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임은 언제 오시려나
22.
꼼짝없이 누워 지내던 임신 중반, 하릴없이 그저 제왕절개 후기나 찾아보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출산과 수술에 따른 모든 종류의 괴로움과 후유증을 다 섭렵했다고 여겼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누구도 출산 후기에 적지 않았었다. 그저 으레 수술에 따르는 통증, 오로, 젖몸살, 그런 것들이 전부라 생각했다. 하지만 검색해 보니 수많은 증언이 쏟아졌다. 단지 ‘제왕절개 후기’, ‘출산 후기’ 같은 검색어로는 잘 나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제왕절개 후 가스’
검색어를 바꾸었을 때 비로소 출산 선배들의 고통이 나왔다. 제왕절개 후 가스가 안 나와서 배가 빵빵해요. 가스가 안 나와서 배가 너무 아파요. 가스 잘 나오는 법 있나요?
배에 가스가 차는 것은 출산의 특별한 증상은 아니다. 개복수술을 했다면 흔히 따르는 증세인데, 개복수술로 인해 장 운동이 더뎌지고 가스와 분비물이 장에 축적돼서 그렇다고 한다. 멀쩡한 뱃가죽을 가르고 이래저래 장기를 매만졌으니 장이 아무래도 놀란 모양이다(라고 문과는 이해한다).
그런데 이 가스가 사람을 무지하게 아프게 만든다. 수술 직후에 너무 아픈 건 당연한 일이고, 이틀 째 되는 날 좀 살 만하니 무통주사를 떼야 돼서 또 아이구 아파 하다가 몇 시간 지나 살 만하니 이번엔 가스 때문에 아프다. 고통에서 좀 벗어날 만하면 새로운 고통이 찾아오니 정말 익숙해질 틈이 없다.
배에 가스가 찼으니 배도 빵빵하다. 원래 아이를 낳고 나서 바로 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수술한 다음 날보다 더 배가 빵빵해진 것 같으니 걱정이 아니될 수 없었다. 수술 이틀 째 아침 회진, 속도 모르고 주치의는 회진 때 옆의 레지던트(추정)에게 말했다.
이거, 애 하나 덜 꺼낸 거 아닌가?
주치의의 농담에 화딱지가 났다. 그러고는 배를 꾹 누르는데 너무 아파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후로 회진 때는 누워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많이 걸으셔야 돼요.
많이 걷는데요…
더 많이 걸으셔야 돼요.
레지던트(추장)와 간호사는 한결같이 걸으라고 했다. 수술 후엔 뱃속에 불타는 것처럼 아팠다면 가스가 찬 배는 콕콕 쑤시고 찢어질 듯이 아파 허리를 펼 수가 없다. 걸어야 가스가 빠지는데 가스 때문에 아파서 걸을 수가 없는 형국이다. 그래도 누워있을 수는 없어 어기적거리며 병실을 나서는데 마침 수간호사가 지나가면서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봤다.
진통제.. 진통제 주사 좀 놔주세요..
수간호사는 군말없이 쿨하게 진통제 주사를 놔줬다. 다른 간호사들은 ‘그렇게 많이 아프냐’, ‘일단 교수님한테 물어봐야 한다’며 늘 튕겼는데(그게 당연한 매뉴얼이겠지만) 역시 수간호사는 의사 없는 입원 병동에서는 최고 존엄인가 보다. 정말 고맙습니다.
진통제 빨로 걷고 엑스레이도 찍으러 다녀왔다. 배가 너무 빵빵하니 사진이라도 좀 찍어보자는 거였는데, 다행히도 그냥 다 가스였다. 오후 회진 때 계속 걷고 운동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아무래도 병동을 하염없이 걷기에는 지루하기도 하고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두 시간을 연속으로 걸어도 가스라는 놈이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않았다.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계단 오르내리기를 했어요, 고양이 소 자세를 했어요, 누워서 다리 들어올리면 잘 나와요…
그중에서 해볼 만한 걸 골랐다. 계단 오르내리기는 평지에서도 겨우 걸음을 떼는 나 같은 사람에겐 무리일 것 같아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동작으로 골랐다. 고양이 소 자세와 누워서 다리 들어올리기. 요가를 할 때 많이 해봤던 쉬운 동작들이다.
고양이 소 자세는 엎드려 무릎을 직각으로 하고 손과 무릎과 발로 버티며 머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척추를 이완하는 자세다. 말로 하면 어려운데, 아마 보면 누구나 다 아!하고 외칠 그런 기본 동작이다. 수술하고 엎드려본 적이 없어 고양이 소 자세를 하는 게 좀 두려웠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럭저럭 할 만했다.
누워서 다리 들어올리기는 정말 힘들었다. 일단 배에 힘이 들어가야 하는데 힘이 안 들어가서 낑낑거리며 겨우 해냈다.
침대 위에서 온갖 난리를 다 피웠는데도 뱃속 가스는 요지부동이었다. 포기하고 일찌감치 잠이나 자기로 했다. 모로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소리가 들렸다.
부우우웅-
그건 마치 뱃고동 소리 같았다. 저멀리 바닷가 항구에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잔뜩 기대감을 품은 승객들을 가득 실은 여객선이 출항하며 증기를 잔뜩 내뿜는 장면이 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오랫동안 정체돼있던 가스는 배출하며 이런 소리를 내는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 몇 번의 가스 배출이 더 있었다. 너무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보호자 침대에 누웠던 남편과 배출의 기쁨을 잠깐 나누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눈을 붙였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