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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01. 2019

철학이 없는 부모는 되지 말자.

대한독립만세! 우리 아빠는 역사 담당


수년 전, 미용실에서 어떤 잡지를 대충 넘겨보다가 거창 국제학교의 함승훈 이사장의 인터뷰를 읽고는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아내를 잃고 두 아들을 의사로 키운 함 이사장의 자녀교육철학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두 아이가 다섯 살, 세 살 때 암으로 아내를 잃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다는 아픔 대신 아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내용이었다.


고작 다섯 살, 세 살배기 아들을 놔두고 눈을 감아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음과,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한 젊은 아빠의 찢어지는 마음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의 교육 철학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식과 믿음을 주자.’ 


지식이 있으면 세상 어디에 가든 굶어 죽지 않기 때문이고,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종교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모국어를 제외한 외국어를 필수로 꼭 익히라고 강조를 한다고 내용도 인상 깊었다.


이렇게 부모는 내 자식을 교육할 때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교육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보면, 그냥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먹이고, 재우고, 쌔우고, 어린이집 보내고. 물론 아이 하나 제대로 된 사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부모의 희생과 사랑으로 자녀가 살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자녀교육에 대한 뚜렷한 철학 없이 그냥 하루하루 아이를 보기만 하는 부모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내 생각을 주입시키지 않고,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지지하겠다."


물론 아이가 어릴 때는 무엇이든 배워보고, 접해보며, 경험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한 부모의 자세이다.


하지만 자녀의 학교 입학 혹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취업을 앞두고 부모는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고, 내 아이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무엇을 잘하고 잘 못하는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녀의 관심분야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많은 대화를 통해 인생의 현명한 길잡이가 되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가장 훌륭한 조언자이다


예를 들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많은 아시아 혹은 인도의 이민자들은 자녀들이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먼저 언어의 유창성에서 백인들에게 뒤쳐지므로, 아예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최상의 기술직에 종사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안정되고 부유한 미래를 쉽게 상상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반에서도 1,2등을 꼭 하는 똑똑한 내 자녀가 연기, 연극 쪽에 대한 큰 관심으로 연극영화과의 진학을 원한다면? (영화 연극계는 이민자들에게 쉽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아주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이다.)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자식이 안정된 길을 걷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삭막하고 고난이 예상되는 길이라도 자녀가 원한다면 지지해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부모는 인생의 선배로써 자녀가 항해하는 깜깜한 망망대해에 빛을 비춰주어야 하는 존재여야만 한다.




우리 신랑과 나는 아이 교육에 대한 대화를 참 많이 하는 편이다. 아이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 아이가 오늘 해낸 것, 함께 한 것, 실수한 것, 모든 것을 공유하고 아이의 빛나는 미래를 함께 꿈꾼다.


우리 부부 모두, 내 아이가 어떤 직업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하는 마음은 없지만, 아이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아이가 가슴속에 심었으면 하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남편의 경우는 바로 '역사'이다.


"나는 이렇게 회사 다니지 않았으면 역사 선생님이 되었을 거야."


시골 출신인 남편은 동네에서 놀거리가 없어 항상 아빠와 역사유적지를 다녔다고 했다. 박물관에 가고, 많은 책을 읽어온 그는 역사에 관심이 많고, 아이가 우리 선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역사를 아는 국민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나는 역사책을 보면 막 고문 이야기 나오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슬퍼서 역사가 싫어."


"이번 '항거'라는 유관순 영화도 슬플까 봐 못 보겠어."


내가 이렇게 한심한 소리를 하면 남편은,


"그래도 알아야 하는 게 역사고, 꼭 봐야 하는 영화야."


이렇게 말을 한다. 그럼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반성하게 된다.




오늘 3.1절 아침부터 우리 신랑과 아들은 분주했다. 뭐 하고 있나 보니, 태극기를 그리고 있었다.

태극기를 그려 창 밖에 세워놓은 부자


대한독립만세!


단지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며, 자신의 가족과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선조들에게 감사하고자 아이에게 많은 설명을 해주는 신랑이었다.


사실, 나는 아들의 영어교육이나 글로벌 마인드와 같은 것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라 '역사교육은 당신이 책임져' 하곤 했지만, 우리 신랑의 꾸준한 역사에 대한 강조를 보며 동갑내기인 그를 참 존경하게 되는 것 같다.


 

현충일 야구장 방문

현충일에 간 야구장에서도 우리는 응원봉이 아니라 태극기 (조기)를 흔들었다. 그 날 아침에도 남편은 23개월 아기를 바닥에 앉혀놓고, 역사 이야기를 하며 태극기를 만들고 있었다.


"태극기 들고 야구장 가면 화면에 잡히려나?"


내가 한심한 소리를 해도, 우리 신랑은 아이에게 우리 역사의 중요성,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철학을 강조하곤 한다.


XX섬이 친일파 소유라는 것을 알고는 가지 않는, 자기가 아주 좋아하던 X라면이 친일파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브랜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남편이다.


한 번은,


"일본 온천여행 가자."


고 제안하는 나에게,


"일본이 우리에게 한 짓이 있는데 어떻게 일본에 놀러 갈 생각을 해"


하길래 앞 뒤 꽉 막혔다고 속으로 비난했는데, 이 남자는 신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역사에 대한 후손들의 관심을 아들에게도 잘 가르치고 있다.


 

추석에 한복을 곱게 입고


할로윈이 되면 나는 참 신난다. 재미있는 옷을 입고 파티를 하자며 집도 꾸민다.


그런데 우리 신랑은 우리의 명절도 챙기자고 한다. 지난 추석, 예쁜 한복을 곱게 입고, 아파트 단지에 나가 사진도 찍고 연도 날렸다. 아파트 주민들이 힐끔거렸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나는 우리 아들이 영어 잘하고, 세계로 나가 수많은 다른 나라 청년들과 함께 능력을 발휘하며 성장하길 꿈꾼다. 이것이 내가 아이의 영어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이자, 나의 자녀교육 철학이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역사를 공부했고, 선조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친일파들의 브랜드는 쳐다보지도 않는 아빠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이 나의 뿌리라는 것을 아는 청년으로 자라날 것이다.


우리 부부의 자녀교육 철학이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다양한 박물관, 유적지를 데려갈 것이라고 목록을 세우고 있는 우리 남편에게 참 고맙다.


부모는, 부모라면 내 자녀가 어떻게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면 좋을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조기교육, 영재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성품, 성향, 관심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은 부모에게 달렸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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