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집해온 '나'의 상이 있었다. 예쁘고 돈 많고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 사랑을 듬뿍 받는 아내이자 커리어 우먼.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선망할 법한 그런 모습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 오니 나는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니올시다,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도 아니올시다, 커리어가 탄탄한 인간도 아니올시다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가? 그것도 아니올시다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것들을 필사적으로 숨겼겠지만, 이제는 안다. 현실은 거부할 때 더 아프다. 허나 받아들이고 나면 아픔은 사라지고 객관적인 상태만 남는다.
이번 주 집 근처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이민자 영어 학교에 등록했다. 초보운전자가 덜덜 떨며 도착한 이곳은...이민자를 위한 혜택! 1년에 단돈 50불! Literacy School ! (문해력 스쿨) 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섰을 땐 오만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나 영어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여기 꼭 와야 해? 아...나 나름 글 좀 쓴다는 인간인데...문해력 스쿨...? 차라리 빨리 취업해서 돈이나 벌까."
안내데스크에서 통역기를 켜고 직원과 대화하는 멕시칸 학생을 보며 그 마음은 더 크게 속삭였다. "야야. 이런 곳에 있으면 네가 더 작아지는 거 아니야? 널 이민자라 생각하지 말고, 이방인이라 생각하지 말고 !!!! 기세!!!!! 얌마!!!!"
하지만 그 마음을 돌려먹는 건 매우 쉽다. 가족 제외 원어민과 대화하면 된다. 그들 앞에서 수줍은 꼬막이 되어버리는 나를 마주하면, 이내 발그레한 새학기 초등생처럼 책가방 곱게 싸서 학교가게 된다.
내 안에서는 언제나 '잘난 나'와 '못난 나'가 줄다리기를 한다. 하지만 얘들아, 너희가 그렇게 싸울 동안 그냥 현실을 마주해 보는 건 어때? 그냥 넌 지금 이런 상태인 거야. 잘난 것도 못난것도 아니고...그냥 이런 상태라고. 오케이?
학교에서 2시간 짜리 영어 테스트를 봤다. 결과는 리스닝 최고 레벨, 리딩은 7단계 중 4단계를 받았다. 스피킹과 라이팅 테스트를 한다면 아마 3단계 정도 되지 않을까. 초록색이 잘 어울리는 인자한 선생님은 나에게 최고 레벨 클래스를 추천해주셨다. 다행이다. 미국인 남편과 12년 째 지내는 자존심은 지켰다.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수업은 어떨까? 잘할까, 아니면 처참하게 깨질까? 모르겠다. 경험해보면 알겠지.
부족함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걷는 것.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그게 진짜 '기세' 아닐까. 언어는 좀 딸리지만,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는 그래도 풍부한 경험을 했오요!!!! 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그런 거 말이다.
갑자기 약간 19금 이야기를 하자면 (애들은 가라) 누군가 학벌은 큰 곧휴 같은 거라 했다. 그걸 다 내놓고 다니면 흉이지만, 소중히 가려놓으면 그게 그 사람의 엄청난 자신감이 된다고. (ㅋㅋㅋ아 이제 이런 얘기도 이제 공개적으로 막 써요. 아가씨 때는 안그랬는데요...) 마치 갑부들 명품 두르면 하나도 안멋있는데 부자들 명품 안입어도 고급미 넘치는 것처럼. 결국 기세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안에서 부터 꽉찬 잔잔하고도 화사한 인간이 되고 싶다.
얼마 전 생일이었다. 난 이제 35살이다. 와 빼박 30대 중반이다.
난 미국 와서 4개월 내내 짱박혀 셀프 리모델링 하느라 아직 가족말고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그래서인지 내 정서는 여전히 한국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생일 전날부터 마음이 유독 아렸다.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품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혼자 저녁 차리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 안의 자아가 "나 아직 여기 있으니 축하해주고 사랑해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생일 당일, 휴대폰을 여니 자는 동안 도착한 가족과 친구들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멀리 있는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인연들이 고마워 울컥 눈물이 났다. 난 꽤 오랜 시간 그들과 살아가는 근황을 나누며 마음을 채웠다. 누군가는 아기를 가졌고 누군가는 약혼을 했다. 누군가는 똑같은 일상을 보냈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았다. 난 그들의 다양한 삶을 들으며 많은 세상 여행을 했다.
그리고는 남은 시간 죄책감 없이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생일날 꾸미지도 않고 집에서 뒹굴거린 건 처음이었는데, 이상하게 너무 행복했다. 그러다 오후가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들이 도착했다.
새 가족이 된 동서가 멀리 해외에서 보낸 꽃다발과 편지! 와 꽃다발 배달 선물 처음 받아봐. 꽃다발은 마치 내게 "너 스스로를 대접하며 살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화사해졌다. 내 동서는 자신을 잘 가꾸고 또 그 마음도 잘 나누는 사람인데, 이 친구에게 정말 많이 배운다. 난 아직 스스로를 대접하는 걸 잘 못한다. 잘하고 싶다.
이외에도 이번 주 일 시작해서 힘들었을 텐데도 점심시간 마다 전화해주는 남편, 두 분의 시어머니, 그리고 스페인에 머무는 소중한 친구와 2시간 넘게 수다를 떨며 내 마음은 완벽히 꽉 찼다.
이날 남편은 야근으로 늦었고 둘이서 하는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혼자 미역국을 끓여 먹었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너무 고맙고, 나도 더 힘이 되어주고 싶고, 또 그의 부재에도 나를 다양한 방법으로 채워주는 다양한 관계들이 있어서.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를 채워주는 존재는 꼭 한 명일 필요가 없다. 다양할수록 더 좋다.
재미있는 건, 내가 나의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일수록 타인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데... 그렇게 연결된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채워준다.
요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나를 두르고 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니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지는 거다. 한국에 있을 때와 지금의 나는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다.
천문학자 심채경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나라는 존재를 너무 촘촘하게 가둬놓으면 내가 나로서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발레리나가 발끝으로 서있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너무 쉽게 무게 중심이 흔들릴 수가 있죠. 그런데 내 자신이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거나 누워있다고 생각하면 무게중심을 잡기가 너무 쉽거든요. 그러니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거나, 나를 어떤 특정한 모양으로 존재하기를 기대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 말 듣는데 마음이 확 편해진 경험이 있다.
추구미? 추구하는 인생? 다 좋은데 그게 나라는 자아를 좁게 가두면 안된다. 그것은 내가 그릴 그림의 밑그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