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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n 20. 2023

디 아워스 - 마이클 커닝햄

영화 '디 아워스'



디 아워스는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 1949년의 로라 브라운, 1999년의 클러리서 본이라는 세 여성의 시간들(The Hours)을 묘사한 영화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로라 브라운은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클러리서 본은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불린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실에 의해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유서를 남기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의 시신은 물살을 타고 템즈강의 다리가 있는 곳에서 가라앉는다.      


‘그녀의 몸 조금 위로 햇빛 받은 수면이 찰랑이고 물에 비친 하늘이 일렁인다. 떼까마귀들이 하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검게 잘라내듯 가로지른다. 자동차와 트럭들이 덜컹거리며 다리를 지나간다. 세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다리를 건너다 난간에 멈춰 선다.’      


‘제2차 세계대전 초의 어느 날, 그들은 그렇게 있다. 다리 위에 있는 아이와 엄마, 수면 위를 떠내려가는 막대기, 그리고 강바닥에는 버지니아의 시신이 있다. 마치 그녀가 수면을, 막대기를, 아이와 엄마를, 하늘과 떼까마귀를 꿈꾼다는 듯이, 군인들을 가득 실은 국방색 트럭 한 대가 다리를 건넌다.’     


그 뒤 버지니아가 꾸는 꿈처럼 다른 두 여자의 삶이 <댈러웨이 부인>과 맞물리기 시작한다.     


6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의 전 생애가 담긴 단 하루 동안의 시간’을 묘사하려는 참이었다. 마이클 커닝햄도 이 소설 <디 아워스>에서 세 여자가 하루 동안 보낸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열기 위해 꽃을 사러 나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클러리서 본도 에이즈에 걸린 친구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열 계획이었다. 꽃가게에서 작약과 백합, 크림색 장미를 잔뜩 안고 리처드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리처드는 파티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 리처드는 클러리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 댈러웨이 부인. 침묵을 덮으려고 항상 파티를 열지.’ 리처드는 클러리서를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인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존재가 느끼는 근원적인 불안이나 두려움을 사교나 파티 같은 것으로 덮을 수는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리처드는 껍데기뿐인 삶을 계속 살아갈지 죽음을 택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죽음 같은 삶 대신 한순간이라도 진실로 존재하기 위해서다. 리처드는 이렇게 말한다.     


‘난 글을 쓰고 싶었어. 전부 쓰고 싶었어. 그 순간의 모든 걸. 당신이 안고 온 꽃들의 모습, 이 타월의 냄새와 촉감, 이 옷감의 느낌, 당신과 나의 모든 감각, 그 역사, 우리의 옛 모습. 세상의 모든 것들, 모든 게 뒤섞여 있어. 지금도 그렇지. 그걸 쓰려다 실패했어. 난 실패했어. 뭘 시작하든 기대보다 훨씬 시시한 것만 남아.’      


그러면서 그는 클러리서에게 두 사람이 해변에서 키스를 했던 날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사실 그 순간은 클러리서의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순간 중 하나였다.      


‘그 기억에는 아직도 독특한 완벽함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그것이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것은 순간이라고. 바로 그 당시의 순간일 뿐이라고. 이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클러리서에게는 삶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듯한 순간이 하나 더 있었다. ‘갑자기 재즈 밴드의 구슬픈 음악이 축음기에서 흘러나올 때, 창문을 건드리던 나뭇가지 하나에 대한 기억’이 그것이었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그 집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호른 소리가 시작되면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던 그 나뭇가지가 음악을 불러일으키듯 창을 두들기던 것밖에 없지만, 어제 일어난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선명하게 각인된 그 집에 머물던 시절의 그녀는 아마 서너 살 정도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고, 또 인간의 행복보다 더 큰 어떤 질서가, 비로 그 질서는 여러 감정뿐만 아니라 행복까지도 포함하지만, 넌지시 암시하는 약속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1949년 6월 어느 화창한 아침 로라 브라운은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는 어젯밤 읽다 만 <댈러웨이 부인>이 놓여 있었다. 자신을 더 없이 사랑해주는 남편과 네 살 난 아들을 위해 생일 케이크를 구울 생각이었지만 침대로 돌아가서 책이나 읽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을 배웅하고 난 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생각한다.     


‘그토록 명민하고, 그토록 미묘하고, 그토록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슬픔을 끌어안은 여자’     


‘로라는 자신도 조금은 그런 명민한 기운이 있다는 상상을, 대부분의 사람들도 내심 이와 같은 희망적인 느낌을 작은 주먹처럼 꼭 쥐고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상상을 하는 걸 좋아한다(이는 그녀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 중 하나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도 슈퍼마켓 통로 사이로 쇼핑카트를 밀 때나 머리를 손질할 때 어느 정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여기 찬란한 영혼이 있어. 슬픔의 여자. 특출한 여자. 여기보다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야 하지만 슈퍼마켓에서 토마토나 고르고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앉아 있는 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기본적이고 어리석은 일상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여자. 전쟁은 끝났고 세상은 살아남았고, 여기서 우리 모두는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책이나 그림뿐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세상을 창조한다.’     


