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리 Aug 28. 2021

제왕절개는 고통이 후불제라면서요

마취, 마취의를 불러주시오

19.



흔히 출산의 고통을 따지자면 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이라고들 한다. 근데 내 경우에는 수술 때부터 아파서 그게 5일 동안 지속됐으니 무언가 잘못된 지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아이고 의사양반, 마취를 했는데 왜 이리 아픈게요?


제왕절개 후기를 많이 찾아봤었는데 대부분은 마취가 풀리고 무통주사도 떨어지고 나서야 아프다고 했다. 그걸 철석같이 믿은 잘못이었을까, 아니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아픈데, 대체 아이는 언제 꺼내는 걸까, 빨리 애들 얼굴이나 보고 자고 싶다(애들 꺼내고 나서는 수면마취로 재워준다고 설명했었다), 아니 꼭 애들 얼굴은 봐야 하는 걸까? 어차피 나중에 매일 볼텐데, 아파 죽겠다, 뭐 이런 생각을 수술 시간 내내 하며 뱃속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시험관 했어요?


수술 도중 뜬금없이 의사가 물었다. 보통 수술 중에 의사가 환자한테 뭘 물어보나? 예진 때 시험관이라고 얘기했지만 고작 3주 정도 본 의사가 제왕절개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머릿속에 입력해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체 왜 수술 중에 그런 걸 묻는 걸까. 뭐가 잘못됐나? 불안하면서도 네!하고 힘차게 대답했다(C병원에서 시술 중에 대답 크게 안 했다고 혼난 뒤로는 뭐든 씩씩하게 대답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아, 장유착이 심하네요.


과연 알겠다는 말투였다. 뭐지? 장유착이 심하면 임신이 잘 안 되나? 애초에 장유착은 정확히 뭐지? 왜 생긴 거지? 죽을 병인가? 아니, 심각한 병이면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궁에 혹도 있고.


7월에 C병원에서 자궁경을 했을 때는 자궁이 깨끗하다고 했는데, 그새 혹이 생겼나, 그럼 임신 중에 생겼다는 건데 왜 그럴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수술에 집중해야 했기에 뭘 물어보지는 않았다. 의사는 뭣하러 수술 중에 그런 얘기를 해서 환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나 슬슬 걱정이 되던 차에 미약한 응애 울음소리가 들렸다. 애기가 나오면 우렁차게 우는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아들이 먼저 나왔다며 얼굴을 보여주는데 가림막을 친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뭐지? 난 뭘 위해 지금까지 깨어 있었나? 당황스러운 가운데 딸의 차례가 왔다. 다행히 딸 얼굴은 보였다. 갓 나온 신생아라 누굴 닮았는지 판단할 수도 없었고 얼굴을 찬찬히 볼 여유도 없었다. 그 때 든 생각은 ‘아, 이제 잘 수 있겠구나’였다.


편안한 마음으로 수면마취를 기다리는데 아무런 조치 없이 후처치가 이어졌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불타는 듯한 고통을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머리맡에서 참관 중인 인턴(추정)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수면마취 좀 해주세요…


인턴은 수술 장면을 다시 살피더니


다 끝나가는데, 그래도 재워드릴까요? 많이 힘드세요?

네.. 재워주세요…


아 시발, 참지 말고 빨리 재워 달라고 할 걸 그랬다, 쓸데없이 인내심은 좋아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잘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었다. 인턴은 마취의가 가고 없다며 다시 전화로 마취의를 불렀다. 잠시 후 온 마취의가 코에 튜브 같은 걸 끼워주고 깊이 들이마시라고 했다. 어라, C병원 하고는 또 마취 방식이 다르네 따위의 생각을 하고 눈을 떴더니 회복실이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누워 대기하던 곳이다.


깨자마자 배가 아팠다. 수술실에서 느꼈던 불타는 것 같은 고통의 연장선이었다. 뭐 무통주사니 뭐니 다들 맞는다는데 이놈의 병원은 그런 게 없는 걸까? 너무너무 아픈데 움직일 수도 없어서 고개만 좌우로 왔다갔다 했다. 빨리 병실에 돌아가서 남편한테 좀 칭얼대기도 하고 마음껏 쉬고 싶었는데 수술 후엔 필수적으로 회복실에 있어야하는 시간 떄문인지 몇 분을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몇 미터 떨어진 병상에는 어느 어르신이 복부 관련 수술을 받았는지 ‘아이고 배야’를 끊임없이 되뇌고 계셨다. 처음엔 ‘나도 아프다’ 따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속 듣다보니 ‘아이고 배야’는 시계바늘처럼 일정한 간격과 같은 톤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취가 덜 풀려 비몽사몽인 중에 나오는 신음소리인 것 같았다. 아무튼 그것이 의식에 의한 것이든 무의식에 의한 것이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아이고 배야’를 강제로 듣고 있자니 정신이 이상해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정신이 어떻게 되기 전에 병실로 옮겨졌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누군가 나를 옮겨가는 경험은 여전히 생소하다. 덜컹거리는 바퀴와 흔들리는 침대, 움직이는 천장, 첫 경험은 C병원에서였지만 그 땐 배아 이식날이라 아프지도 않았고 멀쩡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서 곡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이고 배야’ 외칠 힘도 없는 거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흐으으, 하고는 만다.


