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저 시안이 데리고 유럽 나가려고요
시댁에 오다
진도에 왔다.
아름답지만 아직은 슬픔도 묻어있는 섬, 내 남편이 태어나 자란 곳.
5시간 동안 운전해 내려오며 마법처럼 펼쳐지는 대자연에 감탄하며, 동유럽도, 캘리포니아의 해안도로도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어린이날 &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시댁 방문 계획을 세웠고,
나는 개인적으로 올 가을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친정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육아에 대한 많은 도움, 반찬과 각종 식량에 대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주말 나들이 같이 가자거나, 오늘 저녁 집에 와서 먹으렴 하는 등에 서슴없음도 많은 편이다.
반면에 진도에 계시는 시어른들은 고작해야 일 년에 2~3번 만난다.
가끔 만나지만 워낙 따뜻하신 분들이라, 나는 시댁에 잘 먹고 잘 쉬러 가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주 만나 이런저런 소통을 하고, 교환학생에 대한 주제도 벌써 수십 번은 말해 더 이상 말할 거리도 없는 친정과는 다르게, 시댁 어른들과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참 적다.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지?'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내 마음은 계속 콩닥거렸다.
아픈 엄마와, 아직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외국 나간다 하면 과연 괜찮다 하실까? 당신 아들이 꼼짝없이 수개월간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 며느리가 돈 벌러 가는 것도 아닌데 허락을 해주실까?
늦은 저녁 식사 후, 신랑이 션과 샤워를 하러 들어갔고, 나는 말을 꺼낼 기회만 엿보다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 올 가을에 시안이랑 외국에 다녀올까 계획을 하고 있어요."
"그래?"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인데, 국립공원도 많고 완전 자연친화적인 곳이거든요. 시안이도 거기서 유치원 가고, 저는 최소학점만 공부해서 일주일에 한 번만 학교에 가려고요."
"그래?"
"엄마도 요양하듯 함께 계셔주실 거고, 한 3~4개월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내 계획에 대해 대충은 알고 계셨던 어머니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한참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제가 애기 데리고 외국 나가면 걱정되시겠죠~?"
"아니~"
대화가 끝났다.
어머님의 의중은 알 수 없었고, 나는 목욕을 마친 아이를 케어하고, 다시 이 주제를 꺼내볼까 하다 실패했다.
나는 벌써,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시도도 못해 볼 '탈색해서 금발머리 되기'라는 계획과, 모드리치 유니폼을 입고 크로아티아 거리를 활보하는 아들 상상을 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대자연에 병이 완치되어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 울 엄마 생각에 벌써부터 흐뭇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즐거움 뒤에는 많은 가족들의 희생이 있겠지.
내 멋대로 살고 싶지만 또 그럴 수만은 없는 게 우리들의 인생인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살기보다는 시트콤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웃기고, 유쾌한 일상. 비극적인 일도 희극적으로 풀어내는 시트콤처럼, 깔깔대는 삶을 살고 싶다.
꿈같은 크로아티아 여정을 끝내고 모두 한 뼘씩은 성장해서 만나고 싶다. 아픔 없고, 고난과 역경 없이 이 몇 개월이 잘 지나가길 바라지만, 또 어떨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시행착오와 뼈저린 실수, 실패는 언제나처럼 따라오겠지.
책임져야 할게 많고 잃을게 많은 엄마의 삶은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잘할 거야! 용감하게 도전해 보는 거지! 그게 멋진 삶이야.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아직은 모두가 나를 걱정하기만 한다. 나도 조금은 내가 걱정스럽다. 하지만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한 발 씩 내딛으면 되는 게 아닐까? 계속 가보자. 제자리걸음도 구두굽은 닳는다. 그럴 바에야, 앞으로 나아가 보련다. 용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