독서나 그림 감상 같은, 스스로가 원하는 일 대신 타인을 돌보는 데 일생을 바쳐야 하는 여성의 삶에 대해 로라는 생각한다. 그러나 자아를 실현하고 싶어하는 이 여자들은 세계 기준 상위 2% 안에 들 만큼 부유한 여성들이다. 버지니아, 클러리서, 로라 모두 상류층, 최소 중산층 이상 여성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평불만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 이래도 너무 고통스럽고 저래도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선택의 우선순위가 자아실현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만 해도 귀족인 데다 평생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명민한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었다. 남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도 그녀가 부유한 데다 황금알(작품)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마운틴애러랫로드를 걸어 올라가며 클러리서 댈러웨이의 운명에 대해 궁리한다. 클러리서는 연인을 갖게 될 것이다. 부인이다. 아니, 차라리 소녀로 할까? 그녀가 소녀였을 때 알던 여자애로.’     


‘클러리서(댈러웨이 부인의 이름은 클러리서다)의 첫사랑에 집중한다. 소녀로 하는 거야. 그 소녀는 건방지고 매혹적일 것이다.’     


‘클러리서 댈러웨이는 한 여자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다, 젊었을 때 그녀는 자신과 같은 여자를 사랑했다. 그녀와 그 여자는 키스를, 동화 속 황홀한 키스 같은 딱 한 번의 키스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클러리서는 평생토록 그 키스의 추억을, 그 키스에 대한 터질 듯한 기대감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단 한 번의 키스가 약속한 것 같은 사랑은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그날 버지니아의 언니인 바네사가 버지니아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바네사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고 버지니아는 자신의 실내복과 머리가 엉망임을 깨달았다. 언니 바네사가 집으로 돌아갈 때 버지니아는 바네사에게 열정적으로 키스한다.     


‘그 키스는 순결한, 너무도 순결한 것이었지만 버지니아가 런던과 삶에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무엇인가로 가득했고, 탐욕도 구식도 아닌 사랑의 덩어리로 가득했다. 그 자체가 중요한 미스터리였던 그 키스는 이런 오후의 징후였던 걸로 될 것이고, 어떤 꿈의 언저리에서 빛나는 잡을 수 없는 광휘였던 걸로 될 것이다. 그 광휘는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이미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고, 아마도 오늘, 이 새로운 날에 벌어질지도 모를 어떤 일을, 무슨 일이 됐든 그것을 알게 되리라는 희망 속에 품고 있는 것이다.’     


버지니아에게 그 키스는 창문을 건드리던 나뭇가지에 대한 클리러서의 기억 같은 것이었다.     


남편이 나가고 난 뒤 로라 브라운은 아들 리처드와 함께 생일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한다. 기대와는 달리 케이크는 아마추어가 만든 것 같았다. 프로스팅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장미 쪽에 바짝 붙여 쓴 ‘댄Dan’의 마지막 글자 ‘n’은 짓눌린 것 같았다.      


‘그녀가 상상한 것은 더 훌륭한 케이크였다. 더 크고 더 눈부시며 더 풍성하고 더 아름답고 더 근사한 케이크를 기대했다.’     


‘로라가 후회하는 것은, 참아내기 힘든 것은 바로 케이크다. 케이크가 그녀를 당혹스럽게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건 단지 설탕과 밀가루와 계란에 지나지 않아. 케이크의 매력은 오히려 그 불완전함에 있어. 물론 그녀는 그 사실을 안다. 그래도 자신이 만들어낸 것보다 더 훌륭한 무엇인가를, 좀 더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적어도 겉은 매끈하고 축하 글씨는 반듯하게 쓰여 있기를 바랐다. 그녀는 꿈의 케이크를 현실에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그렇다고 인정한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더없이 깊은 안락과 충만한 느낌이 넘쳐나는 케이크. 짧은 시간일지라도 슬픔을 걷어낼 수 있는 케이크를 구워낼 수 있었으면 한다. 신기한 무엇인가를,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훌륭하게 보일 그 무엇인가를 창조했으면, 하는 것이다.’     


로라가 만들고자 하는 케이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완전한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이 진짜 정열을 바칠 그 무언가를 추구하기를 꿈꾼다. 버지니아에게 그것은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리처드에게도 그것은 작품이며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죽음이며 브라운 부인에게는 케이크가 상징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이웃에 사는 키티라는 고등학교 동창이 로라를 찾아왔다. 그때 로라는 자신의 머리와 실내복이 엉망임을 깨닫는다. 키티는 두 사람이 학교에 다닐 때 매우 인기가 많은 여학생이었고 언제나 당당했다. 그녀 역시 로라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날은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의사를 만나러 가려는 참이었다. 키티는 로라에게 개에게 먹이를 줄 것을 부탁하려고 들렀다. 키티가 두려움에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면서 로라는 키티의 뺨을 감싸고 키스를 한다.     


