 앞에 침묵하는 소시민스러운 면모를 보인다. 그런데 미유키라는 여자가 나타나 육감적인 몸매로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기 시작한다. 스스로의 부도덕성 때문에 미유키의 덫에 걸려들고 마는 소시민들을 보며 독자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표현대로 미유키는 약아빠진 인간들을 역이용하며 승승장구한다. 등장인물인 미사토의 표현에 의하면 미유키는 ‘요염한 암컷 사마귀’ 같은 존재다. 그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갔다가는 반드시 그 이상의 대가를 토해내야 하고, 심한 경우는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현실에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흙수저 출신에 평범한 여성이었던 미유키가 타락한 인간군상을 이용하여 승리를 거머쥐는 모습은 모두에게 속 시원한 통쾌함을 안겨준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의 유이치다. 유이치는 우연히 중고차매장에 들렀다가 미유키를 보게 된다. 직장 상사가 구입한 중고차의 헤드라이트가 야간주행 도중에 꺼져버렸는데 이참에 보상금으로 한몫 잡자는 상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중고차매장을 방문했던 참이었다.      


‘유이치는 직장생활 일 년 차로, 공업기기를 취급하는 지방도시의 작은 상사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러 등록금 내가며 삼류라는 낙인을 찍히기 위해 입학하는 허접한 사립대 경제학부에서 뭔가에 몰두해 본 것도 없이 오로지 아르바이트와 마작으로 사 년을 허비했다. 취업활동을 해보려 해도 대학 쪽에 들어오는 구인 의뢰라고는 외곽도로에 늘어선 대형 세일 매장들뿐이어서 자신이 직접 구인광고를 뒤적여 면접을 보고 시험이고 뭐고 없이 기어들어 온 사원 열 명의 회사였다. 담당 교수는 제자의 장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지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상사들이 매장에서 깽판을 치고 있을 때 유이치는 중고차매장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한다. 가슴과 엉덩이가 펑퍼짐한 그 아가씨는 유이치의 중학교 동창인 미유키였다. 육감적인 몸매에 잠시 마음이 설렌 유이치는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미유키에 대해 물어본다. 동창은 미유키가 전문대에 들어간 뒤 갑자기 옷차림과 화장이 야해졌으며 룸살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편 유이치의 상사는 날이면 날마다 중고차매장을 찾아가서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한다. 보통 이런 협박은 어지간하면 걸려들게 마련이지만 중고차매장 쪽에서도 이상하리만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미유키는 유이치 쪽의 상황을 떠보려는 것인지 슬슬 그에게 접근해온다. 유이치가 한껏 들떠 있을 때 동창이 전화를 걸어와 미유키가 중고차매장 사장의 세컨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순간 유이치는 세상 모든 여자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분노에 사로잡힌다. 상사들은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클레임을 걸어 금품을 뜯어낼 생각만 하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도 이십 대의 젊은 청년인 요헤이다. 요헤이가 근무하는 ‘주식회사 신뢰당’은 사원이 이십 명 정도인 작은 의류품 도매점이다. 요헤이와 그의 상사들은 퇴근하면 반드시 마작장에 들러서 마작을 한다. 근처에 새로 생긴 마작장에 놀러 갔더니 가슴과 엉덩이가 펑퍼짐한 여자가 서빙을 하고 있었다. 요헤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상사들은 마작을 하며 직장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다. 요헤이가 일하는 회사는 간부들, 심지어 경리까지도 사장의 친인척들로 이루어진 가족 회사였다. 입사할 때는 보너스를 주기로 해놓고 입사하고 나니 사정이 어려워서 보너스는 못 준다며 말을 바꾸고 영업용 차량은 다 낡아빠졌지만 사장은 비싼 외제차를 타고 흥청망청 골프나 치러 다닌다. 또, 최근에는 사장 딸의 유학비용까지 회사 경비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사들은 노조를 결성하겠다고 큰소리만 쳐댈 뿐 누구 하나 직접 나서지 않는다. 요헤이는 대기업을 정년퇴직하고 재취업한 하나다씨에게 이 문제를 상의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하나다는 거동이 조용하고 일처리가 정확해서 다들 한 수 높게 쳐주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마작장에 드나드는 동안 이웃의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무리들도 미유키에게 집적대기 시작한다. 미유키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미유키의 출신 학교를 알아낸 요헤이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유키의 신상에 대해 물어본다. 동창은 미유키가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다소 어두운 아이였다고 말한다. 시영주택에 사는 가난한 형편이었는데 아버지가 택시 운전사였고 술을 마시고 자주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었다. 미유키는 계모 밑에서 컸는데 친어머니는 딴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다고 했다. 소년원에 자주 들락거리는 폭주족 남동생이 있다는 얘기도 전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불쌍한 애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을 어린이회에서 강변에 놀러 갔을 때, 다들 점심 도시락 먹을 때, 그 집 애들은 빵 사다가 한쪽에서 먹고 있었어. 왜 저 집 부모는 도시락을 챙겨주지 않았나 하고 어린 마음에도 딱하더라고.“     


