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인 자다르에는 특별히 할 게 많이 없다. 우리 가족도 놀이터 가고, 시장에 가고, 기념품 가게 둘러보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매일의 일상이다.
그마저도, 흡연이 너무나도 자유로운 유럽의 분위기에,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는 여유로움이 방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반드시 옆 테이블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한국의 미세먼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데, 이 먼 나라 크로아티아에 오니 담배연기에 목이 깔깔하다.
우리 배가 오고 있다
자다르 어느 곳에서나 근처 섬 투어, 보트 투어와 같은 투어 신청을 받는다. 우리도 일인당 400쿠나에 코르나티 군도 투어를 신청했다. (7만 원 정도)
100쿠나씩 예약금으로 미리 지불, 총 600쿠나를 보트에서 낸다.
보트를 탈 때 보니, 예약증을 가진 사람이 몇 없고 대부분이 다 보트에서 직접 신청한다.
혹 미리 예약을 해서 예약금을 괜히 뜯긴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는데, 그래도 아들이 무료이니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새파란 하늘 아래서 기분을 흐리게 하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보트에 타려는 수많은 사람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이다.
코르나티로 향하는 배
크로아티아의 갈매기들은 참 크다. 넓은 배의 식당칸에 편히 앉아 창밖을 보니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있다.
아침으로 제공되는 샌드위치와 우리가 산 커피
인심 좋은 선원 할아버지는 우리 아들을 마주칠 때마다 커다란 바구니에 담긴 쿠키를 건넸고, 그가 10번 즈음 권할 때 우리 아들은 결국 그만 좀 하라는 말투로 "No~~~" 했다.
9시에 출발한 보트는 세 시간을 달려 코르나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배 위에서의 세 시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림 같은 풍경 덕에.
구름이 낮게 깔린 코르나티 국립공원
수영을 할 수 있는 비치, 뒤로는 산책을 할 수 있는 등산로가 있고, 우리는 해변으로 향했다.
9월 말의 바다는 너무 추워
대단한 사람들. 해변에 오자마자 옷을 훌훌 벗고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긴다.
한 엉덩이 하는 나보다 6배나 더 큰 엉덩이를 가진 한 여자는 손바닥만 한 수영복을 입고 벌러덩 누워잔다.
우리도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갔지만, 도저히 온몸을 담글 엄두가 나지 않는 차가운 물과, 고운 모래가 아닌 자잘한 자갈에 걷기도 힘들어 조금 놀다가 나와버렸다.
세 시간을 배 타고 왔는데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반! 잠깐이라도 물놀이를 한 아이는 신이 났는지, 춤을 추고, 평소와는 다른 훨씬 발전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뭔 포즈?
아! 이런 탁 트인 바다와 하늘! 얼마만인가? 한강 다리를 달릴 때마다 빼곡히 서 있던 아파트들을 보며 가슴이 턱 막힌 적이 있었다.
아이에게도 이러한 힐링의 시간은 필요하겠구나!
이 곳에 와서야 깨달았다.
어린이집, 놀이터, 집을 쳇바퀴처럼 돌던 네 살 아이는 가끔 즐거울 때나 보여주던 함박웃음을 매 순간 짓고 있었다.
두 개나 사 먹은 아이스크림
다시 배로 돌아오니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치킨과 생선 중에 고를 수 있고, 우리는 세 접시이므로 부족함 없이 마음껏 먹었지만, 맛은? 역시 음식은 푸짐한 한식을 따라올 수 없다.
고등어요리와 치킨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아쉽겠다 했는데 10분 거리에 Sali라는 섬에 들린단다.
비행을 하거나 배를 오래 타면 얼른 좀 땅을 밟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Sali는 정말 세상 평온한 그러한 섬이었다. 안 그래도 작은 자다르에서 세 시간 떨어진 더 작은 섬. 이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이들은 도시생활에 대한 갈망은 없을까? 평생 이 섬에서 살다가 죽는 것일까? 오히려 고민 걱정 욕심 없이 온전히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나는 아등바등 바쁘게만 살아왔을까.
배의 제일 높은 갑판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배.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끌며 배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왕자님 포즈란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아슬아슬한 계단도 한 세 번 다니고는 휙휙 다녔다.
크로아티아에서의 로망 중 하나가, 크로아티아의 축구영웅 모드리치의 유니폼을 입혀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이 곳에서도 우리 아이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어딜 가나 이어지는 하이파이브 요청, 지나다니면 얼굴과 손, 몸을 간지럽히는 사람들.
아이를 만지는 것에 있어, 유럽은 뭔가 자유로웠다. 물론, 딸이었다면 쪼금은 조심스러웠겠지.
연인들이 찍는 손잡은 사진
바닷바람에 머리가 이대팔이 돼도 즐거운 아이.
함박웃음
우리의 웃음은 자연스러웠고 또 자유로웠다.
바다, 하늘 그리고 우리
아이는 내 볼에, 입술에 뽀뽀를 계속해주었고, 시원한 갑판 위에서 손잡고, 안고, 사진을 찍는 우리는 행복했다.
'아들하고 연애하는 것 같다.'
설레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우리는 저녁 여섯 시가 다 돼서야 항구에 도착했고, 배에서 내리는 순간 꼭 꿈에서 깬 것 같았다.
시원한 바닷바람, 어디를 봐도 푸른 배경,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스킨십, 그들의 행복한 표정.
먼 타지에 와서 적응하느라 지쳤던 심신의 피로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몸은 조금 힘든데 정신은 맑고, 마음이 탁 트인 그런 기분.
사실 코르나티 군도에 대해서는 대학교 수업시간에 알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의 배경이 바로 이 코르나티 군도였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그 흥미로운 극의 배경으로 코르나티를 고른 것일까 싶었는데.
폭풍에 휩쓸려 헤어진 후 낯선 곳에서 표류한 쌍둥이 남매. 생존을 위해 남장을 하고 다니는 여자 주인공, 그리고 엇갈렸던 사랑,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는 완벽한 결말. 완전한 희극. 딱 이 섬과 잘 어울렸다.
다시 돌아온 자다르.
자다르의 하늘
사진에는 잘 안 보이지만, 숨어버린 태양과, 얇고 연한 초승달이 공존한 하늘이다.
버스킹 하는 남자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가 바다를 마주 보고 버스킹을 하고 있다.
그가 부르는 호텔 캘리포니아가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