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치유받고 싶다면 떠나라

바다, 하늘, 커피 한 잔이면 되었다

by 김느리

2000년대 우리의 키워드는 웰빙 (Well-being)이었고, 몸과 마음, 일과 휴식의 조화를 찾으며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모두는 노력했던 것 같다.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살고 싶다 외쳤지만 여전히 모두는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러한 웰빙의 움직임은 힐링 (Healing)으로 옮겨갔다. 상담학 사전에 의하면 힐링은 인간의 정신적 · 신체적 상태가 회복되는 것으로서 치유(治癒)라고도 하는데, 삶에서 여유를 찾기가 힘드니 지친 심신을 잘 치유하자 한 것 같다.


화분을 키우고, 클래식을 듣고, 괜찮은 향기도 맡아보며 많은 이들은 힐링을 찾아 몸부림쳤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소소한 치유만으론 온전히 말랑해지지 못했다.


어디든 가고 싶다는 막연했던 바람은 용기를 낳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데 꼭 필요한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무료했던 삶에 두근거림을 준 이 결정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 되어버렸다.


관광객으로 복잡한 도시 말고, 힐링이 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온전히 이방인으로 살아보고 싶다. 우리는 한국 교민이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크로아티아 자다르로 떠나기로 했다.


서유럽 북유럽에 비해 물가도 싸고, 치안이 좋은 나라.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자연이 좋은 나라.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하는 나라.

크로에이샤, 자다르. Croatia, Zadar


그렇게 이름까지 멋진 도시에서, 우리는 5개월을 살았다.




체코 프라하 여행 중, 젊은 청년 둘이 운영하는 한인민박에서 짧게 나눈 인생 이야기. 타지에 와서 민박을 운영하며 살던 그들은 크로아티아에 꼭 가보고 싶어 했고, 여기는 바다밖에 볼 게 없어요 하는 나에게 묵직한 한 마디를 남겼다.


"바다, 그거면 돼요."


크로아티아의 석양

크로아티아의 바다에는 잘 손질된 길이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다. 처음에는 모래사장이 아니라 운치 없다 생각했지만, 매일의 조깅과 산책은 무척 편안했고 깔끔했으며 우리가 마음껏 앉아 바다를 볼 수 있는 넓은 벤치가 되어주었다.


자다르, 시베니크,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등 해안가에 위치한 모든 도시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석양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해가 질 때 그냥 동그란 햇님이 바닷속으로 쏙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온 하늘이 매일 다른 색깔로 물드는 건지 몰랐어."


눈가가 촉촉해진 채 하늘을 바라보던 엄마가 답했다.


"나도"


황금빛 석양과 사랑하는 엄마


크로아티아의 여유로운 바다는 진정한 치유가 되었다. 사람에 치이지 않아서, 사색할 수 있어서, 감성 충만한 채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크로아티아의 바다는 존재 자체만으로 온전한 치유였다.

크로아티아의 바다


기러기 인생 3개월, 외롭던 남편도 육아휴직을 통해 크로아티아의 매력에 빠졌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그는 이 바다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서서히 여유로운 크로아티아의 삶에 스며들었다.


크로아티아의 새파란 하늘은 매일 아침 열어보는 선물 같았다. 아침 7시부터 여는 동네 카페와 빵집은 아침 산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커피 한 잔에 1800원. 우리 가족은 매일 행복을 마셨다.





"기억나? 아침에 일어나서 갓 나온 파삭한 크라상 하나씩 사서 카페에 가던 그 길.


항상 앉던 테이블에 앉으면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항상 우리가 마시는 커피를 내오던 카페 언니.

예쁜 카페, 그림같은 하늘과 최고의 커피까지


죽기 전 꼭 봐야 한다는 건축물 중 하나인 성 도나트 성당을 지나 바다를 향해 걷던 길.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던 바다.


여유롭던 크로아티아

들을수록 정겹던 바다오르간, 션이 뛰어놀던 태양의 인사.

핑크색 하늘

그리고 바다, 하늘. 기억나?"


우리는 아직도 종종 자다르를 추억한다. 우리가 걷던 거리, 바다와 석양을 생각하면 눈물이 고인다. 참 행복한데 가슴이 아프다. 이 추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꼭 천사가 내려올 것만 같아

어느 날은 남편이 아들 션에게 물었다.


"우리 션은 다섯 살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야?"


"자다르에 살 때."


이 보석 같은 곳이 조금 더 천천히 유명해지길 바란다. 우리 가족에게 크로아티아의 바다는 치유였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꺼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이자,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라는 평화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편이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