마침내 하나다를 마작장에 초대하는 데 성공한 상사들은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사장에게 전달해줄 수 없겠냐는 부탁에 하나다는 자기가 사장 부인의 큰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라며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다. 결국 하나다마저 사장의 친인척이었던 셈이다. 상사 마키무라는 완전히 얼어붙어서 사장님께 전달하실 때는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해 달라며 꼬리를 내린다. 요헤이를 비롯한 모두가 사장이 보복에 나설 거란 생각에 의기소침해진다. 한편 요헤이의 친구는 미유키가 중고차매장, 묘지 분양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의 세컨드라며 이 사장이 얼마 전에 돌연사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잠시 관심을 가졌을 뿐인 여자지만 돈 많은 사장의 세컨드라니, 요헤이는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스물네 살의 평범한 직장인인 사유리다. 그녀는 시청 공무원과의 결혼을 앞두고 신부수업을 받을 겸 요리 교실에 다니고 있었다. 직장 퇴근 후의 요리 교실수강생들은 자기처럼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들이었다. 수업은 4인 1조로 진행되었다. 요리 교실의 강사는 전직 교사로 남편이 교육위원회의 높은 사람이라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요리 재료도 하나 같이 오래되어 상하기 직전인 것들뿐이었다. 수강생들은 기분이 나빴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말은 못하고 누군가 대신 말해주기만을 기다라며 꾹 참고 있었다. 이 요리 교실에 빨간색 BMW를 타고 등장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미유키였다. 미유키는 사유리와 같은 조인 나오의 대학 동창이기도 했다. 미유키는 나오에게 자기가 곧 결혼할 예정이며 신랑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애매하게 이야기한다.


한편 사유리와 같은 조인 가즈미는 사유리의 예비신랑이 시청 공무원인 걸 알고 신혼부부용 시영주택에 당첨시켜달라며 청탁금 10만엔을 주겠다고 한다. 사유리는 곤란하다고 손사레를 치지만 가즈미의 끈질긴 부탁에 물어는 보겠다고 대답한다. 그날도 형편없는 요리 재료가 나왔고 누군가가 실습생들에게 쪽지를 돌린다. 쪽지에는 식재료에 대한 폭로가 담겨 있었다. 재료는 전부 아사히초의 슈퍼마켓에서 팔다 남은 것으로 슈퍼 주인이 강사 여동생의 시댁이라는 것이다. 쪽지를 돌린 사람은 다름 아닌 미유키였다. 나오는 미유키가 대학 때도 성추행 교수를 고발해서 사직하게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사유리는 약혼자에게 시영주택 당첨 사례금에 대해 털어놓는다. 약혼자는 그 아파트의 절반은 인맥을 통해 돈을 받고 분배하는 관례가 있다고 대답한다 10만엔은 주택과에 직접 연줄이 있는 경우고 가즈미의 경우에는 20만엔은 받는 게 관례라는 것이었다. 불법이 아니냐는 사유리의 물음에 모두가 다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안 해도 어차피 다른 사람이 인맥으로 들어오게 되어있다고 대답한다. 10만엔으로 정초에 온천에라도 다녀오자는 약혼자의 말에 사유리도 생각을 바꾼다.     


