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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Apr 18. 2022

벚꽃이 여전히 피어 있었다

분주한 퇴원의 아침

24.



어느새 퇴원이 다가왔다.

수술 전날 일요일 오후에 입원해 월요일에 수술하고, 화, 수, 목, 사흘을 온전히 회복에 전념한 덕택에 목요일 저녁 즈음에는 몸 상태가 제법 많이 좋아져있었다. 두세번 정도 가스가 차고 빠지고를 반복했더니 이제는 더 이상 가스 때문에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아픈 곳은 땡땡하게 뭉친 가슴뿐이라 빨리 조리원에 가서 가슴 마사지를 받을 생각에 조리원이 더없이 간절했다.


사실 이전 편에서 모유 수유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이 때는 그저 단유 마사지를 받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처음엔 열심히 해보려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애들은 잘 물지도 빨지도 못했고 ‘이럴 바에는 몸이나 확실히 회복하고 나가자’는 생각에 산책과 스트레칭과 잠으로 시간을 보내고 하루에 두세 번 모유 수유하는 시늉만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니 애들은 더욱 엄마의 ‘리얼’ 젖꼭지와는 멀어졌고 인공 젖꼭지와 젖병에 친숙해졌다. 유축도 해봤는데 쓰는 법을 잘 모르니까 잘 되지도 않았다.        


아무튼 3급 종합병원 치고는 제법 오래 입원해 있었다. 보통 대학병원은 제왕절개를 했더라도 길어봤자 3박 4일로 짧은 편이라고 한다.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 많은 산모들은 ‘이렇게 아픈데 퇴원해도 되는 건가?’하는 의문을 안고 퇴원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병원은 5박 6일로 입원전날 하루를 제하더라도 4박 5일, 퇴원날은 아침 일찍부터 방 빼느라 분주하니까 그 날도 빼고 수술하는 오전도 뺀다고 해도 3일 반을 온전히 회복에 전념할 수 있었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가 병실에 함께 있어 갓 태어난 신생아를 돌보며 산모 자신도 케어해야 했지만 모유 수유 외의 모든 면회가 일절 금지된 채 24시간 숙련된 신생아실 간호사들의 보살핌을 받는 현재, 회복에 이보다 적기는 없으리라. 지정된 보호자 외에는 아무도 찾아올 수 없어 더 편하다.

   

그렇게 퇴원을 앞둔 목요일 늦은 오후, ‘내일 퇴원하는 거 맞나’ 싶은 생각에 입원 때 받았던 입원 스케줄표를 들여다보며 날짜 계산을 다섯 번 쯤 했을 때 간호사들이 찾아와 퇴원에 필요한 서류를 건네줬다. 이제 퇴원이라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서류를 작성하고 뭐 만족도 조사 설문도 하고 칭찬 간호사 카드도 썼다. 신생아실은 산부인과와는 또 다른 파트라서 신생아실 간호사가 따로 서류를 들고 왔다. 신생아실에서 모유 수유나 유축기 사용법 등 실용적인 부분에 대해 알려준 바가 없고, 간호사마다 말이 달랐던 탓에 만족도를 매우 낮게 줬다. 그랬더니 왠지 ‘아니 아직 우리 애들을 하룻밤 더 맡겨야 하잖아..?’하는 생각에 왠지 신경이 쓰여(질러놓고 후회하는 타입) 신생아실에 찾아가 설문조사를 좀 수정하고 싶다고 했더니 간호사는 아주 친절하게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고 나를 돌려보냈다. 좀 찝찝했지만 앞으로 개선되길 바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신생아실에 대한 불만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모유 수유 권장병원’임에도 모유 수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임신 기간 동안 병원을 다니며 모유 수유 권장 교육 동영상을 보라고 하고, 출산 전에 리플렛을 들고 와 설명해주지만 백 마디 말이나 영상보다 직접 해보는 것이 훨씬 좋다. 게다가 동영상에 등장하는 아기들은 인형이지만 모유 수유는 살아있는 아기에게 해야 한다. 울기도 하고 입을 꼭 다물어 버리기도 하고 유두를 퉤 뱉어 버리기도 하는 예측불허의 신생아인 것이다. 젖을 물릴 때 구체적으로 옆에서 지도해주면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유축기 사용도 마찬가지여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라 대강 눈치껏 버튼을 누르고 그랬다.


