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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n 17. 2023

1984 - 조지 오웰

영화 '1984'




1984는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집필한 소설로 48을 84로 뒤집은 1984년에는 이러한 세계가 펼쳐져 있지 않을까 하는 가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1948년 당시 전체주의가 만연해 있던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 사회를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국가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검열한다. 또한 우매화 정책을 통해 사람들을 좀비처럼 생각 없는 존재로 개조시켜 나간다.     


주인공 윈스턴은 국가 기관에 종사하는 외부 당원이다. 지금으로 치면 하급 공무원 정도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윈스턴이 사는 건물에는 층계참과 엘리베이터마다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에는 수염을 기른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 밑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빅 브라더는 국가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로 누구도 그의 정확한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포스터는 맞은편 집 앞에도, 길거리에도 붙어 있다. 포스터 속 눈동자는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며 동선을 감시한다. 헬리콥터가 지붕 사이를 날아다니며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엿보고,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가 사람들의 소리와 행동을 관찰한다. 주고받는 눈짓이나 목소리의 억양이 수상하기만 해도, 귓속말을 하기만 해도 반역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경우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가령 승전 소식이 보도될 때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심지어 이에 대한 신어까지 있는데, 표정죄(facecrime)가 그것이다.’     


윈스턴의 집 안에도 텔레스크린이 달려 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건축된 집에 살고 있었는데 덕분에 집 안에는 텔레스크린으로부터 사각지대를 이루는 작은 모퉁이가 있었다. 그 모퉁이에서 윈스턴은 남몰래 일기를 쓴다. 일기 쓰기가 불법은 아니지만(법이 없으니 불법이라는 것도 없다) 발각될 경우 사형 아니면 적어도 25년형의 강제노동을 선고받을 만한 사안이었다.     


숙청으로부터 안전한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당에 충성하는 사람들, 슬로건을 곧이곧대로 신봉하는 사람들, 아마추어 스파이들, 이단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사람들’ 등 천성적으로 우매한 사람들이었다.     


당원들은 ‘2분 증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증오를 표출해야 했다. 이는 북한의 ‘생활총화’라는 프로그램을 연상시킨다. 2분 증오 동안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이라는 사람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나면 참가자들은 그 얼굴에다 대고 야유를 퍼붓곤 했다.     


‘갈색 머리의 자그마한 여자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비명을 꽥꽥 질러댔다. 골드스타인은 오래전(얼마나 오래전인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의 지도급 인물로서 빅 브라더와 거의 맞먹는 지위를 누렸는데,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용케 탈출한 뒤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변절자이다 반동분자였다.’     


‘증오가 시작된 지 삼십 초도 안 되어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의 반 이상이 일제히 고함을 질러댔다. 스크린에 비친 자만심 가득 찬 골드스타인의 염소 같은 얼굴과 그 뒤에 나타난 유라시아군의 소름 끼치는 병사들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골드스타인을 보거나 그에 대한 생각만 해도 자동적으로 공포와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던 터였다.      


’이 분째로 접어들자 ‘증오’는 광적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미칠 것만 같은 그 염소 목소리를 묵살해 버리려는 듯 펄쩍펄쩍 뛰며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증오는 절정에 달했다. 골드스타인의 목소리는 진짜 염소 소리로 바뀌었다. 잠깐이지만 얼굴마저 염소 얼굴로 변했다. 염소 얼굴은 흐물흐물하면서 녹아내리는 듯하더니 금세 유라시아 군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군인이 무시무시한 거인처럼 기관총을 갈겨대면서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올 듯이 다가왔다. 그 바람에 앞줄에 앉은 사람들이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개심을 드러낸 군인의 얼굴 대신 검은 머리에 검은 수염을 기른, 권력과 신비스러운 정적에 싸인 빅 브라더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구세주여!”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스크린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빅 – 브라더! …… 빅 – 브라더! …… 빅 – 브라더!”라는 찬가를 낮고 느린 가락으로 반복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빅‘과 ’브라더‘ 사이가 길게 늘어지면서 이어지는 그 장중한 합창은 마치 야만인들이 맨발로 춤추며 쳐대는 북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리드미컬한 소리로 교묘하게 의식을 말살시키는 자기 최면 같은 행위였다.’     


인간은 무리의 행동에 영향을 받으며 그 행동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다. 2분 증오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국민의 불만을 외부의 적에게 투영하도록 설계해놓은 시스템이었다.     


