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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Sep 03. 2021

6살, 포켓몬스터와의 전쟁

공부는 엄마의 욕심일까?

라떼는 '포켓몬스터'가 최고 히트였다. 친구들은 빵을 사서 몬스터 스티커를 모았고 중복된 스티커가 나오면 관심도 없던 내 필통에 쭈욱 붙여주곤 했다. 


몬스터라면 피카츄밖에 모르던 나의 작은 분신인 6살 된 아들이 이 조그마한 괴물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우연히 아빠가 하던 포켓몬고라는 게임을 본 후, 몬스터를 잡고 그 아이들을 키워서 배틀까지 하게 된 것인데, 순식간에 아이는 게임과 그 게임을 설명해주는 미디어에 퐁당 빠지게 되었다.


Oh My God...


이렇게 벌써부터 게임을 해도 되나, 남이 게임하는 영상을 도대체 왜 보고 앉아있는 거지? 아이가 포켓몬스터에 푹 빠져서 만날 펄기아, 라프라스, 갸라도스 등등을 말하고 다니는데, 이거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는 포켓몬스터 도감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연구하며 수백 마리의 몬스터의 이름과 타입, 기술 등을 외웠고 포켓몬스터의 이름을 읽기 위해 한글까지 익히게 되었다. "이건 뭐야? 무슨 몬스터야?"라는 질문에 수천번 답을 해주니 몇몇 한글 단어들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글은 익혀냈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다.


너무 자주 봐서 다 닳아버린 포켓몬스터 도감


'아이의 몰입이 이러한 시너지 효과도 내는군' 좋아하기도 잠시, 하원 하면 태블릿부터 찾는 아이를 보며 답답함과 한심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리는 매일 밤 집 앞 편의점 500원짜리 포켓몬스터 뽑기에서 뽑아낸 수십 마리의 포켓몬 모형을 가지고 대결을 했는데, 


전광석화!! 이야아아압!! 으악!! 피융 피융!! 백만 볼트!!! 와 같은 엄청난 의성어를 뱉어내며 싸우고 나면 진이 다 빠졌던 것 같다. 


이제 얌전한 활동 좀 하려 하면 아이는 포켓몬 그림을 그리고 자기만의 포켓몬스터 책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싶어 했고, "엄마랑 (영어)책 읽자~ 엄마랑 (영어)카드놀이하자"와 같은 제안에 심드렁해할 수밖에 없었다.


푹 빠져 좋아하는 게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할 수 없었고, 엄마인 내가 원하는 것을 하자고 푸쉬하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려놓았다. 



이제는 미디어 없는 세상에 살 수 없다고, 좋아하는 것이 완전히 충족이 되어야 뜸해질 수도 있겠지 싶었다. 나도 한 발라드 가수에 푹 빠져서 팬카페에도 가입하고 틈만 나면 유튜브 찾아보며 힐링하고 있는데, 이건 사실 누가 말려도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내 피부로 느끼며 아이의 취미도 존중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포켓몬스터에 대한 관심을 영어로 살짝 이어볼까 싶어 영어 도감도 사주었지만, 몬스터에 한국어 이름과 영어 이름이 달라 아이는 혼란스러워했고 영어 도감은 자주 펼쳐보지 않았다.



속 터지는 마음을 살짝 내려놓은 와중에도 놓지 않으려 노력한 것들은 단 세 가지

!


1. 생활영어는 꾸준히 써 주었다. 


영어로 리액션해주고, 일상에서의 간단한 표현들은 언제나처럼 영어로 했다.


Good morning Sean, breakfast is ready! 션, 아침 준비되었다.


I'm home! 엄마 왔다!


I missed you, my sweetheart! 우리 아기 보고 싶었어요.



2. 스포츠, 야외활동은 필수!


션은 매일 태권도에 다니고 주 1회는 축구도 하는데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시간을 갖게 했다. 하루에 몇 분이라도 뛰고 땀 흘리는 시간이 있는 아이를 보니, 구부정하게 미디어를 보고 있어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또 매 주말 캠핑을 가서 자연에서의 시간을 꼭 가지고 있다. TV를 많이 보면 아이 몬스터 (eye monster)가 와서 눈 나쁘게 만든다고 한 게 아직은 통해서, 나무와 하늘을 봐야 몬스터가 사라진다고 함께 자연을 만끽한다.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


물론 자연 속에서도 포켓몬을 잡고, 영상도 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에만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덜하다.


저렇게 미디어가 좋을까



3. 하루에 15분이라도 책상에 앉아 미션 하기. 


13 + 2 = 와 같은 수학놀이, 쉬운 영어 파닉스 한 두 페이지나, 한글 연습이라도 꼭, 매일, 반드시 하고 있다.  


특히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스스로 해내는 것은 엉덩이 힘을 기르기에 좋은데, 시작하기까지가 어렵고 어찌어찌 시작을 해도 첫날 둘째 날은 하기 싫어하고 몸을 베베 꼬는데, 이게 일주일 이주일이 넘어가면 당연히 하루에 얼마 동안은 책상에 앉아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랑 도형에 대해 알아보거나 공부가 싫은 날은 같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함께 책상에 앉아 무언가 하는 시간은 익숙하고 중요한 하루의 일과가 된다. 




아이는 자라나면서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생기게 될 테고, 물론 그것이 TV나 게임이라면 되도록이면 조금 더 커서 하게 되길 부모는 바라겠지만 그래도 아이의 관심사를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하나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미디어를 하는 시간을 제한해주거나, 알람을 맞춰놓고 시간이 되면 끄는 연습을 하며 자제력도 키워줘야 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고 나서 엄마 아빠와 더욱 신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재미난 놀이를 함께 하고 그러면서 많은 칭찬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 때문인지 나도 포켓몬스터 박사가 되었다. 오늘은 션이와 함께 어떤 몬스터를 잡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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