또 하나는 업무 인수인계의 미흡한 부분이었다. 젖을 잘 물리도록 도움을 주는 ‘쉴더’라는 것이 있는데, 신생아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 사용 후 매번 소독을 해야했다. 당연히 병실에 소독기 같은 것이 있을리 없어 오전타임 간호사가 사용 후 맡기면 소독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오후타임 간호사는 “소독이요? 개인물품 소독 같은 건 저희가 안 해드리는데요?” 하면서 까칠하게 말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결국 궁여지책으로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담아 헹궈갔다. 이래서 소독이 제대로 될 리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젖도 제대로 못 물리는 못난 엄마를 만나 아이들이 고생한다 싶어 눈물이 다 났다. 호르몬 때문에 구르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날 시기다(이 얘기는 다음 편에서 하도록 하자).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뜨거운 물에 대충 헹군 쉴더를 가지고 갔더니 이번엔 다른 간호사가 “당연히 해 드려야죠” 하면서  소독을 해줘 매우 당황스러웠다. 진작에 해줬으면 우리 애들이 세균이 득실대는 쉴더를 물지 않아도 됐을텐데 화딱지가 났다.

쉴더를 모든 산모가 쓰는 것도 아니고, 자주 있는 실수는 아니겠지만 이 상황들이 처음이고 호르몬이 널뛰는 산모로서는 꽤 마음의 상처가 됐다.


써놓고 보니 신생아실에 불만만 있는 것 같지만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그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친절하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서 좋았다.


잡소리가 길었다. 아무튼 퇴원날이 밝았다. 퇴원의 아침은 일찍부터 시작된다. 몇 번 얼굴을 본 적 있는 레지던트(추정)가 병실 문을 벌컥 열고 불을 켰다.  

“처치실로 오세요.”

이미 깨있었던 터라 눈을 뜨는 게 어렵진 않았지만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이라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소변을 보거나 걷거나 하는 것은 다 할 만한데, 누웠다가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다. 세수까지 했을 때는 거의 10분이 지나 있었다. 성격 급한 레지던트가 다시 병실로 찾아왔다. ‘이 환자 대체 안 오고 뭐 하나’ 싶은 얼굴이었다. 최대한 아픈 척 하며 입원실 맞은 편에 위치한 처치실로 걸어갔다.


실밥을 제거하고 회음부를 소독했다. 제왕절개 산모도 소독하는 점이 좀 의아했다. 어차피 배를 갈라 애를 꺼냈는데 밑은 왜 소독해주지? 오로 때문인가? 어쨌든 소독해준다니 나쁠 건 없다. 누웠다 일어나는데 너무 힘들어서 레지던트(추정)가 잡아주고 그랬다. 참 친절하다. 친절하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하는데 이 병원에서 많이 느꼈다. 큰 병원은 불친절할 거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아주 깨부숴줬다. 엑스레이 찍을 때도 그랬고 뭐 아무튼 힘들어서 낑낑대면 잡아주고 일으켜주고 다 해줬다. 사실 여러 병원을 오래 다니면서 느낀 거지만 대부분 가장 불친절한 사람은 접수처에서 만난다… 그들이 본사 소속이 아닌 파견 회사 내지는 하청 업체 비슷한 회사 소속이라 그런 걸까? 이렇게 서비스직에서 고용의 형태가 서비스의 질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고 말았다. 아무튼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드디어 환자복을 벗고 옷장 안에 걸려 있던 옷을 꺼내 입었다. 왠지 어색하고 아직도 부풀어 있는 배가 야속했다. 입원할 때는 얇은 면 원피스 위에 두꺼운 오버사이즈 가디건을 입고 와서 좀 추웠는데, 퇴원할 때는 가디건까지 챙겨 입으니 더울 지경이다. 이렇게 계절이 바뀐 것을 느꼈다.


병동 앞 나무들은 아직 벚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2021 4월이었다.

병원 복도를 산책하며 내다보곤 했던 바깥의 만개한 벚나무들. 멀리 보이는 것은 바다다.바다가 보이는 병원이라니 어쩐지 로맨틱하다.


두 번이나 같은 병실에 입원해서 도합 7박 8일을 보낸 병실. 그러고보니 수술 다음 날 아침에 썼던 소변통은 퇴원할 때까지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씻어서 깨끗함)


* 게을러터진 작가라 죄송합니다. 쌍둥이 육아가 힘들다는 핑계를 대봅니다.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핑계도 대봅니다.

* 아이들은 얼마 전 돌을 맞았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군요..

* 그리고 브런치북을 발간하는 2024년 10월 24일, 아이들은 42개월 25일을 맞았습니다. 귤의 속껍질을 까주지 않으면 귤을 먹지 못하고 뱉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귤을 까 먹습니다.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귤을 좋아했어요?' 같은 사람다운 대화도 합니다. 지나고보니 모든 게 추억이네요. 역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가 봅니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22년 초, 돌을 맞이할 즈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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