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라를 구한 며느리
명절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외가는 7남매로 북적이지만 친가는 아빠와 큰아버지의 2형제가 전부였고, 명절이면 언제나 큰집에 갔기 때문에 꽤 한가로운 느낌이었다. 물론 전을 부치고 명절음식을 준비해야 했던 엄마에겐 한가롭지 않았겠지만, 어린 내게는 명절날 가서 하는 일이라곤 오빠와 사촌언니, 사촌오빠와 함께 노는 것뿐이었다. 만화책을 읽거나 함께 만화영화를 보거나, 가끔은 근처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다. 사실은 가장 재미있었던 건 방 구경이었다. 내 방, 우리 집엔 없는 물건들을 구경하는 건 재밌었다. 그렇게 구경하다 언니가 줬던 파란색 머리핀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명절 전 날 오빠와 나는 큰집에서 자고 부모님은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오시곤 했다. 그게 더 편하시다며. 그러면 또 이불을 덮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곤 했다. 어른들은 고스톱을 치고 아이들은 강정을 먹던 모습, 그게 내 어린 날의 흔한 명절 풍경이었다.
흔히 명절은 부부가 다투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이곤 했다. 왜 시댁에만 가야하냐, 왜 음식은 여자만 하냐, 특히 네이트판 같은 곳에 올라온 시댁과의 명절 갈등은 어린 나를 공포심에 들기 충분했다. 물론 결혼할 때 즈음이야 그런 건 다 잊어버렸지만.
그렇게 첫 번째 명절을 맞았다. 추석이었다. 시댁 친척들은 모두 외국에 계셔서 시부모님과 시누이, 남편과 나뿐인 단출한 구성이었다. 추석 전날 시댁에 가서 음식을 했다.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두부와 돼지고기를 넣은 반죽을 빚어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도중에 노량진에 가서 회를 떠왔다. 저녁은 차례 음식 몇 가지와 회를 먹었다. 잠은 시댁에서 잤다. 명절 당일엔 간단하게 차례를 지냈다. 어렸을 적 큰집에서 지냈던 차례는 천주교식이어서 기도문을 다 같이 읽었다. 외갓집은 전통방식이라 몇 번인지 모를 절만 몇 번 했다. 시댁은 전통방식인데 절은 좀 더 적게 하는 것 같았다. 집마다 제사 지내는 방식이 다른 것도 재밌었다.
명절날 점심까지 먹고 나면 그 후는 자유였다. 굳이 친정은 가지 않았다. 명절이나 경조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우리 부모님은 괜히 차 막히는 명절날 무리해서 오지 말고 그 전이나 후에 시간 날 때 오라고 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하루 반을 온전히 우리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종종 서울에 있는 나의 외갓집에 대신 가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우리 부부를 좋아하셨다. 외할머니는 외모를 많이 보신다. 우리 남편이 좀 잘생겼다.
기억에 남는 명절이 하나 있다. GTA라는 게임이 발매된 시기였다. 시간이 많은 명절에 새로 출시된 게임은 최고의 조합이었다. 다만 문제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으로서는 사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온라인으로 사면 명절이 끝나고 받을 터이고, 국전의 게임숍은 명절 연휴엔 문을 열지 않았다. 당시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아 평일에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남편을 대신해 연휴 시작 전의 평일에 혼자 국전 한우리에 가서 GTA를 샀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할 가게다. 괜히 뿌듯했다.
그 해의 명절은 즐거웠다. 남편이 플레이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는데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라 미드를 보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이 있었다. 한글화가 되어 있지 않아 내가 옆에서 어설픈 번역도 해줬다.
결혼하고 몇 해가 지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더 이상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시누이도 결혼을 했다. 명절은 좀 더 한가해졌다.
어렸을 때, 명절만 되면 몸이 많이 아팠다. 몸살 비슷한 것이었다. 모든 명절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2번 중 1번꼴이었다. 1년에 한 번은 아파서 큰집에 못 간 셈이다. 그럴 땐 거의 이틀을 누워 있기만 했다. 몇 학년 때인가의 담임선생님은 ‘학기 중 긴장했던 몸이 휴식을 맞아 풀렸나보다’고 하였다. 나름 신선한 해석이어서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근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난 전생에 명절마다 고생했던 며느리였나 보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그 기억이 있어서 아픈가 보다.
그 때문이었을까? 결혼한 지금도 나는 명절 시집살이를 전혀 하지 않는다. 차례 음식도 만들지 않고 잘 모르는 시댁 친척들의 참견질도 없으며 시어머니나 시누이의 등쌀은 더더욱 없다. 명절마다 고생했던 전생의 내가 이번 생에 보상을 받는가 보다.
단순히 나나 남편, 둘만 합의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배려, 지방에 계신 친정 부모님의 배려로 여유로운 명절이 완성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명절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텅 빈 테헤란로와 도산대로를 차로 달리는 기분, 그건 명절의 서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작은 사치다.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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