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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Sep 25. 2021

수술이 끝이 아니거든요

‘오로’라고, 들어는 보셨는가?

20.



‘오로’라는 것이 있다. 아마 임신 중이거나 주위 가까운 사람 중에 임산부가 없었던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것 같다. 나도 이번에 임신하고 출산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자세히 알게 됐으니까.


오로는 분만 후 자궁에서 나오는 분비물이다. 태반이 떨어져 나가고 자궁내막이 다시 형성되면서 탈락된 막이 천천히 배출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홉 달 동안 안 했던 생리를 몰아서 한다’, ‘생리를 두 달 동안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엄청난 불편을 생각했으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오로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1-2주면 빨간 오로는 그친다. 나머지 2-4주 가량은 생리 마지막 날 같은 점액 성분의 탁한 갈색 오로가 찔끔찔끔 나올 뿐이다.


백과사전이나 의학 정보를 찾아보면 3-4일이면 피가 섞인 빨간 오로는 그친다고 돼 있는데 실제는 교과서와 다른 법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퇴원할 때 즈음 돼서 그친 줄 알았던 빨간 오로가 조리원에서 마사지를 받으니 다시 왈칵왈칵 쏟아졌다. 뭔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무수히 인터넷 검색을 했으나 ‘3-4일이면 빨간 오로는 그친다’는 한결같은 설명에 괜히 불안감만 늘었고, 다행히 맘카페에 나처럼 꽤 오래 빨간 오로가 나왔던 사람이 많아 안심했다. 불안의 온상인 맘카페가 위로가 될 때도 있다니 역시 뭐든 순기능은 있는 법이다. 실제로도 아무 이상 없었다. 그냥 마사지를 받았더니 노폐물이 잘 나왔었구나 싶다.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출산 후 오로 썰’을 풀면서 9개월 동안 안 해서 좋았던 생리를 두 달 동안 몰아서 하는 기분이라고 몸 상태도 기분도 최악이라며 절대 출산을 하지 말라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때문에 댓글엔 ‘절대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절반 이상이었다. 나도 당시엔 출산과 거리가 멀었던지라 ‘역시 아이를 낳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출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개개인마다 너무도 다르다. 고통의 크기도 다르고(어마어마하게 아프긴 하지만), 회복 속도도 다르고, 동반되는 증세도 다 너무나 다르다. 때문에 고작 오로 ‘따위’를 이유로 출산을 하지 않겠다 결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모든 여자가 출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자궁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한 번 쯤 낳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건 내 삶의 모토이기도 하다. ‘모든 경험이 재산이 된다’.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개인병원에 비해 대학병원이나 3차 상급병원은 세심한 서비스가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덜 안락한 침대와 병실, ‘환자 알아서 하시라’ 식의 태도, 일에 찌들어 무표정한 간호사들과 의사들. 첫 번째는 진실이어도 사실 뒤의 두 개는 내 편견이다.


이러한 편견은 출산을 했던 A병원을 다니며 처참히 깨졌는데, 일단 쌀쌀맞을 거라 생각했던 간호사들이 다 친절한 편이었다. 특히 수술 첫날은 오로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수술 후에 산모 패드를 깔아주는데, 소변줄을 꽂고 있어서 하루종일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갈 필요는 없지만 오로 때문에 이 산모 패드를 갈아주고 밤에는 생식기 주변도 깨끗하게 닦아주어야 한다. 근데 수술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환자가 스스로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소중한 부위를 닦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개복 수술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수술 당일은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힘든 시기다.


임신 때 찾아본 무수히 많은 출산 후기들 중에는 ‘다른 것보다 남편이 오로를 닦아주는데 그게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 때문에 출산을 겪어본 친정 엄마를 남편 대신 보호자로 대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 수술대 위에 오른 내 알몸을 보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치고, 부부 사이에 그렇게까지 수치스러울 일인가 생각했는데 뭐 결혼한지 오래지 않은 부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하기로 했다. 우리야 10년을 넘게 같이 한 사이기 때문에 그런 수치심은 생길 구석이 없다. 혹시나 해서 남편에게 ‘이러저러해서 오로를 닦아줘야 할 것 같은데 할 수 있겠냐’고 미리 물어봤더니 필요하다면 뭐든 해주겠단다. 듬직하다.


그렇게 사전에 철저히 교육을 시킨 다음 수술에 임했는데, 수술날 밤에 간호사들이 와서 패드도 갈아주고 생식기 주변도 꼼꼼히 닦아주었다. 아주 섬세한 손길이라서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냅다 형광등을 켜지 않고 전등을 비춰가며 일을 해냈다. 자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거라 비몽사몽인 와중에도 친절 간호사 이름을 적기 위해 얼굴을 잘 봐놨다. 이 간호사는 나중에 정맥주사바늘도 체크해줬는데, 나름 짬밥 좀 먹은 간호사가 놔줬던 바늘이 너무 아파서 얘기했더니 ‘원래 아프면 안되는데’ 하면서 다시 꽂아줬다. 처음엔 원래 아픈줄 알고 가만 있었는데 이 간호사가 다시 꽂아주니 정말 눌러도 아프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병실에 왔는데, 명찰의 이름을 기억해두고 퇴원할 때 ‘칭찬 간호사’에 이름을 썼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정말로.


수술 다음날은 제법 사람다워져서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도 하고 양치도 했다. 빨리 회복하고 싶어서 복도도 좀 걸어다녔다. 신생아실에 아기들도 보러가고 산책도 했다. 점심부터는 밥다운 밥이 나왔다. 고통도 많이 줄어서 수술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완전히 회복해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부터 수술부위의 고통이 아닌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빌어먹을 가스. 망할 놈의 가스. 사람이 많은 곳이나 밖에서는 섣불리 뀌어서는 안될 방귀라는 그 놈이 나를 애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화는 ‘방귀의 소중함’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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