2분 증오 동안 윈스턴은 어딘가 모르게 초연한 분위기가 감도는 오브라이언이라는 당원과 시선이 마주치게 된다. 윈스턴은 오브라이언도 혹시 당에 회의적이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된다.

     

‘그들은 겨우 일이 초 동안 서로 모호한 눈빛을 주고받았을 뿐이고, 그것이 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그러나 혼자 폐쇄된 고독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도 기억해 둘 만한 사건이었다.’     


‘사상범 체포는 항상 밤에만 이루어진다. 갑자기 잠을 깨워 마구 흔들거나 어깨를 거칠게 휘어잡는 우악스러운 손, 눈에 들이대는 불빛, 침대 주위의 험상궂은 얼굴들은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재판과 체포에 대한 보고서 따위는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밤중에 사라져 버린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은 등록부에서 지워지고, 그에 관한 모든 기록도 삭제된다. 그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도 부인되고, 끝내는 완전히 잊히고 만다. 그러니까 그는 아예 없어져 버리는데, 이런 것을 두고 흔히 ’증발했다‘고 말한다.’     


1984의 세계 속에서는 가족도 서로 믿을 수 없는 존재다. 철저하게 세뇌를 당한 아이들이 자기 부모를 당에 밀고하기 때문이다.     


‘스파이단은 제도적으로 아이들을 소야만인으로 개조하여 당의 강령에 조금이라도 반발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서른 살 이상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자질하는 아이(이를 ’꼬마 영웅‘이라고 한다.)가 부모의 대화에서 어떤 위험한 말을 슬쩍 엿듣고는 사상경찰에 고발했다는 기사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타임스>에 실리기 때문이었다.’     


‘윈스턴은 마치 기괴한 세계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어 길을 잃은 채 깊은 바닷속 숲을 헤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혼자였다. 과거는 죽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내 편이 있을까? 당의 통치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리란 걸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빅 브라더의 눈은 동전, 우표, 책표지, 깃발, 포스터, 담뱃갑 등 그 어디에나 있었다. 늘 그 눈이 감시를 하고, 그 목소리가 포위했다. 잘 때든 깨어 있을 때든, 일을 하든 식사를 하든,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목욕할 때든 침대에 누워 있을 때든 상관없었다. 빅 브라더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진실을 말하는 외로운 유령이었다.’


윈스턴이 당에서 하는 일은 기록을 말살하고 새로 쓰는 일이다. 가령 당에서 올해 밀 생산량이 얼마 만큼이다 라고 발표했는데 실제 생산량이 그 숫자와 다르면 그 전의 기록은 모두 삭제하고 수정된 숫자를 기입하는 식으로 아예 역사 자체를 날조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무도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당이 틀렸다고 반박할 수 없게 된다.     


윈스턴에게 내려오는 지시 사항에는 위조 행위를 하라는 언급은 일체 들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오자, 탈자, 인용상의 실수 등을 찾아내서 바로잡으라는 명령일뿐이었다. 당은 명령조차 돌려 말함으로써 훗날 문제가 될 만한 싹을 모조리 제거해버린다.


‘과거는 지워졌고, 지워졌다는 사실마저 잊혀서 허위가 진실이 되어버렸다.’ 

    

‘과거는 이미 날조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조될 것이다.’      


‘결국 당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고 발표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 것이다.’   

  

‘앞으로도 경험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외적 현실의 존재마저 그들의 철학에 의해 교묘하게 부인될 것이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이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또, 당은 의도적으로 신어(Newspeak)를 만들어 원래 사용해오던 영어를 없애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주입시킨다. 신어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윈스턴의 동료 사임은 신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낱말로 표현될 것이고, 그 뜻은 엄격하게 제한되며 다른 보조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걸세.”     


“세월이 흐를수록 낱말 수는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의식의 폭도 좁아지게 되는 거지.”     


“정통주의는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걸 뜻하네. 요컨대 정통주의란 무의식 그 자체일세.”     


‘머지 않아 사임은 증발될 것이다. 윈스턴은 문득 그런 확신을 품었다. 그는 너무 지적인 인물이다. 모든 것을 지나칠 만큼 정확하게 관찰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당은 사임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는 사라질 것이다. 이미 그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다.’    