‘그날 저녁은 관청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방에서 공무원이 얼마나 큰 이익을 보는지 알고 화가 나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이 공무원의 아내가 된다는 행운에 솔직히 기쁘기도 했다’     


다음 번 요리 교실에서 미유키는 팔다 남은 재료를 쓰는 건 사기 행위라며 강사와 학원 측을 몰아붙인다. 고자세로 수강생들을 나무라던 강사도 마침내 사색이 되어 줄행랑을 친다. 사유리와 같은 조인 유이는 미유키를 열렬히 숭배하게 되어 그녀와 행동을 같이 하기로 한다. 유이는 남은 재료로 주먹밥을 만들어 집에 싸갖고 갈 만큼 뻔뻔하고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다. 나오는 사유리에게 미유키가 새로 결혼하려는 남자가 예순이 넘은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이야기한다. 빌딩 입대업을 하는 사장인데 부인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남자는 심장에 지병이 있어 돈을 노리고 하는 결혼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나오는 대학교 때도 미유키가 피해자들을 선동해서 집단행동을 한 뒤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교수를 협박해서 자기만 합의금을 뜯고 빠졌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유리는 이번에도 미유키가 몇몇 수강생을 끌어들여 문화센터를 협박해서 금품을 뜯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오는 미유키가 반년쯤 전에 토건회사 젊은 사장의 세컨드였는데 이 사람이 여관 욕실에서 술에 취해 익사했고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미유키였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가즈미의 끈질긴 부탁에 사유리는 사례금 20만엔에 아파트 당첨을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나오는 10만엔은 누가 먹는 거냐며 도리어 따지고 들기 시작하고 기분이 나빠진 사유리는 그럼 됐다며 청탁을 거절한다. 나오는 동정에 호소하며 10만엔에 당첨시켜달라고 계속해서 네고를 시도한다. 사유리는 이제 이 요리 교실은 그만 나가기로 결심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스물여섯 살의 다이스케라는 남자다. 그의 돈 많은 장인은 현재 젊은 여자와 재혼하려는 중이다. 장인은 한 차례 이혼해서 전처와의 사이에 자식이 둘 있었다. 재혼한 뒤 다시 자식을 둘 얻었는데 후처는 사망했다. 아내 유키는 후처의 막내딸이었다. 전처와는 위자료를 지불하고 인연을 끊었지만 전처 쪽의 자식들은 유산을 노리고 성인이 된 뒤 장인에게 접근해왔다. 다이스케의 장인 하루오는 맨몸뚱이로 부동산회사를 일궈 내 임대빌딩 두 채를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최근 스물네 살 젊은 여자와 동거에 들어갔다. 네 자식은 당연히 이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자식들은 사위인 다이스케에게 장인과 그 여자를 만나 설득하라고 시킨다. 장인이 유난히 다이스케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자식인 그들보다는 사위가 말하는 게 모양새가 낫기 때문이었다. 아내인 유키는 전처의 자식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전처의 자식 중 장남인 준이치는 아버지 회사의 이사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내 다이스케는 그 여자 미유키를 만나게 되었다. 가슴골이 파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대단히 육감적이었다. 마작장에서 일할 때 손님으로 온 장인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다이스케는 내심 장인을 부러워하며 저 여자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음 형제 모임에서, 유키는 아버지가 적적해서 그 여자에게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자기들 부부가 집에 들어가 살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준이치는 안 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선다. 유키는 큰오빠가 아버지 집까지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몹시 불쾌해한다. 