침대에 누운 채 엘레베이터를 타고 마침내 내 병실에 도착했다. 며칠 좀 지내봤다고 내 집 같았다. 남편은 병실에 없었다. 아니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야 싶었는데 마침 잠깐 뭘 가지러 갔다왔다며 간발의 차로 남편도 병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었다. 7시 40분쯤 수술하러 갔으니 거의 2시간 만이었다. 남편은 오래 기다렸다며 걱정한 얼굴이었다. 먼저 나온 아기들은 신생아실로 옮겨져 아이들만 입원 수속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애들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서류만 작성했다고 했다. 그게 8시 54분이었다. 산모는 괜찮은가요? 물었더니 신생아실 간호사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 모른다며 쌩하니 가는 바람에 산모의 생사(!)도 모르고 한 시간 반 동안 마음을 졸인 모양이었다.


애초에 내 수술은 두 번째 타임이었는데, 첫 타임 수술이 좀 어려운 수술이라 비교적 간단한 제왕절개인 내 수술을 먼저 하게 됐었다. 근데 배를 갈라 보니 생각보다 장기 상황이 좋지 못해 예상보다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배도 불타는 것처럼 아픈가 보다.. 생각하며 침대 위에서 끙끙거렸다. 잠이라도 자면 좋겠는데 아파서 잠도 안 왔다.


기본 진통제와 함께 추가로 달 수 있는 도넛 모양의 무통약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건 마약성 진통제라 버튼을 눌러 몸에 들어가면 일정 시간 동안 다시 누를 수 없는 구조였다. 너무 아파서 수시로 버튼을 눌렀다. 이 버튼도 꽤나 힘을 줘서 눌러야 했는데, 누를 힘도 없어 남편한테 눌러 달라고 했다. 시간.. 아직 안 됐어? 약 좀 넣어줘… 그야말로 환자 그 자체였다.


생각보다 물을 못 마시는 고통은 크지 않았다. 그건 아마 다른 고통이 더 커서였으리라. 4시간 지나서 겨우 물을 마실 수 있었는데, 아직 일어날 수는 없어서 누워서 물을 마셨다. 제왕절개 산모 필수템으로 ‘구부러지는 빨대’를 확인하고 준비해간 터라 요긴하게 썼다. 아마 없었으면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온데 다 쏟고 어디 잘못 들어가 켁켁거리고 기침하면 또 배는 더 아프고 몹시 고통스러웠을 뻔했다. 역시 유비무환이다.


오후에 배 위에 올렸던 모래주머니를 치웠다. 엄청나게 아프다던데 역시 예상을 해서인지 뱃속 고통이 더 커서인지 크게 아프지 않았다. 저녁 때 쯤에는 고통이 약간 줄어 들었다. 남편이 애들 입원할 때 받은 거라며 아이들 이름과 바코드가 적힌 입원 환자용 팔찌를 보여줬다. 병동을 출입할 때 아무나 드나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입원환자나 보호자용 바코드를 찍어야 한다.나는 산모이기 때문에 내 손목에는 내 정보가 담긴 바코드가 인쇄된 팔찌가 채워져 있다. 남편도 내 보호자로 들어와 있어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생아용 입원팔찌는 혼자서는 출입도 못하는 신생아에게는 필요가 없으니 보호자에게 주어진다.


남자아이 것은 하늘색, 여자아이 것은 분홍색이었다. 색깔에 성별을 지정하지 말자고들 하지만, 성별도 한눈에 구분하기 힘든 아기 시절엔 이런 전통적인 사회적 구분이 편하다. 이름은 아직 없어서, ‘이OO 아기1’, ‘이OO 아기2’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수술날은 수액과 소변줄이 꽂혀 있어도 배도 안 고프고 화장실에 가고 싶지도 않아 몹시 편했다. 마침 밤에 KBS에서 <렛츠 비티에스>라는 방탄소년단 특집 프로그램을 해줘서 보다가 잤다. 친구들은 재미 없었다고 했는데 나는 병실에 누워 할 일이 없어 그랬는지 매우 재밌게 봤다.


그러고 다음 날은 꽤 몸이 많이 나아져서 이제 멀쩡해지는 일만 남았구나, 역시 기본 체력은 있구만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고비가 또 찾아오고 말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제왕절개 수술 썰

다음 편에 계속.



*남편과 단둘이서 쌍둥이 육아를 하며 근근이 강의와 글쓰기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업로드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매일 짬을 내서 조금씩이라도 쓰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네요.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다음 편은 더 일찍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술실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