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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우울하다

by 김느리

귀국 후 4주. 잘 먹고 잘 쉬던 우리인데, 3개월의 휴직 후 복직을 닷새 앞둔 신랑이 우울하다.

꿈같은 여행의 끝, 달콤하던 휴식의 끝은 참 쓰다.

휴직과 유럽을 꿈꾸며 버텼던 작년의 남편, 그리고 유럽에서의 완전한 일탈. 국내 복귀 후 안락한 내 집에서의 에브리데이 야식, 엄마표 나물이 향긋하던 고향집에서의 푸근했던 일주일.

꼭 모래시계가 떨어지듯 두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이라는 모래의 끝이 보인다.

"우리 가족 또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보자. 다시 새로운 꿈을 꿔보고."

자신감 없이 건넨 말이 참 힘없게 느껴졌다.

"이제는 돈 벌어야지."

돈.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의 무거운 어깨는 요 며칠 참 초라했다.

오늘 식사 중, 가족 저녁에 불참한 사위를 걱정하며 우리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전에 일 잠시 쉴 때, 만날 집에서 무협지 보고 게으르게 살다가 다시 일 나갔는데 죽고 싶단 생각이 들었었다고.

남편의 복직에 대해 가볍게만,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나는 아빠가 내뱉은 쎈 말 한마디에 가슴이 아려, 더 이상 밥을 넘길 수 없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야근에 회식 후, 미안하다며 귀가한 그가 양복 입은 채로 소파에 누워 목놓아 부르던 이 노래가 귓가에 생생하다.


우리 가족의 유럽의 꿈은 아름다웠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쪼끔 슬프기도 하다.

내일은 신랑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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