사임은 당에 매우 열성적인 사람이지만 윈스턴은 그런 사임조차 증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당이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 어떤 부류인지가 자명하게 드러난다. 아무리 열성 당원이어도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지닌 사람은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윈스턴은 사임과 함께 밥을 먹다가 어떤 남자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남자는 골드스타인을 비난하고 있거나 사상범과 태업자들에 대한 더욱 강경한 조치를 주장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유라시아 군대의 잔학 행위에 격분하거나 빅 브라더와 마라바 전선의 영웅들을 찬양하고 있으리라. 아무튼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순수한 정통이며, 순수한 ’영사‘인 것만은 확실하다. 윈스턴은 턱이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 눈 없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남자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꼭두각시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남자의 머리가 아니라 그의 목구멍이다. 그가 내뱉는 것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말은 아니다. 그저 오리가 꽥꽥거리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소음일 뿐이다.’     


이 남자는 생각하는 능력이 거세된, 무의식적으로 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좀비 같은 인간을 상징한다.     


‘어떤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납득하지 못할뿐더러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공적인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 파괴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무지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전반적으로 우매화된 전체주의 사회에서 혼자 깨어 있는 사고를 하고 있는 윈스턴은 철저하게 고독할 수밖에 없다. 누구와도 진짜 속마음을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불행하다. 그런 윈스턴에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 당원이 접근해온다. 여자 당원의 이름은 줄리아다. 둘은 비밀리에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줄리아 역시 당이 선전하는 내용이 모두 거짓임을 꿰뚫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두 사람이 숙청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게 되었다.


“단 한 가지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나는 자백을 말하려는 게 아니야. 자백은 배신이 아니지. 자백을 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감정이야. 예컨대 그들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게 진짜 배신이란 얘기지.”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즉, 고문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낼 수는 있지만 그 생각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고 두 사람은 믿고 있었다.     


증오주간의 엿새째 되는 날 사람들의 증오심도 절정에 달했다. 바로 그 절정의 순간에 오세아니아(윈스턴이 속해 있는 국가)는 더 이상 유라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가 아니라 이스트아시아와 전쟁 중이라는 것이었다.     


‘연설이 이십 분 정도 진행되었을 때였다. 전령이 급히 연단으로 오르더니 연사의 손에 종이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연설을 계속하며 그 종이쪽지를 펴서 읽었다. 그의 음성이나 태도, 연설의 내용까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명칭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일순 아무런 말도 없는 가운데 군중 사이에서 알았다는 듯, 조용한 파문이 번졌다. 오세아니아가 이스트아시아와 전쟁 중이다! 다음 순간 무서운 동요가 일었다. 광장에 걸려 있는 깃발과 포스터의 내용이 틀렸다! 포스터의 얼굴들 절반 이상이 잘못 그려진 것이다! 이것은 태업이다! 골드스타인의 첩자들이 잠복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 터졌다. 사람들이 벽에서 포스터를 뜯어내고, 깃발을 발기발기 찢어 발로 짓밟았다. 스파이단들이 날렵하게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더니 굴뚝에 매달려 나부끼는 현수막을 잘라버렸다. 그 뒤 이삼 분도 안 되어 모든 소란은 막을 내렸다. 연사는 여전히 한 손으로 마이크를 움켜잡고 어깨를 앞으로 쑥 내민 채 다른 한 손으로는 허공을 할퀴면서 연설을 계속해나갔다. 일 분쯤 지나자 다시금 야수와 같은 분노의 함성이 군중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증오주간의 행사는 증오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전과 똑같이 진행되었다.’     


한 순간에 적국이 유라시아에서 이스트아시아로 바뀌었지만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이 같은 허술한 대응에도 누구 하나 의문을 품지 않는다. 동물적인 증오를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적국이 유라시아건 이스트아시아건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줄리아와 윈스턴은 채링턴이라는 노인의 집 방 안에서 밀회를 나누곤 했다. 채링턴은 노동자 계층으로 낡은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 채링턴은 당의 프락치였는데 노인이 아니라 노인으로 분장한 젊은 당원이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채링턴의 방에 있다가 붙잡혀서 당의 중앙 건물로 끌려가게 된다. 독방에 수감되어 있던 윈스턴은 잠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 그곳에 너무도 굶주린 나머지 뼈가 다 드러나보이는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의 몰골이 너무도 비참했기 때문인지 다른 사상범 한 명이 간수 몰래 숨겨두었던 빵 한 조각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간수가 와서 그 피골이 상접한 남자를 고문실로 끌고 가려 하자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또 볼 사람이 있나? 누구든지 말만 해. 다 볼 테니까. 그게 누구든,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 나는 마누라도 있고, 자식도 셋이나 돼. 제일 큰 놈이 여섯 살도 안 됐어. 그 애들을 몽땅 잡아와 내 눈 앞에서 목을 따더라도 참고 보겠어. 그렇지만 제발 101호실만은!“     


그러면서 그는 자기에게 빵을 준 죄수를 지목하기까지 한다.     


