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리 Oct 05. 2021

아프니까 수술이다

~출산 후 고통 연대기~

21.



물은 수술하고 6시간 후부터, 밥은 그 날 저녁 미음부터 먹었다. 이 지침은 병원마다 달라서 가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밥을 안 주는 곳도 있다는데 가스와 식사는 특별히 크게 상관은 없나보다. 처음엔 일어날 수 없어서 구부러지는 빨대로 물을 마셨다. 제왕절개 산모는 구부러지는 빨대가 필수라더니 정말이다. 임신했을 때도 기침을 하면 속이 아파서 기침을 잘 못했는데, 출산하고 나서는 더 아파서 잘못 사레라도 들리면 정말 지옥이었다. 그러니까 물 마실 때는 조심합시다.


수술날 저녁에 나온 미음은 그냥 색깔있는 물이라서 몇 숟갈 맛만 보고는 말았다. 맛은 재료 씻은 물 같았다.  다음 날 아침식사는 미음. 멀건 물보다는 조금 되직해졌다. 기운이 없었지만 억지로 먹었다.


아침에 소변줄을 뺐다. 밤에 일어나서 화장실 안 가도 돼서 편했는데 약간 아쉬울 정도. 4시간 이내로 소변을 봐야 된다는데 요의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서 오전 중에 소변도 봤다. 소변 보는 것도 생각보다 안 아팠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고, 소변 양도 괜찮게 나와서 한 번에 클리어.


걸어야 회복이 빨리 된다고 해서 힘내서 병원 복도를 걸었다. 피주머니는 왼쪽 아랫배에 연결되어 주머니에 대롱대롱 달고 다녔는데, 꼭 술병을 달고 다니는 것 같아서 산부인과 병동 앞 정원에서 취화선 콘셉트로 사진도 찍었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갈대 비슷한 누런 식물들도 우거졌길래(뭐뭐라고 정확히 불러주면 좋겠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라 아무래도 풀이나 식물에는 약하다) 포즈를 취하기 딱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유쾌함을 잃지 말자는 주의…기는 한데 이때는 그런대로 살 만했나 보다. 무통 주사에 취해 내 회복력을 과신했던 아름다운 때…


피주머니 안의 피는 탁해서 상한 토마토주스 같은 색이었다. 가끔 간호사들이 와서 피주머니에서 피를 짜갔다. 푸르르찍찍. 케첩통에서 얼마 남지 않은 케첩을 짜낼 때 나는 소리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피는 토마토주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동이 가능해지면 신생아실로 오라길래 오전에 신생아실로 갔다. 애들 얼굴을 다 못 봐서 궁금하기도 하고, 게다가 남편은 아직 얼굴도 못 봤다. 당장 모유수유를 시킨다고 수유실이라는 곳에 앉히는데 너무 좁았다. 얼떨결에 수유를 시작하는데 딸아이 얼굴이 너무 못나서 깜짝 놀랐다. 그나마 아들은 남편이랑 똑같이 생겨서 ‘잘생겨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애들이 유두를 물지를 못해서 그냥 좀 물리는 시늉만 하다 왔다. 그나마 간호사가 친절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점심은 죽이 나왔다. 대충 먹고 오후 산책.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야외정원에서는 벚꽃도 보였다. 우리 애들 탄생을 축하하는 벚꽃. 봄에 벚꽃이 피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3월에 피는 벚꽃은 보지 못했으니, 축하하는 거 맞다, 이거.


오후에 수유콜이 와서 또 갔는데 여전히 잘 못 물었다. 혜성이는 물다가 잠이 들었다. 혜리는 계속 자고 있어서 사진만 찍었다. 좀 베테랑 간호사인지 병원 마트에서 쉴드라는 걸 사오라고 했다. 뭐요? 쉴드요? 무슨 쉴드를 친다고? 내가 아는 쉴드는 다른 건데, 여기서 말하는 쉴드란 애들이 젖을 잘 빨지 못할 때 유두에 붙여 잘 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젖꼭지 같은 거다. 남편에게 부탁해 사왔다. 드럽게 비쌌다.


저녁부터는 그냥 일반식사가 나왔다. 아쉽게도 선택식이 있는 일반식이 아닌 산모식. 미역국 지옥이 시작됐다. 배는 고픈데 묘하게 입맛이 없어서 다 먹지 못했다. 밥 잘 먹는 것이 몇 안 되는 장점인데 아쉬웠다.


여전히 젖은 잘 못 물었다. 그냥 애들 얼굴만 봤다. 딸아이는 양수에 퉁퉁 불어 있던 게 좀 빠지니 귀여워졌다. 다행이다.


밤에 수유콜을 한 번 안 받았더니 새벽 3시쯤 간호사가 와서 깨워서 깜짝 놀라 깼다. 그 전까지땀 흠뻑 흘리며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했다. 결국 거의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참고로 내가 출산한 A병원은 모유수유 권장병원으로, 모유수유전문가도 있지만 도와주는 것은 전혀 없고 리플렛 보고 몇 마디 설명해주는 게 전부라 유튜브 보고 따라하는 것이 훨씬 나을 정도이며, 원래대로라면 출산 후 바로 신생아가 산모의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퇴원까지 빠지지 않고 지옥의 모자동실을 하게 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아기들은 신생아실에 격리되다시피 하여 모든 것이 두려운 초보엄마에게는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준다. 모유수유가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수유를 하러 가지 않으면 아기 얼굴을 볼 수 없으므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도, 아이들이 빨지 못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두세 번은 꾸준히 아이들을 보러 갔다. 내가 사진을 찍어오지 못하면 남편도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가서 사진 찍어오는 건 필수였다.


수술하고 이틀째 되는 날, 무통 주사를 다 써서 뺐다. 수액은 수술 다음 날 뺐고 무통까지 빼니까 수술 후 주렁주렁 달려있던 것들이 다 빠지고 피주머니만 남았다. 항생제는 정맥주사로 맞아야 돼서 정맥주사 바늘을 새로 꽂았다. 정맥주사 바늘이 불편해서 너무 싫었는데 뭐가 늘 달려있진 않으니까 금방 바늘이 꽂혀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지내게 됐다.


무통 주사 효과 없다고 징징댔는데 떼니까 너무 아팠다. 수술하고 이틀 지나서 많이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다시 수술 다음 날 아침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애가 둘이나 나왔는데 배는 여전히 빵빵했다. 원래 애를 낳고 나서 배가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쯤은 수많은 후기를 통해 알고 있었던지라 별로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문제는 배가 빵빵하고 아프다는 것이었다.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아팠다. 이건 수술 부위 통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


가스라는 놈이 뱃속에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이번 화는 그림 대신 사진으로. 필자는 <취화선>을 보지 않았다. 시간나면 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