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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un 18. 2021

입원, 퇴원, 그리고 또 입원

입원도 하면 익숙해진다고

17.



입원 다음 날, 아침부터 피검사를 하고 간초음파와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다. 오후 늦게 수액 한 팩을 다 맞았다. 초음파 상의 간은 이상이 없었다. 일단은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밤엔 환풍기 소리가 시끄럽고 수시로 혈압 체크를 당하거나 피를 뽑아가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아침엔 밥을 갖다주시는 아주머니가 물었다.


점심 선택식은 짜장면인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 선택식으로 할게요.


입원 생활 중에도 이런 소소한 기쁨이 있구나 싶어 조금 설레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게 선택식을 먹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레 퇴원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간수치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아침 피검사에서 간수치가 다시 떨어졌다. 수액의 힘이었을까?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짐을 쌌다. 퇴원하는 길에 막국수에 수육 한 접시를 뚝딱하고(둘이서 못 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싹싹 긁어먹었다) 젤라또도 사먹었다. 바닷가 구경도 했다. 평화로웠다.


일주일에 두 번 꼴로 병원에 가 채혈을 하고 간수치를 계속 체크했다. 최근 몇 달 사이 평생 뽑은 피보다 더 많은 피를 뽑은 것 같다. C병원에서부터 출산을 위해 이곳에 오기까지 피를 무수히 많이 뽑았지만 누군가는 혈관부터 잘 못 잡아서 주사바늘을 몇 번이나 찌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정량을 뽑았나 싶게 순식간에 끝내주기도 했다. 이곳 산부인과는 신관에 위치해 늘 신관 채혈실에서 피를 뽑았는데, 아프지 않게 피를 뽑아주는 이른바 ‘채혈 맛집’이었다. 물론 제대로 지혈을 안해서 피가 알콜솜 가득 흥건히 젖은 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5분 동안 피 뽑은 자리를 잘 누르고 있으라는 말을 안 들은 내 탓이다.


제왕절개 수술은 36주 5일로 잡혔다. 퇴원 할 때 좀 내려갔던 간수치가 다시 꾸준히 오르고 있어, 빨리 출산하는 게 답이었다. 어차피 쌍둥이는 한 달 정도 일찍 낳는 것이 당연해 조산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 만찬으로 호텔 뷔페를 먹고 전에 싸뒀던 짐을 재정비해 들고 갔다. 입원도 익숙해지는 법이다.


임신 때부터 이미 숱하게 제왕절개 후기를 찾아본 탓에 두려움은 없었다. 흔히 말하기를, 자연분만은 고통이 일시불이고 제왕절개는 할부라던데 아픈 거 참는 건 잘하니까 위험할 일 없이 아이들 수술로 잘 꺼내고 나만 나중에 끙끙거리며 회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원래 월요일 아침 두 번째 타임이었던 내 수술이 첫 번째가 된 것까지는 좋았다. 원래 잡혀있던 수술이 좀 어려운 거라서, 교수님한테 첫 번째로 해달라고 말씀드려 볼게요. 수술 전날 입원해 초음파와 태동검사를 받으면서 간호사와 레지던트(로 추정)가 한결같이 한 말이었다. 제왕절개 수술 같은 거야, 위험한 산모의 수술도 집도하는 상급 종합병원 산부인과 의사에겐 어렵지 않은 수술일 터. 때문에 나는 운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입원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도 제법 입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시 배정받은 병실도 지난 번과 같은 병실이었다. 간호사들이 한 마디씩 했다.


지난 번이랑 같은 병실이시네요.


저출산 시대를 방증이라도 하듯 산부인과 병동은 텅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이래서 운영은 제대로 되나 걱정될 정도였다. 지역에서 유일한 상급 종합병원이다 보니 이런 것에까지 마음이 쓰인다.


이제는 익숙하게 입원복을 갈아입었다. 나중에 수술 후 회복을 위해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산부인과 입원복만 유일하게 분홍색무늬고 무릎까지 오는 긴 상의다. 아무래도 배 나온 산모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바지도 있는데 퇴원할 때까지 배가 들어가지 않아 언제나 바지를 잔뜩 내려 저스틴 비버 스타일로 입었다.


환복 후엔 몸무게를 재고 태동검사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혈압도 쟀다. 요즘은 제왕절개를 할 때 치골 바로 윗부분을 가르기 때문에, 제모는 필수로 한다. 배 한가운데를 가르는 건 나 어렸을 때나 하던 수술법인가 보다. 이것도 이번에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면서 알았다. 왁싱을 미리 하고 가면 오로 처리를 할 때 위생적이고 여러모로 좋다길래 난생 처음 왁싱도 하고 가서, 제모를 해준다는 간호사의 말에 당당하게 ‘저 왁싱하고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다만 들어오는 간호사마다 제모 여부를 물어보고 언제나 확인까지(!) 했기에 좀 민망하긴 했다. 혹시 간호사실에 ‘27호실 산모 왁싱 깨끗하게 하고 왔다더라’하고 소문이라도 난 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어보고 확인하는 게 그 분들의 일이니까요, 네.


마지막 초음파에선 딸이 3.2kg, 아들이 2.9kg이었다. 그러고보니 성별 이야기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란성 쌍둥이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다. 만 35세 미만의 경우 5일 배양 배아를 1개만 이식할 수 있고 35세 이상이 되어야 2개를 넣을 수 있는데, 나는 이식날이 기가 막히게 생일 일주일 후라 만 35세가 넘어 5일 배양 배아 2개를 이식할 수 있었다. 그 배아가 착 붙어 먼저 착상한 아이가 여자아이, 조금 늦게 착상된 아이가 남자아이가 됐다.


때문에 임신기간 내내 남자아이가 조금 작았다. 항상 둘이 나란히 역아로 있어서 누가 먼저 나올지 알 수 없었는데, 34주가 지나면서 남자아이가 아래쪽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아 먼저 나오게 됐다. 우리나라는 먼저 나오는 아이를 첫째로 인식하는데, 외국은 반대라고 한다. 먼저 생긴 아이가 나중에 나온댄다. 물론 외국에서 실제로 그렇게 인식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고 먼저 생긴 아이가 언제나 나중에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내 경우는 그게 들어맞았다. 신기한 일이다.


수술을 하면 누가 아래에 있든 상관없이 선택해서 꺼낼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자연분만과 유사하게 아래를 가르는 만큼 그런 건 아닌가보다. 아래 위가 아니라 나란히 있는 경우엔 배를 갈랐을 때 먼저 손이나 발을 내미는 애를 먼저 꺼낸다고 한다. 가끔 성별이 다른 쌍둥이의 경우 ‘아들을 먼저 꺼내주세요’하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인데, 누굴 먼저 꺼내달라고 부탁하는 건 위험한 짓이라고 한다. 그 애가 먼저 손을 내밀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리해서 뒤에 있는 애를 먼저 꺼내려다 위험해질 수 있댄다. 역시 뭐든 순리대로 하는 게 좋다. 아니, 애초에 시험관 아기가 순리가 아니라고요? 그래도 착상은 ‘신의 영역’이니 순리를 따른 거라고 합시다.


입원날 마지막으로 일반식을 먹었다. 내일 아침 선택식은 토스트와 스프라며 밥을 갖다주시는 아주머니가 종이쪽지를 내밀었는데, 당당하게 “저 내일 수술이라 금식이에요”하고 씩씩하게 답했다.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수술과정이나 주의사항을 들을 때는 이제 진짜 수술을 하는구나 실감이 났다.


나는 정말로, 수술이 기대되었다.


진짜 마지막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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