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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an 05. 2022

모유 수유는 필수입니까

좋다는 건 저도 압니다만

23.



새벽에 다시 가스가 차 배가 너무 아팠다. 고양이 소 자세로 가스 배출엔 성공했지만 그걸론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침 회진 때 가스가 나왔다는 기쁜 소식을 알렸지만 아직 배가 빵빵하니 더 많이 걸어서 가스를 빼라는 얘기만 들었다. 한 번 가스가 터지면 다 괜찮아질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보다. 결국 또 다시 시작된 걷기.


엉덩이 주사를 놔달라고 해서 맞았다. 간호사들은 처음엔 무조건 못 참겠냐고 물어오는데, 참을 만한 거였으면 진통제 놔달라는 얘기도 안 했을 터… 아무튼 주사의 힘으로 오전 내내 걸어 다녔다.


오후가 돼 진통제 약효가 슬슬 떨어질 무렵 다시 배가 아파왔다. 언제까지 가스 차는 고통이 계속될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만 같아 답답하기만 했다. 저녁에 주사를 한 번 더 맞았다.  


가스로 배가 아픈 와중에도 젖은 착실하게 차올라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매일 두 번씩 신생아실 가서 젖을 물려보곤 했지만 아이들이 작아서인지 이미 분유병에 익숙해져서인지 몇 번 빨아보다가는 빼애앵 울고 마는 것이었다. 젖을 빼줘야 안 아플텐데 아이들은 빨지를 못하고 칭얼대기만 해 갈 곳 없는 젖이 꽉 막히고 말았다.


사실 이곳은 모유수유 권장 병원이라 수술실 또는 분만실에서 아이를 낳고 후처치를 하고 아픈 몸을 누인채 입원실에 돌아오면 아기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는, 초산인 산모에게는 더없이 공포스러운(?) 병원이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바로 엄마 젖을 물리는 것이 성공적인 모유 수유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모유 수유를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다. 남편은 ‘힘들게 무슨 모유 수유냐, 하나도 아니고 둘을 어떻게 같이 먹이냐, 그냥 분유 먹여라’고 했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모유가 안 나오면 모르겠는데, 만약 콸콸 잘 나올 수도 있잖아? 그럼 먹여야지 별 수 있나? 모유는 분유에는 없는 면역력과 좋은 성분이 있고 엄마와의 애착 형성에도 좋고 젖병 소독 같은 거 안 해도 되고 편리하고 어쩌고 저쩌고. 특히 내가 어렸던 90년대에는 자연주의 분만이나 육아 이런 것이 유행이라 수중분만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임신 중 엄마의 영양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며 철저한 식단 관리나 보고 듣는 것까지 제한해야 한다는 다소 엄격한 태아 중심적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봤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 책 같은 것들에는 자연분만을 하지 않고 모유 수유를 하지 않고 적절한 태교를 하지 않는 것을 죄악시 여기는 듯한 어조가 들어 있었으니까.


무의식 중에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래도 아이들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어서인지 모유 수유는 좀 하고 싶었다. 그와중에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게 됐다. 모유는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있는 인간에게서 생산되는 거라 중금속과 각종 화학 물질이 다양하게 검출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2015년 EBS에서 방영된 <하나뿐인 지구 - 모유잔혹사> 편의 일부였는데, 참치를 즐겨먹었던 산모는 자신의 모유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사실에 놀라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참치는 큰 생선이라 중금속을 조심하라고 하지 않은가? 인간은 바닷 속 생물뿐만 아니라 흙에서 나는 다양한 식물과 땅을 밟고 사는 동물을 먹고 있으니 온갖 중금속과 화학물질을 몸에 쌓아가며 살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인간을 주로 섭취하는 생물이 있어 ‘음,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생활 수준이 발달했으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화학물질도 많이 섭취한 한국산 살코기는 피하는 게 좋겠군’하지는 않기 때문에 몸속에 중금속과 화학물질이 쌓이는 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해로운 일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인간이 생산해내는 무엇인가를 주식으로 받아먹고 자라는 생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갓난아기다. 요즘이야 분유가 있지만 먼 옛날에는 젖동냥을 다니고 그랬다지 않은가? 어린 심청을 데리고 다니던 심봉사처럼 말이다.


뭐 아무튼, 그래서 모유가 완전히 이롭지는 않을진대 모유만이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더 크기 때문에 여전히 모유 수유는 ‘해야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유 수유를 안 한다고 하면 왠지 모성애가 좀 떨어지는 것 같고, 괜히 이기적인 엄마인 것 같고, 그런 생각은 아마 예비엄마라면 다 한 번쯤 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렇게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한 번 해보지 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모유 수유가 아기에게 가장 좋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방금 배를 가르고 와 너무 아픈 상태에서 젖을 물리는 게 쉽지 않았다. 일단은 배가 너무너무 아파 아이를 앞으로 안는다는 행위 자체가 겁이 났다. 게다가 막 아이를 낳은 초산모에게 신생아란 너무나 두려운 존재였다. 누가 옆에서 차근차근 아기 안는 법부터 알려주지 않으면 젖을 물리기는 커녕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한 신생아를 감히 들기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 상황이라 신생아실에 간 아기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됐다. 오로지 모유 수유를 위해서만 신생아실에 출입할 수 있었다.


24시간 모자동실의 공포는 피했지만 갈 곳 잃은 젖이 차올라 가슴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급한대로 유튜브를 보고 가슴 마사지를 따라 했다. 남편이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와서 가슴 마사지를 해줬는데, 수건이 금방 식은데다 온힘을 다해주는 바람에 ‘이 사람, 마사지를 찬물에 걸레 빨듯이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주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쉽게 풀리진 않았다. 나중에 조리원에 가서야 알았지만, 가슴 마사지법은 맞았으나 그렇게까지 세게 할 필요는 없었던 거였다. 남편 여러분 가슴 마사지는 너무 세게 해주지 맙시다…


유축기도 없어 신생아실에서 얻어온 젖병에 방울방울 손으로 젖을 짜냈다. 10ml나 될까말까, 가져다 주기도 민망할 정도로 적은 양이었지만 처음 짠 젖을 버리기도 좀 그래서 신생아실에 가지고 갔다. 삐이익. 신생아실 벨을 눌렀다.


저, 모유 짠 거 좀 갖다 드리려구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더니 간호사가 반가운 얼굴로 나와 젖병을 받아들었다.


저, 양이 너무 적어서…

괜찮아요 이 정도도! 애기들 먹일게요. 감사해요.


그 순간만큼은 왠지 가슴이 찡해지는 시간이었다. 여전한 가슴 통증도 견딜 수 있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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