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에서 집 구하기

by 김느리

살 집을 구함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은 머리 꼭대기에 가 있다.


엄마랑 아이랑 함께 가니까 집은 좀 괜찮아야 한다 싶으면서도, 또 돈으로부터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은 현실.


일 년의 1/3을 지내야 할 곳이므로 신중하고자 했기에, 에어비엔비를 통해 한 일주일 지내보며 현지에서 집을 찾자 생각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성수기가 지난 9월 말 자다르의 1박 숙소 가격


일주일에 4-50을 내고 살아야 한다고? 그럼 한 달이면 200, 4 달이면...


동유럽 크로아티아의 착한 물가를 상상했던 나에게, 위의 수치는 정말 충격으로 다가왔다. 크로아티아는 관광산업만이 발달한 나라이므로, 관광지의 숙박비나 외식비의 가격은 현지인들의 생활수준을 뛰어 넘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그제야 학교에서 보내준 브로셔를 꼼꼼히 체크하여 학생들이 룸메이트와 집을 구하는 사이트 여러 곳을 둘러보며 저렴한 집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The City of Zadar


자다르라는 도시는 굉장히 작은 역사도시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유명한 석양을 보기 위해 하루나 이틀 정도만 머무는 도시이다.


많은 여행 블로거들도 자다르를 심심하고, 작고, 별 볼 일 없는, 30분이면 볼 것 다 보는, 단지 석양만 아름다운 도시로 평가하곤 한다.


그런데 참 흥미롭게도, 2016년에 유럽인들이 뽑은 유럽 최고의 도시로 뽑히기도 했다.


Zadar was elected Best European Destination 2016 and won this prestigious title.


https://www.europeanbestdestinations.com/best-of-europe/european-best-destinations-2016/



"It must be the most beautiful sunset in the world!"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감독이 maraschino를 마시며 바라보다 극찬을 한 그 석양. 그의 한 마디가 수많은 사람들을 이 곳에 불러들였으리라.


석양과 더불어, 2005년 크로아티아의 건축가인 니콜라 바시치 Nikola Basic가 만들어낸 바다 오르간은 35개의 파이프와 바다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조형물이다.


3년 뒤 그는, 낮동안의 태양열을 저장하여 밤이 되면 아름다운 LED 빛을 뿜어내는 태양의 인사라는 조형물도 만들어냈는데 태양 옆에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까지 8개의 별을 크기와 위치에 따라 배열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하다.


이 두 개의 작품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그냥 지나치던 자다르라는 도시를 조금 더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아름답다는, 하지만 작고 특별할 게 없는 이 곳에서 4개월을 넘게 지내야 하는데. 마음을 잡고,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후보 1]

Be my roommates라는 Facebook 사이트에서 알아본 월 350유로 (약 462.000) 짜리 집. Utility는 별도 (약 10만 원)


위치는 대박 좋은데, 침대가 하나뿐이던 집


처음 이 집을 보고, 가격을 들은 후 '그래! 이 집이야!' 싶어서 구두 계약을 맺었다. 작은 거실에 침실 하나. 다리만 건너면 Old Town에 바로 건너갈 수 있는, 바다 전망 집이었다. 그러다 에어비앤비에서 이 집을 찾아냈고, 후기를 읽어보고는 안 되겠다 싶었다. 세면대와 배수구의 물이 내려가지 않아 고생했다는 후기에 헉했다가, 결국은 엄마, 나, 아이까지 셋이 살아야 하는데 침대가 하나뿐이라 안 되겠다 싶어서 취소했다.


안녕, 저렴한 집.


[후보 2]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찾은 집으로, 월 400유로 (530.000) + 유틸.


학교가 있는 Old Town 에서 2km 떨어진 집


침대도 두 개에 나름 괜찮아 보이는 집을 찾아냈고, 꽤 마음에 들어 입금 직전까지 갔지만, 근처에 위치한 유치원이 Full이라 결국 취소했다. 내가 다닐 대학교까지는 30분 걸어야 했고, 감수할 수 있었지만, 이 집 근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없으면 굳이 학교에서 먼 곳에 집을 얻을 필요가 없으니까.