다이스케는 장인과 술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 장인은 그 여자가 노리는 게 돈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설마하니 독약을 타서 먹일 리는 없고 기껏해야 위자료나 뜯어가겠지’라고 한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장인은 다이스케를 자기가 살고 있는 맨션으로 데리고 간다. 장인이 잠들자 택시를 불러 집에 가려 하지만 눈이 와서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미유키는 다이스케에게 자고 가라고 권한다. 그가 잠자리에 들자마자 미유키가 알몸으로 그를 덮친다. 다이스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피임도 하지 않은 채 미유키에게 몸을 맡긴다. 집에 돌아와 보니 유키는 큰오빠가 명의의 반을 회사로 옮겼다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장인의 회삿돈은 상속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이스케는 이 도시에서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인 마이다. 그녀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평범한 여자다. 구두 도매점에 취직해 꾸역꾸역 일하다가 불황이 덮쳐 인원 감축으로 해고되었다. 하루하루 파친코에서 시간을 떼우던 중 파친코에서 만난 친구 미호와 실업수당을 타내기 위해 구직 중인 것처럼 꾸밀 방법을 모색한다. 미호는 이 파친코에 놀러 오는 어떤 여자가 부동산회사 사장의 부인인데 그 회사에 면접을 본 것처럼 서류를 부탁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해서 그녀들은 미유키를 만나게 된다. 미유키는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있었고 임신 중이었으며 친절한 언니처럼 그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미유키 쪽에서도 그들에게 부탁을 해오는데 병원에 가서 수면제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마이가 한창 파친코에 열중하고 있는데 웬 중년 남자가 다가와 치근덕거린다. 진절머리가 난 마이는 일은 하기 싫으니 어서 빨리 결혼해서 누가 월급을 갖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호는 돈을 주겠다는 그 남자의 꾐에 넘어가 관계를 가지는데 남자는 말을 바꿔 돈을 주지 않고 가버린다. 미호와 마이가 그를 찾아가 따지자 그 남자는 한 번 더 이 일을 문제 삼으면 자신이 상납하는 야쿠자에게 말해서 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주겠다며 협박까지 한다. 마이와 미호는 미유키에게 수면제를 갖다 주며 이 일에 대해 털어놓는다. 미유키는 자신이 해결해주겠다면서 남동생을 호출한다. 그러자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미유키의 남동생이 나타나 남자를 논으로 끌고 간다. 미유키의 동생은 이 일과는 별개로 자기에게 사례금을 내놓으라고 남자를 피가 철철 흐를 때까지 두들겨 팬다. 두 여자는 남자가 죽을까봐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친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 히로미다. 히로미는 돈을 모으려고 야간까지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긴 상태다. 지방대학 보육과를 졸업한 히로미는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작년에 아버지가 실직하고 비정규직이 된 뒤부터 부모는 히로미에게 자꾸 돈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혼자 나가 살 원룸보다 더 비싼 집세를 달라고 하기도 하고 그 돈과는 별개로 주택 할부금을 융통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정작 히로미의 어머니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에서 놀았다. 히로미가 일하는 어린이집에는 밤시간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호스티스들이었다. 호스티스들은 하나같이 경기가 나쁘다며 우는소리를 늘어놓았다. 하루는 단체 손님이 오긴 왔는데 경찰이었다며 불평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일 인당 삼천 엔이야. 이 구역에 옛날부터 정해진 규칙. 마담에게 물어봤더니 주점을 열 때, 요식업 조합 간부가 찾아와서 경찰과는 상부상조하는 관계니까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강제 조항은 아닌데 앞으로 원만하게 지내려면 규칙에 따르는 게 좋다는 거야. 이거, 반은 협박 아니야?“

