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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르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다

by 김느리



마지막 서류를 학교에 제출하고 건물을 나섰다.

바다 앞에 위치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수업을 듣다 고개를 돌려보면 언제나 이런 바다가 있었다.


'이제 다 끝났구나.'

학교 앞 바다


35살, 아기 엄마 아줌마 학생의 교환학생 과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항상 수업 끝나면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가서 아이를 보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이 성취감? 잘 끝냈다는 안도감, 혹은 진짜 고생 많았지만 참으로 아름다웠던 이 여정의 마지막이 복받쳐올라 벤치에 털썩 앉았다.


"나 10분만 바다에 앉아 있다가 갈게."


신랑에게 문자를 남기고 바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 10년 동안의 강사생활에 대한 매너리즘으로 공부나 다시 해볼까 해서 편입한 대학교.


그리고 청천벽력과 같던 엄마의 폐암 3기 선고. 10년 전 스무 살 유럽에서 꿈꿨던 엄마와 함께 하는 유럽여행의 꿈을 이루고자, 그리고 공기 좋고 자연이 좋은 곳에서 엄마랑 살고, 아이도 어린이집이 아니라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결정한 크로아티아 교환학생.


고생스러웠던 비행,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위치의 숙소, 세탁기 한 번 제대로 쓰기도 어려웠던 처음의 미숙함과, 그 작은 자다르의 올드타운에서 수십 번 길을 잃고 헤매며 고생했던 순간들. 아이에게 짜증 내던 순간, 엄마에게 화를 내고 내 못된 감정들을 쏟아내던 못난 기억들, 그래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모든 추억들이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진짜 이제 다 끝났구나.


눈물이 흘렀다.


참 행복했고, 즐거웠다.



엄마는 건강했고 행복했고 여한이 없다고 했다.


아이는 엄청난 성장을 했다.


나도 전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었다.


여행 성찰, 긴 여행은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


내가 입버릇처럼 외치던 인생의 여유를 찾자는 목표를 반 정도는 이룬 것 같았다. 쿵푸팬더 포가 찾던 inner peace를 나도 조금은 깨우쳤다.


한국에서는 아이에게 참 많이도 했던, 안 돼! 그만 해!라는 말도 안 하게 되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아이를 봐보니 다 별일이 아니더라.


급했던 걸음걸이도 속도가 줄었다.


인생의 여유를 찾게 된 것 같았다. 쓸데없는 일로 괜히 조급해질 때면, 크로아티아까지 와서 급할게 뭐 있나 싶었다.


나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삶을 대하는 자세에 조금은 품위가 생겼다.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고 더 자주 미소를 지었다.


이 여정은 나를 성장하게 했다. 물론 아직도 미숙한 어른이지만.


다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에 벤치에 앉아 눈물을 더 쏟아볼까 하다, 너무 감정적이 되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부지게 잡았다. 아직 우리 가족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으므로.


1월 초, 안전히 잘 귀국한 엄마도 잘 지내고 계시고, 소중한 육아휴직을 써서 유럽으로 넘어온 신랑과 또 우리 세 식구만의 추억을 만들어야 하니!


감정적이 되려다 툭툭 털어버리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안녕, 자다르. 고마웠고 사랑했다.

그리고,


Hello, 부다페스트. 곧 보자!


안녕, 자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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