버지니아는 어느 공원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산책을 한다.     


’그녀는 육체는 없고 지각만 있는 깃털이 되어 공원을 부유한다. 그녀 앞으로 백합과 작약이 흐드러진 언덕에 양옆으로 크림색 장미꽃이 피어 있는 자갈 깔린 오솔길이 펼쳐진다‘.     


’이 공원 밑에 또 다른 공원이, 이곳보다 더 기묘하고 끔찍한 저승의 공원이, 이 잔디와 수목들의 뿌리가 자라고 있는 공원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챈다.‘     


의식으로부터 물질이 생겨나듯이. 1923년 버지니아의 의식의 흐름은 로라와 클러리서의 현실과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로라는 자살하기 위해 화장실에 숨겨두었던 약병을 꺼내 차를 몰고 달린다. 그러다 어느 모텔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모텔의 앞마당에는 분수와 장미 덤불 그리고 비어있는 돌 벤치가 보인다. 로라는 자신이 특이한 정원으로 향하는 꿈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정원은 버지니아가 걷고 있던 공원과도 비슷하고 클러리서의 아파트 뒤에 그녀가 가꾸고 있는 정원과도 비슷하다.     


’왠지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책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 같다.‘      


버지니아는 원래 댈러웨이 부인가 죽는 것으로 처리하려고 했으나 곧 생각을 바꾼다. 대신 책에 등장하는 어떤 시인을 죽여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로라는 모텔 방에서 자살하려다 결국 마음을 돌리고 아들 리처드를 맡겨 놓은 이웃 부인에게로 차를 몰고 간다.      


클러리서는 파티 준비를 끝내고 리처드를 데리러 그의 아파트로 간다. 리처드는 에이즈에 걸리고 난 뒤 가끔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오가곤 했다. 리처드는 아파트의 창문을 전부 부숴버리고 창문가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었다. 그가 죽을까봐 겁이 난 클러리서는 필사적으로 그를 내려오게 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서 말한다.     


'이야기를 하나 해줘.'

'어떤 이야기?'

'가장 좋은 날에 벌어진 일, 오늘 벌어진 일 말이야. 아주 평범하겠지만, 사실 그게 더 좋을 수

도 있어.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일이 말이야.'

'리처드……'

'무슨 일이든, 무슨 일이든 좋아.'

'글쎄, 뭐가 좋을까…… 오늘 아침 이곳에 오기 전에 파티에 쓸 꽃을 사러 갔어.'

'당신이?'

'응. 아주 아름다운 아침이었어.'

'그래서?'

'아름다웠어. 무척…… 산뜻했고. 꽃을 사서 집으로 가져와 물에 담갔지. 그거야. 그게 다야. 이제 그만 안쪽으로 들어와.'

'어느 해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처럼.'

'바로 그거야.'

'우리가 젊었을 때 함께 있던 어느 아침처럼.'

'그래, 그때처럼.'

'당신이 낡은 집에서 걸어 나오던 그날 아침처럼, 당신은 열여덟 살이었고 나는 막 열아홉 살이 되었던 그때처럼, 맞지? 열아홉 살이었던 나는 루이스와 사랑에 빠졌고 당신과도 사랑에 빠졌지. 그때 나는 이른 아침에 잠에서 아직 덜 깬 상태로 속옷만 입고 유리문을 걸어 나오는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건 본 적 없다고 생각했어. 이상하지 않아?'    


'우리 두 사람만큼 행복했던 사람도 없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그대로 창문 아래로 몸을 던진다. 우리 두 사람만큼 행복했던 사람도 없을 거라는 말은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 레너드에게 남겨 놓은 유서에 적혀있던 말이기도 했다.     


해가 저물고 6월의 그날 저녁이 되었다. 산책을 갔다 돌아온 버지니아에게 그녀의 남편은 왜 소설 속에서 꼭 누가 죽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버지니아는 ’남은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삶을 선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리처드의 장례식에는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갑자기 실종되버린 리처드의 어머니, 로라 브라운이 참석한다. 로라와 클러리서는 잠시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하고 클러리서는 생각한다. 우리는 파티를 열고, 외국에서 홀로 조용히 살기 위해 가족을 내팽개친다. 그리고 우리의 재능과 무조건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터무니없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꾸지 못할 책을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삶을 살아내고, 할 일을 하고, 그러고는 잠자리에 든다. 그토록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몇몇 사람은 창밖으로 뛰어내리거나 물에 뛰어들거나 알약을 삼킨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사고로 죽는다. 우리 중 대부분은, 절대 다수는 어떤 병에 서서히 잡아먹히고, 아주 운이 좋더라도 시간 자체에 잡아먹힌다. 위로할 거라곤 우리 삶이, 그 모든 역경과 기대를 넘어선 우리 삶이 활짝 피어나 상상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어쩌면 아이들까지도) 그런 시간 뒤에는 필연적으로 그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시간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도시를, 아침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시간들이다.

우리가 그것을 왜 그렇게 사랑하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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