히로미는 그녀들이 텋어놓는 뒷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세상 어떤 일에나 이면은 있게 마련이라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역시 아연하게 된다.

”그 대신 주차위반은 눈감아 주지.“

”맞아. 지난번에 내 남돔생이 교통사고를 냈는데 상대방이 반은 야쿠자인 사람인 거야. 근데 우리 손님 중에 형사가 있어서 그쪽에 부탁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해 주더라니까.“

”와아, 너무 좋다. 나도 그 형사 좀 소개해 줘.“

히로미는 다시 한 번 어이가 없었다. 아마 어디나 다 이런 식일 것이다. 지역에서는 너나없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밤에 아기를 맡기러 오는 손님 중에는 미유키도 있었다. 미유키는 히로미에게 호스티스가 되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거절했지만 지긋지긋한 가난과 화장한 뒤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린 자기 모습에 감탄하여 호스티스가 되기로 결심한다. 다른 호스티스들도 미유키가 의회 의원의 세컨드라 건설회사 임원들을 접대하기 때문에 미유키의 가게만은 손님이 많다며 그 가게로 옮겨간다. 아니나 다를까 미유키는 히로미에게 젊은 사장과 데이트해주고 수당을 받으라며 다리를 놓아준다. 히로미는 미유키 밑에서 밤의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오십대의 건설사 사장인 다케우치다. 그는 건설회사 사장들의 모임인 약진연합회 소속이다. 다케우치는 최근 회원 중 한 사람인 히로모토가 공무원 재취업과 관련된 관례를 깨뜨리려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현청, 시청 건설부나 수도부에서 근무한 뒤 퇴직하는 공무원을 건설회사에서 재취업시켜주는 것은 약진연합회의 규정이었다. 그렇게 담합과 낙하산을 통해 시청의 일감을 따오는 것이었다. 지연과 혈연은 지역사회가 돌아가는 원동력이었으며 공무원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연봉만 축내는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일감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시켜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히로모토가 도쿄대를 졸업하고 돌아온 수재 아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런 불합리한 관행은 깨뜨려야 한다며 갑자기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다케우치도 자기 아들 야스히코에게 회사 경영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야스히코는 멍청해서 매일매일 실수나 저지르고 노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심지어 며느리조차 술집 여자였는지 피로연에 참석한 아가씨들도 다 그렇고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2층에 살고 있으면서도 시어머니에게 살림을 다 떠맡기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며 디즈니랜드에 놀러간다고 손자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기까지 했다. 디즈니랜드라면 아이도 데려가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네 살, 두 살을 데려가면 스플래시 마운틴은 커녕 톰소여 뗏목도 탈 수 없어서 싫다’고 대답하여 다케우치의 뒷목을 잡게 했다. 다케우치도 히로모토의 아들 나오키가 옳은 말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손자들도 있고 하니 제 밥그릇은 지켜내야만 했다.     


약진연합회 회원들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고급 룸살롱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다케우치는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히로모토가 정초의 떡값이니 청소 협조비니 하는 것까지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 돈은 공사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지역 야쿠자들에게 주는 돈이었다. 


연합회 회원 중 한 명인 고무카이는 이 술집의 젊은 호스티스 중에 자기 세컨드가 있다고 자랑한다. 한 달에 십팔만엔만 주면 일주일에 한 번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당 가격으로 치면 고급 창녀와 비슷하지만 딸보다 젊은 애인과 사귀는 기분을 낼 수 있다니 다케우치도 호스티스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약진연합회 회원들은 다음에는 이 술집에서 히로모토의 아들 나오키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나오키는 아버지뻘인 회원들과 술을 마시며 나쁜 관행을 개혁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때 주점 마담인 미유키가 나오키 옆에 앉는다. 나오키는 미유키에게 반한 눈치였다. 약진연합회 회원들은 미유키가 현 의원인 이나코시 의원의 세컨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사람의 여자에게 손을 댔다간 나오키가 크게 다칠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미유키에게 작전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미유키는 오십만엔을 받고 나오키를 유혹하기로 한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오십대의 쌀가게 사장인 와다다. 와다가 사는 마을에는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절이 있었다. 그 절의 주지가 노쇠하여 아들이 주지직을 물려받았는데 절에 기부를 해달라는 요구가 갈수록 늘어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절의 오십대 단가들은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객전을 새로 짓겠다며 기부를 해달라는 요구에는 모두가 분노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클레임을 걸 용기는 없었고 상대방에게 미루기만 했다.      


‘평소에 시래사에 대해 공공연히 불만을 토로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누구 귀에 들어갈지 조심스럽기도 하고 행여 그런 말이 주지에게 전해졌다가는 어떤 앙갚음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단가의 새 대표란에 이토이 미유키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이 여자에게 해결을 부탁하기로 한다. 와다의 아내는 미유키가 남편이 죽은 뒤 거액의 보험금을 타냈으며 고급 룸살롱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유키는 절의 객전이 너무 낡아 어쩔 수가 없다며 기부는 자유의사라고 주장한다. 그래봤자 사실상 강제 징수나 마찬가지라서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와다는 새 주지의 아내와 만났다. 주지의 아내는 이토이 미유키가 남편과 내연관계라며 제발 좀 남편을 타일러달라고 도리어 부탁을 늘어놓는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진 단가들은 와다에게 새 주지인 마사유키를 직접 만나보라고 떠민다. 마사유키는 자신도 협박을 당하고 있으며 평소 알고 지내던 석재점 사장과 공무점 사장이 자기를 클럽에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서 미유키를 만났고 그녀가 유혹해 관계를 갖게 되었으나 미유키는 지역 의원인 이나코시의 세컨드였으며 이 일로 야쿠자의 협박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미유키는 객전을 새로 건축하게 해주면 용서해주겠다고 했고 이 일로 어쩔 수 없이 기부금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와다가 다른 단가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단가들은 마사유키의 약점을 잡았으니 이를 역이용하자고 한다. 기부 요청이 들어와도 못 들은 척하고 절의 다른 서비스도 공짜로 해달라고 하자는 것이었다. 마음이 약한 와다는 어떻게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해보지만 가위바위보에서 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단가들의 의견을 마사유키에게 전달한다.     


