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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Mar 05. 2019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1. 우리는 이렇게 만나서

결혼을 하면 뭔가 크게 달라질 줄 알았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많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다.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1.
우리는 이렇게 만나서

스물 여섯의 봄에 우리는 결혼했다. 남편과는 대학교 학과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풋풋한 새내기는 아니었다. 만난 때는 신구대면식이었는데, 둘 다 헌내기였다. 나는 3학년이었고 남편은 학교를 1년 남겨둔 복학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스물 두 살의 봄이었다.
결혼한 것은 스물 여섯의 봄이었다.
그 땐 남자를 만나는 게 지겨웠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봤자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고, 이만한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일이었지만 아무튼 그 땐 그랬다.

지금도 신기할 때가 있다. 이 남자와 이렇게 결혼해서 살게 될 줄 그 땐 몰랐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허연 얼굴에 멀끔하게 세팅한 머리, 초콜릿 색 버버리 코치 재킷과 까만 버버리 크로스백. 이렇게 멋진 남자가 우리 동아리에 있었던가 생각했었다. 그렇다. 나는 얼빠다. “선배님 밥 사주세요”를 빌미로 남편을 불러냈고 일주일에 몇 번씩 술을 먹자며 연락을 했다. 남편은 그 때 되게 어색했다고 했다. 어쨌든 처음 본 여자 후배가 밥을 사달라고 개인적으로, 그것도 일대일로 연락을 해왔으니까. 남편은 그 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낯을 많이 가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그 땐 아무래도 이 남자를 꼬셔야겠다는 생각이 컸나 보다.

그런데, 도저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남편은 낯가림이 심해서 어떤 모임에 가든 자기가 친한 사람이 같이 가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쪽수가 많은 모임일수록 친하고 덜 친한 사람이 있어 더 그렇다. 근데 우리 처음 만났던 그 신구대면식 날은 달랐다. 군대를 가고 공부를 하느라 오랜만에 그런 자리에 나왔었다. 그래서 3학년이나 된 내가 남편을 처음 본 거고. 그 날도 친한 동기 형과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형들이 다 못 간다고, 안 간다고 했다고 한다. 평소 남편의 성격이라면 ‘그럼 나도 안 가’하고 안 나왔을 텐데 그 날은 희한하게 혼자 나왔다. 그건 일종의 운명이었다. 우리가 만나기 위한,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였다.

나는 운명론자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고 죽을 사람은 죽고 살아갈 사람은 살아간다고 믿는다. 10층 건물에서 떨어져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멀쩡하게 길 가다 떨어진 벽돌에 맞아 죽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는다. 우리의 만남도 그랬다.

하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인연으로 발전시키는 건 결국 인간의 의지다. 내가 용기내어 ‘선배님 밥 사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내지 않았더라면(그 땐 카톡이 없던 시대였다), 계속해서 들이대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을 것이다. 운명인지 뭔지 확인할 새도 없이. 


그리고 이렇게 살아간다.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주요 온라인 서점 및 전국 대형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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