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형 여자 아침형 남자

사실은 너무도 다른 우리

by 릴리리

우리 집은 예로부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방식을 가졌다. 7시쯤 저녁식사를 하고 가족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아빠와 오빠는 각자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하고, 나는 엄마와 함께 거실에서 무릎담요를 덮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했다. 그러다가 아홉시 뉴스를 보러 거실에 나온 아빠가 슬그머니 배가 고프다는 얘기를 꺼내면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 가족의 진정한 저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가능했던 배달이라곤 치킨과 중국음식이 전부인 데다 밤 10시 정도가 되면 그마저도 문을 닫을 시각이었기 때문에, 야식은 오롯이 가정주부인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요리를 잘 하신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밥상엔 종종 오향장육이 올랐고 나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탕수육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아빠가 라면을 끓여준 적이 있는데, 물이 너무 적어서 매우 짰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아빠의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


아무튼 그래서 야식으로 주로 먹었던 것은 골뱅이였다. 흔히 생각하는 고춧가루 양념을 한 매콤한 골뱅이 무침이 아니라 간장양념을 올린 담백한 골뱅이 무침이었다. 소면도 양배추도 오이도 들어가지 않은 그 메뉴는 지극히 심플했다. 송송 썬 파와 마늘을 넣고 아마도 식초와 참기름을 조금 넣은 평범한 양념간장을 올린 통조림 골뱅이. 아빠는 그걸 술안주로 즐겨 드시곤 했는데, 어린 나는 그 옆에서 골뱅이만 쏙쏙 주워 먹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집에서 먹는 술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건 좀 자기합리화다.


야식 시간이 끝나면 시곗바늘은 열한 시를 훌쩍 넘었다. 배가 부르니 바로 누워 자기도 어려웠다. 텔레비전 영화를 보거나 하며 소화를 시키다 보면 잠자리에 드는 건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다음 날 아침 열 시가 되어서야 모두가 일어났다. 나는 보통 열한 시까지 자고 그랬는데, 유일하게 일요일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오빠였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디즈니 만화동산의 마지막 오 분밖에 보지 못했다. 그게 못내 억울했다.


그래도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에 지각한 적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지만, 나는 철저히 저녁형 인간이었다. 그것이 유전자에 새겨진 것인지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같은 정도의 난제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랬다.


아무리 상쾌하게 잠을 잤다 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는 건 고역이었다. 머리는 멍하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12시 전에 자고 7시에 일어나는 이른바 세간이 일컫는 건강한 수면 습관을 지키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꾸준한 운동도 소용없었다. 아침은 그저 고역이었고 어른이 되어선 카페인으로 아침 시간을 근근이 버텼다.


반면 남편은 철저한 아침형 인간이다. 처음 시댁에 명절을 지내러 갔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차례 방식의 다름이나 차리는 음식의 차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밤 열 시만 되면 취침 모드로 들어가는 아침형 집안의 분위기였다. 자고로 온 가족이 모인 즐거운 명절 전야엔 늦게까지 모여서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한국형 도박도 하는 것이 명절의 보편적인 풍경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람직하건 어쨌건, 내가 생각하는 명절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었다.


남편은 아침형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아침에 매우 일찍 일어난다. 평일에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휴일에는 더 더 더(!) 일찍 일어난다. 그러고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세탁기를 돌리거나 하며 아침 시간을 보내고, 10시쯤 일어난 내가 프렌치 토스트와 직접 만든 요거트, 샐러드와 과일, 때로는 소시지와 베이컨까지 곁들인 ‘호텔식 조식’을 차려 함께 먹고 나면 11시쯤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물론 한껏 늘어지게 잔 나는 한창 쌩쌩할 시간이었기에 병든 닭처럼 조는 남편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럴 거면 아예 늦잠을 자는 편이 좋지 않냐고 몇 번 물어봤지만 아무래도 안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휴일에 일찍 일어나더라도 낮잠을 자지 않는 편이라(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낮에는 조는 남편이 처음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함께 하는 시간도 10년을 채워가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던 것도 이해를 하게 된다. 정확히는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30년 동안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고, 의식하지 않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저녁형 여자와 아침형 남자는 각자의 접점을 찾았냐고? 분하지만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는 편이 좋다. 하루가 길기 때문이다. 한때 저녁형 인간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일각의 저녁형 인간들이 나름의 항변을 하는 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솔직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챙겨먹는 건강한 식사는 굉장한 활력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요즘은 일찍 일어나는 저녁형 인간이 되려 노력 중이다. 아침형 인간은 될 생각이 없다. 아마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아침형 인간의 장점인 부지런한 활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아름다운 밤을 만끽할 줄 아는 멋진 저녁형 인간. 세상이 잠든 밤, 오롯이 나와 음악과 눈앞의 원고만이 함께 하는 고요하고 까만 공기는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법이다.


뭐든 각자의 리듬이 있다. 각자의.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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