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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15. 2019

쿨한 엄마와 유난 떠는 엄마의 한 끗 차이

품위 있는 그녀, 가능할까?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다짐한 것은 두 가지였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이니 품위 있고 우아하자는 것과, 애 키우며 유난 떨지 말자는 것.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더라도, 하나도 제대로 이루기 힘든 것이 바로 엄마로서의 삶이었다.


얼마 전 나는 심장이 철렁한 경험을 했다. 새 학기가 되어 어린이집 반이 바뀌고, 엄마 6명, 아이들 6명이 뭉쳐 식사를 하기로 했던 것! 모두 신이 나서 깔깔대며 상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글쎄 앞서가던 같은 일행 엄마가 그 무거운 문을 잡아주지 않고 그냥 놓아버린 것이다.


아이들 우르르 들어가는데, 자기와 자기 아들만 쏙 지나가고는 문도 안 잡아준 그녀 때문에 우리 아들은 탄성에 의해 더욱 무겁게 돌진하던 유리문 손잡이에 이마를 맞았고 몇 미터 날아갔다. 태어나서 가장 심하게 울던 우리 아들을 보고 그 엄마는,


"울 아들이 내 손을 잡고 끄느라 문을 못 잡아줬어."


하며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래서 엄마들이 자기 아이에게 유난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다. 아무리 일행이 있고 주변 다른 엄마들이 있어도 내 새끼는 무조건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참 쿨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안전과 직결되는 수많은 상황 속 "안 돼! 다쳐! 하지 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매 순간 부정적인 잔소리만 던지며, 내 아이 다치거나 피해 입을까 전전긍긍하며 사는 삶이나, 작은 트러블에 날이 서서 따지고 드는 엄마의 삶보다, 조금은 쿨하게 지켜보고, 이해할 줄 아는 아량을 갖는 것이 조금은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품위 있는 그녀'가 되고 싶다


얼마 전 아들이 어린이집 친구에게 물려왔다. 가슴팍을 꽉 물려 이빨 자국이 나고 피까지 비쳤다. 하원 시 죄송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놀다 보면 조금 다칠 수도 있죠."


쿨한 엄마인 양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우리 아들이 친구 장난감을 먼저 빼앗었다는 뉘앙스의 말도 들렸던 것 같고, 그 아이 엄마에게 잘 지도하라 하겠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지만 나는 눈물을 참는데 온 힘을 쓰고 있었다.


'내 새끼, 얼마나 아팠을까.'


집에 오는 길에, 그 아이 엄마에게 사과 전화가 왔고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웃어보였고, 우리 모두는 쿨하게 이번 일을 넘어갔다. 그리고 이번 4살 반으로 올라간 아들은 그 아이와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또 같은 반이 되었네요! 친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어 다행이에요^^ 입학식 때 만나요.



먼저 카톡을 남겼고, 역시나 반갑다는 답이 왔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바뀌어 정신없고 혼란스럽던 어린이집 새로운 반에서의 첫날, 나는 그 엄마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두 아이들은 참 예쁘게 잘 어울려 놀았다.


왜 애를 무냐!! 따지고 지지고 볶고 약값 청구하고 했다면, 반이 바뀌어 부모와 함께 적응하던 그 시간이 양쪽 모두에게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아이들끼리 있었던 일에 엄마가 꿍해서, 편 가르고 남에게 욕하고 험담할 일이 아니다. 내 아이도 어느 상황에선 다른 아이를 밀치거나 때릴 수 있으니.




사실 꽤 품위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새 학기가 되어 어린이집 반이 바뀌며 내가 원장님께 강력하게 어필한 것이 하나 있었다.


"제발 OO반 선생님 반이 되게 해 주세요."


두 분의 선생님 중, 한 분은 밝고 명량하시고, 다른 한분은 차분하고 조용하신데, 많은 엄마들이 밝은 선생님의 반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원장님께 엄청 어필했고, 어린이집 행사 때도 많이 돕곤 했으니 우리 아들은 OO반이 되겠지~'


그런데, 두둥!!!! 우리 아들은 차분한 선생님의 반이 되었다.


"아니 어떻게, 내가 그렇게 요구를 했건만! 원장한테 전화할까?"


"아니야, 왜 그 선생님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려 해? 전화해서 따진다고 바뀔 것도 아니고, 우리 아들에게 좋을 일 하나 없잖아."


나보다는 훨씬 대인배인 신랑의 말에 수긍하고는,


"와!! △△반 되었대! 정말 잘 되었다~ △△샘 너무 예쁘고 좋으신데~ 진짜 최고다!"


하며 아들에게 더 오버하며 축하를 했고, 어리둥절하던 아들은 △△반이 되어 너무 좋아! 하며 방긋 웃어 보였다.


3월 개학 이후 2주, 난 우리 선생님이 정말 좋다!


차분하신 만큼 다정다감하고, 아이들에게 상냥하셨다. 우리 아들이 기저귀 떼고 생활하기 연습 중인데 실수 없도록 잘 챙겨주신다. 키즈노트에 사진도 메시지도 꼼꼼하게 써주시고, 아이도 새로운 선생님을 정말 좋아한다.


그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을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어깨너머로 살짝 보이던 선생님 성향 때문에 지레 판단하고 오해하고 열 올 리던 내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원장에게 전화할까, 갈등을 겪던 찰나, 남편까지 나서서 당장 전화해!! 했다면 정말 진상 부모가 되었겠지.


평정심을 유지하라.


내가 배운 또 하나의 레슨이었다.


그래, 사소한 일에 열내지 말고, 조금은 차분하게 중립적인 위치에서 지켜보는 것이 현명하구나.


비가 온다고 화낼 것인가


지하철, 옆 자리 남학생이 읽는 책 속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온다고 화낼 것인가'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명하게 위기 상황을 헤쳐가면 되는 것이다.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그런데 예외도 있다.


나는 아이들 들어오는데 문을 놓아버린 엄마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내가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가 보다. 초딩같아도 난 그 엄마랑은 안 놀 거다.)


인간이 살아가며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매너와 교양, 그게 없는 사람과는 굳이 함께 갈 필요 없지 않을까?


물론, 내 새끼는 내가 챙겨야지, 문을 안 잡아준 그녀만 탓하는 것이 좋은 자세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상대에 대한, 다른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있던 어른과는 친구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그 집 아들이 우리 아이를 자꾸 때린단다.


하, 난 쿨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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