[후보 3]

친절한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4달에 2200유로 (약 300 / 월 75) + Utility 로 합의!

위치는 좋았지만 세탁기가 없던 집


가격도 나쁘지 않고, 침대도 두 개. 올드타운 내에 위치해 있어 대학교에서도 3분 거리의 집이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소파가 있는 거실이 없고 무엇보다 세탁기가 없었다. 자다르의 코인세탁방을 알아보니 세탁부터 건조까지 한 번에 대략 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했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아 결국은 패스.


[내가 고른 숙소]


위치 Good! 방 2개, 침대 3개, 넓은 거실과 부엌

처음에는 너무 비싸서 고민도 안 했던 집인데, 글쎄 28일 이상 장기예약을 하면 총금액에서 50%를 할인해주는 엄청난 프로모션을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4개월에 천만 원은 되는 집이, 장기할인으로 500이 되는 상황.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월 700유로 (93만 원)에 집을 달라! 제안했고, 호스트는 흔쾌히 오케이 했다. 첫 달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그리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직접 현금박치기로 거래를 하기로 했고, 나는 이 멋진 집을 4개월 동안 렌트하게 되었다. 게다가 Utility 포함!


사실, 내 상황을 이야기하며 비굴하게 조금 더 깎아볼까 했지만 우리 아빠가,


"대한민국이 크로아티아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인데 추접게 굴지 마라."


라고 조언해주셔서 괜히 통이 좀 커졌다.


나는 어려서부터 추접다는 말을 듣기 싫어했고, 부모님은 나를 설득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신다.


700유로 제안에 호스트가 흔쾌히 오케이 해서, 으... 조금 더 낮게 불러볼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지금도 숙박에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되는 건 아닌지 괜히 심장이 좀 쫄리기도 한다...


사실 저렴한 곳을 찾는다면 뭐 월 60만 원 정도에도 구할 수 있는 집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는 동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거나, 너무 먼 거리로 매일 수 시간씩 걸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것이다. 나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아직 36개월인 내 아들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우리 엄마도 좁고 안 좋은 집에서 살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대학교에서 연결해준 우리 아이 유치원이 이 집에서 2분 거리! 집에서 대학까지는 3분 거리.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해변, 위치가 정말 최고였다.


에어비앤비 후기를 보니, 집 앞에 있는 커다란 Pub 때문에 소음이 심하다고 적혀있던데, 구글맵을 찾아보니 진짜 그럴 것만 같다.

집 앞에 있는 Pub. 소음이 걱정이다.


호스트는 방음창을 설치해놓아서 창문을 닫으면 괜찮다고 장담했고, 나도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내가 가는 늦가을 겨울은 성수기가 아니라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파티는 없을 것이다.


항공권을 사고, 집까지 구하니 이제는 정말 갈 일만 남은 것 같다.


물론, 8월 말 우리 엄마 CT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 수술 후 세 번째로 다가온 추적검사. 당연히 아무 일도 없어야 하고, 절대 아무 일 없겠지만 가슴 한 켠에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크로아티아에 갈 생각에 행복한 우리 엄마에게 절대로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엄마 결과가 좋아서 우리 가족이 예정대로 떠날 수 있기를 매일 밤 기도하고 있다.


12월에 우리 신랑과 친정아빠도 크로아티아로 넘어온다. 온 가족이 다가오는 이벤트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행복한 상상 중이다. 물론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고, 모든 게 쾌적하고 편리한 한국과는 다르게 크로아티아에서 겪는 불편함도 참 많을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이 기회에 감사하고 즐기자는 생각을 애써 더 해본다.


가장 어려운 미션이던 크로아티아에서 집 구하기. Mission Complete!

톰 크루즈처럼 멋지게 외쳐보았다!!

이전 05화어머님, 저 시안이 데리고 유럽 나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