여덟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형사인 가시마다. 경찰서는 간부급이 이동할 때마다 전별금을 걷는 게 관행인데 기업과 상점조합을 돌며 모금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행태는 야쿠자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서장이 현경 본부로 영전하게 되자 가시마의 상사 도쿠다는 관내를 돌며 전별금을 걷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인맥을 통해 가시마에게 수사를 의뢰한 사람이 있었다. 가시마는 수사하기 귀찮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반 시민이 갑작스럽게 경찰서에 뛰어들어와 봤자 대충 넘어가기 일쑤지만 인맥을 통해 들어오면 무시하기가 어렵다. 일거리가 일단락되면 연락하겠다고 대답했더니 마침 그런 때를 노려 찾아온 모양이었다.’     


의뢰인은 젊은 여자로 아버지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욕실에서 익사했는데 젊은 새 아내가 거액의 보험금을 타갔다는 것이다. 의뢰인은 이 여자가 아버지의 머리를 강제로 머리를 눌러 익사시켰을 거라고 주장한다.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교제했던 다른 남자도 같은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가시마는 전에 이 여자가 일했다는 마작장으로 수사를 나갔다. 종업원들은 이토이 미유키가 토건회사 사장과 부동산 사장 사이에서 양다리 걸쳤는데 둘 다 욕조에 빠져 죽었다고 증언한다. 이 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애인인 중고차매장 사장도 같은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가시마는 엄청난 건수를 잡았다는 생각에 흥분하여 상사인 도쿠다에게 수사결과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도쿠다는 새로 수사과장으로 올 고바야시가 공을 가로채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인사이동까지 몇 년이고 이 사건을 묵혀두라고 명령한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면 어쩔 거냐는 가시마의 물음에 도쿠다는 ‘그럼 더 좋지, 완전 초대형 사건이 되니까’ 라고 대답한다. 형사과에 있어봤자 큰 공을 세우기는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시마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로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의원실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스물일곱 살 미사토다. 그녀는 건설업을 하는 큰아버지의 소개로 낙하산으로 의원실에 취업했다. 어느 날 의원님과 상사 둘 다 선약이 있어 그녀가 약진연합회 모임에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모임이 열리고 있는 곳은 대형 여관이었다. 약진연합회 의원들은 미사토에게 색기가 부족하다거나 비서가 너무 미인이면 의원님과 스캔들이 나니 못생긴 게 낫다거나 하면서 성희롱을 한다. 행사가 끝나자 미니스커트 차림의 도우미 아가씨들이 들어오고 웬 나체 여자의 배 위에 생선회가 놓여 있었다. 약진연합회 멤버들은 미사토에게도 나체 위의 참치회를 먹으라고 강요한다. 심지어 음부에 술을 부어놓고 빨대로 빨아먹는 ‘미역술’까지 마시도록 시킨다. 약진연합회 회원들의 강요로 미사토는 2차까지 따라가게 되는데 2차로 간 클럽의 마담이 대학 동창인 미유키였다. 약진연합회 회원들에 따르면 미유키는 의원님의 세컨드였다. 미사토는 대학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유키에 대해 물어본다. 동창은 형사가 미유키 일로 자기를 찾아왔으며 미유키에게 수면제를 타다 준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유키의 전남편이거나 애인이었던 남자 세 명이 똑같은 사인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며칠 뒤 미사토의 상사인 후카자와는 미유키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의원의 비자금 통장에서도 거액의 돈이 인출되었는데 미사토는 그것이 미유키의 소행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형사가 뒤쫓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돈을 들고 튄 것이다. 미사토는 이 시시한 인간들을 쥐락펴락하며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리는 미유키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기 시작한다.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같은 하늘 아래 이토이 미유키가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우스웠다. 초여름 태양이 지상의 소소한 인간들에게 싸움을 걸 듯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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