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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un 07. 2021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만드는 입원복의 마력

자정 넘었으니 병실료 하루치 할인해 주나요

16.



평생 수술은 물론이고 상급종합병원 근처엔 병문안 외엔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입원이 어쩔  없이 설레고 그랬다. 비록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원래 입원이 그런  아니겠는가? 남편은 예상 외로 더욱 낙담하는  같았지만, 아무튼 의사 선생님이 하라면 해야지 .


나름 평탄했던 임신 생활 막바지에 결국 입원을 하게 되고 말았다며, 쌍둥이 임신은 어쩔 수 없다느니 하며 집에 돌아가 짐을 쌌다. 출산까지 퇴원을 못할지도 모르니 출산 가방까지 캐리어 가득 챙겨놓고 전날 먹고 남은 김치찌개를 데워 먹었다. 식탁에서 거실을 둘러보는데 이제 이 집에서 단둘이 지내는 시간이 이걸로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보통 수술로 출산하는 경우 출산일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입원 전날 저녁식사를 ‘마지막 만찬’이라고 하여 먹고 싶은 음식을 챙겨먹곤 한다. 나 역시 뭘 먹을까 고민했었는데 그 마지막 만찬이 먹다 남은 김치찌개가 되다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다 해두고 옷도 다 갈아입고 기다리는데 밤 10시가 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문자로 온다는데, 오랫동안 오지 않으니 슬슬 걱정이 됐다. 혹시.. 양성인가? 일도 다 그만두고 가끔 기분전환 겸 외식을 하거나 카페에 가는 게 외출의 전부였는데, 거기서 옮은 것인가? 양성이 뜨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입원이 안 되면 어떡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10시가 넘어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혹시...? 문자 통보가 아닌 전화고지는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잔뜩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기 A병원 52병동 산부인과예요. 오늘 입원하기로 하셨는데 아직  오셔서요.


아니, 코로나 검사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고요.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더니 병실 준비가 다 됐으니 결과를 받는대로 입원하러 오라고 했다.어차피 곧 자정인데 혹시 입원을 다음 날로 미루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당직 간호사는 ‘교수님이 오늘 입원하라고 하셨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긴, 간호사가 입원일을 마음대로 미룰 수 없을 터.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 자정 넘어 입실하면 하루치 병실료는 안 내도 되는 거 아닐까?

오빠. 체크인 할 때 자정 넘었다고 하루치 숙박료 안 받는 거 봤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


다행히 11시 즈음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접수처는 문을 닫은 시각이라 응급실을 통해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본관 5층에 위치한 산부인과 병동으로 갔다.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검사를 받은 상주보호자 1명을 제외하고는 출입할 수 없게 돼있어, 보호자 팔찌나 입원환자 팔찌의 바코드를 리더기에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바코드가 금방 읽히지가 않아 전화를 걸고 온갖 난리를 피운 끝에 마침내 병실에 입성했다. 지어진지 20년이 넘은 병원이다 보니 설비는 낡아서 보호자용 소파는 가죽이 벗겨지고 환풍기 소음은 심했지만 1인실이라 넓은 점만은 좋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몸무게를 재고 병실에 있으려니 팔에 주사바늘이 꽂히고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희한한 게 환자복을 입고 링거만 맞으면 그렇게 아픈 기분이 들 수가 없다. 멀쩡한 사람도 순식간에 환자로 만드는 게 환자용 입원복과 정맥 주사바늘인 것 같다. 태동검사를 한다고 배에 덕지덕지 뭔가도 붙었다. 간호사가 쌍둥이 위치를 잘 잡지 못해 30분이면 끝날 태동검사를 2시간 했다. 놀러가는 기분으로 컵라면도 싸왔는데 참 철이 없는 짓이었다.


결국 태동검사가 끝난 것은 새벽 2시가 넘어서였고 검사에 지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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