“끌고 가야 할 사람은 바로 저자예요. 내가 아니고요. 저자가 얼굴을 얻어맞고는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다 말할 테니까요. 저자야말로 당의 적이예요. 내가 아니고요.“      


곧 윈스턴도 고문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오브라이언이 그를 고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6년 동안이나 관찰해왔었다고 말한다. 윈스턴이 반동분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서서히 덫에 걸리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수개월 동안 온갖 고문을 다 당하면서 윈스턴은 철저하게 무너져내린다.     

‘바라는 게 있다면 딱 한 가지, 빨리 고통을 멈추어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세상에서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고통 앞에서는 영웅도 없다. 절대로 없다.’      


‘고문이 어찌나 한없이 계속되는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고약하며 용서할 수 없는 일은 간수들의 매질이 아니라 그 매질에도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간수들이 때리기도 전에 살려달라며 애원했고,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만 해도 진짜든 가짜든 죄를 자백하곤 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재빨리 알아내어 다시 못살게 굴기 전에 얼른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는 고위 당원의 암살, 불온문서 배포, 공금 횡령, 군사 기밀의 암매, 각종 파업행위 등에 대해서 자백했고, 오래전인 1968년 이스트아시아 정부의 돈을 받고 간첩 활동을 했다고도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독실한 신자이며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데다 성도착자라고 거짓 자백을 했다. 그는 또 아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자신은 물론 심문자들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아내를 죽였다고 고백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골드스타인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맺었고,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 거의 가담한 지하조직의 일원으로 활약했다고도 털어놓았다.’     


고문을 당하는 동안 윈스턴은 정신 개조를 위한 세뇌 교육도 함께 받게 된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두 눈뿐이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무슨 기계 같은 것이 규칙적으로 천천히 똑딱거렸다. 그 눈은 점점 커지면서 더욱 반짝거리며 빛났다. 갑자기 그는 자리에서 붕 떠올랐다가 그 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치 그 눈에 삼켜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빅 브라더의 두 눈에 삼켜져 버리는 것 같은 경험은 윈스턴의 의식이 빅 브라더에게 저당 잡히고 노예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우리는 적을 분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개조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윈스턴 이전에 당에 저항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희생자들은 고문과 감금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야비하게 굽실거리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했네. 그들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무엇이든 다 털어놓고, 자기들끼리 서로 욕하고 고자질하며 자기만 살기 위해 살려달라고 애원했지.’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자신들이 범한 죄에 대한 슬픔과 빅 브라더에 대한 애정뿐이었네. 그들이 빅 브라더를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 자네도 알면 감동할 걸세.’   

 

‘이보게, 윈스턴. 자네가 인간이라면 자네는 마지막 인간일세. 자네와 같은 인간들은 이미 멸종됐네. 우리가 그 후계자들이지. 자네는 ’혼자‘라는 걸 알고 있나? 자네는 역사 밖에 있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네.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잔인하다 해서 자네는 자네 자신이 우리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조지 오웰은 한 때 이 책의 제목을 ‘유럽의 마지막 인간’으로 할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1948년(1984년이 아니다)의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조지 오웰이 보기에는 1948년에 이미 그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의식이 깨어 있는 인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2023년이 된 지금 그런 인간은 아예 없다.      


윈스턴은 고문 때문에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서 당이 바라는 인간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다. 체포되기 전에 줄리아와 나누었던 대화에서 당이 인간의 생각이나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었지만 그것마저도 순진한 낙관론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에서 세뇌시키려는 내용을 습득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브라이언은 2+2가 5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지만 윈스턴은 2+2가 5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당은 지난 몇 년 동안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 중이라고 선전해왔었다. 그러다 한 순간에 오세아니아는 이스트아시아와 전쟁 중이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지성이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오세아니아가 그 동안 이스트아시아와 전쟁 중이었다고 믿을 수가 있겠는가. 우매한 인간이 각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지성을 갖춘 인간이 우매해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우매성이 지성만큼이나 필요한데, 우매해지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윈스턴은 당에서 원하는 좀비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1984의 마지막 문장대로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He loved Big Br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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