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다르를 떠났다. 커다란 캐리어 3개, 식재료가 가득 든 보스턴백 하나, 커다란 배낭 두 개에 지난 4개월의 삶이 모두 담겼다.
'안녕, 자다르.'
이제 진짜 안녕
우리가 걷던 거리, 매일 보던 석양, 그리고 우리 집. 첫사랑과 헤어지는 것 같은 심장이 아픔을 잠시 느꼈고, 꼭 마지막 인사 나누라는 듯 나를 기다려주던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가자!"
우리는 수도인 자그레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안녕, 자다르
내 무릎베개를 하고 겨우 잠든 아이를 쓰다듬어 주며 크로아티아 다음엔 어디 가지 알아보려는 찰나, 건너편 자리에 앉은 남편이 이어폰을 건넸다.
'아.. 괜찮은데.'
아이 자는 틈에 여행 루트 좀 짜려했건만. 조금 귀찮았지만 순순히 이어폰을 받아 끼웠고, 핸드폰을 대충 터치하던 내 손은 순간 멈춰버렸다.
우리가 연애 때부터 듣던, 재주소년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랑을 해양영토대장정이라는 대외활동을 통해 만났다. 103명의 대학생 참가자, 13명의 대학생 리더들, 해양문화재단 팀, 그리고 기자들과 YTN 방송국 팀들. 나는 리더로 그는 학생 기자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는 매 순간 나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초반, 많은 다른 여자아이들에게도 말 걸던 그가 나에게만 집중하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20대였던 반면에, 기자로 참여한 한 30대 언니 한 명과 해양문화재단 관계자분들과 트러블이 있었고, 개인행동을 하는 그 언니를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리더들 사이에서 나 혼자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일이다.
"우리 슬로건이, '우리는 한배를 탄다'인데, 참가자를 내보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랑은 내 그 모습이 멋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와 잘 어울렸고, 재단의 대장이셨던 이사장님을 비서처럼 전담 마크해주는 역할도 해주어서 우리 모두는 언니에게 감사해했다.
그렇게 바다에서의 로맨스가 이루어졌으면 좋았겠지만, 20대 중반 청춘에, 나름 썸을 타던 다른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대장정 참가 한 달 전 참여한 해외자원봉사 중 알게 된 친구였고, 하필 우리 신랑과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먼저 알게 된 그, 나중에 만난 신랑. 그리고 그 둘은 고등학교 친구. 나는 둘 사이에서 누구와 연애를 할지 갈등을 했고, 당시에는 햄릿보다도 더 깊게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언제나 적극적으로 온 열정을 다해 나에게 구애를 하던 그를 선택했다.
해양영토대장정, 우리
그리고 그가 갈등하던 나에게 구애할 때마다 들려주던 곡이 재주소년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였다.
20대, 바다에서 만난 우리. 젊었던 청춘이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었다. 그리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다. 그는 젊었고, 패기 넘쳤다. 노트북에 '열정!'이라고 크게 써붙이고 다녔던 그는, 지금 아저씨가 되어있다.
나도 어렸고 싱그러웠겠지. 다른 많은 20대들처럼 철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줌마가 다 되었고, 다음 여행지인 핀란드를 준비하며 아이 부츠, 장갑, 바지, 양말만 잔뜩 사며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영락없는 애엄마가 되어있다.내 것은 보지도 사지도 않는 내 엄마 같은 그런 모습이 나에게도 똑같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듣던 그 음악은 잠시나마 우리를 그 청춘으로 돌아가게 했다.
눈물 나게 아름답던,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던 우리의 젊은 날, 청춘.
덜컹이는 버스 안 이어폰 한쪽씩 나눠 끼우고, 우리는 잠시 눈이 마주쳤고, 그제야 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