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일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들었던 말들이 있다.
야, 너는 진짜 그대로다.
나도 남편도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했기 때문에 주변엔 결혼한 친구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아이를 일찍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결혼 전처럼 지냈다. 친구들도 만나고 남편이랑 퇴근 후 데이트도 즐기고.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나둘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하며 결혼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얘는 결혼하면 더 못 보겠구나’하는 느낌을 알게 된 것이다.
결혼 전의 친구들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만날 수 있었다. 갑작스레 시간이 남아서, 이번 주말에 할 일이 없으니까, 대부분은 별 것 아닌 이유였다. 어렸을 적 친구를 만날 때 그랬던 것처럼. 심심하니까.
결혼 후 그들의 삶은 빠르게 가족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다. 결혼식에서 오가는 인사말은 인사치레가 됐다. 신혼여행 갔다 와서 조만간 보자, 부부끼리 같이 술 한 잔 하자, 집들이 할게 놀러와… 그 대부분은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 그들이 결혼하고 머지않아 아이를 낳으면서, 친구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야 하는 귀한 존재가 됐다. 자주 만나는 친구의 정의도 바뀌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과 만났다.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아이가 없고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아이를 다루는 법을 잘 모르는 내가 친구와 함께 그 애의 아이를 보는 건 한편으로는 고역이었다. 귀여운 아이는 정말로 귀여웠지만 그렇지 않은 애들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아주 친한 사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내 친한 친구들은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다. 닮아서 친구인지, 그렇게 살다보니 절친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가족이 우선이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의 가족엔 남편과 나 둘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의 나는 ‘결혼했더니 변했네’라는 말을 듣기가 싫었다. 나는 남들과는 달라야 했다. 결혼해도 여전히 쿨하고 독립적인 멋진 싱글여성처럼 살 것이라,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주변이 변해 있었다.
결혼해서 달라진 경우도 있었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인생은 달라졌다. 남편의 친구 J는 결혼식에서 ‘편지’를 맡았었다. 우리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려 각 집안의 아버지들이 한 마디씩 축사를 준비해 주셨고, 친구가 한 명씩 준비한 편지를 읽어주기로 했었다. J는 ‘결혼 후에도 같이 놀아달라’고 했고 정말로 우리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 결혼 후에서 거의 주 1회는 만나 함께 술을 마셨다. 몇 년 동안 우리는 즐거웠다. 그동안 J는 내 친구 P와 사귀었고,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헤어졌다. J는 P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애라고 했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싶대.
그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하고 역시 전혀 상관없는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는 P를 허황된 꿈을 좇는 철부지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글을 쓰다가 그만둔 J로서는, P가 한심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그 다음 해에, J는 한국을 떠났다. P는 그림을 배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J는 태평양 서부의 어느 섬나라에서 산다. 한국에 돌아오면 보자고 한지 몇 년째지만, 처음 1년째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인간관계가 변해가는 건 필연적이다. 지금 내 인간관계는 많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관심사가 맞는 애들끼리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고,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이사 오면서 또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겼다. 지금 내 베스트 프렌드는 나이가 6살 많은 언니고, 다들 아이가 있다.
이제 나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카톡으로 게임을 하고 스티커 같은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성장했다. 이 역시 결혼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인간관계다. 아이를 대하는 데 서툴던 내가 이렇게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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