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책 리뷰는 아니고 마음이 담긴 독후감이다
by UltimateBlue Jun 24. 2020
몇 년 동안 독후감은 물론이고 공부 목적이 아닌 이상 책을 손에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코로나 덕분일까? 이번에는 드디어 여유가 생겨 매년 새해 목표 중 하나였던 책 읽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2020년 반년이 지날 동안 무려 5권이나! 별거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 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했던 나에게는 무척 커다란 성취였다. 5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를 읽었는데 6월 22일인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자 한다.
이 독후감은 경제학보다는 그 경제학자들의 이념과 인생 그리고 책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옛날부터 현대까지의 경제학자들과 점점 더해져 나가고 깎여나갔던 경제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 안에 있는 경제학자 중에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몇 명을 꼽아보자면 카를 마르크스, 앨프리드 마셜, 존 메이너드 케인스,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이 있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와 그에 덧붙여, 내 생각을 가볍게 읊어보자 한다.
경제학의 역사란 간단히 말하자면 학파 간의 지독한 전쟁 아닐까. 모든 학문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경제학은 유난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A라는 관념이 있다면 A를 비판하는 글을 비판하는 논문을 다시 비판하는 학자가 반복되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비판에 비난을 이어 간 경제학 가운데 한 줄기 평화주의자, 이 책에 나오는 경제학자 중 가장 공정하고 이상적이라 생각되는 경제학자는 역시 앨프리드 마셜이다. 마셜은 한계주의의 발전과 현대 경제학 교과서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고 생전에 케인스를 포함한 수많은 경제학자를 배출해내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경제학은 항상 사람을 위해야 한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범한 중요한 오류는 그들이 역사와 통계학을 간과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소위 수학 공식의 상수로 간주했다는 데 있다. 나는 경제학 이론이나 정리에 어떤 보편성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기관에 불과하다.” 마셜은 사실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책의 한 구절에 나오는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나를 한참이나 생각에 빠져있게 했다. 머릿속에 널브러져 있는 생각들을 글이나 말로 만들어 가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특히나 그 생각이 몇백 년 뒤를 사는 내게까지 영향을 주니 말이다.
앨프리드 마셜의 제자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의 스승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케인스는 간략하게 말해서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 경제학의 한 기축을 다진 케인스주의의 창조자이자 주식 시장에서 떼돈을 번 투자자이며 동시에 예술을 사랑한 아마추어 예술가였다. 진리를 추구하며 사람들과 멀리한 다른 전형적인 천재들과는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가장 나와 성격이 닮은 경제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철도 회사를 경영하거나 독점 기업을 조직하거나, 아니면 민간 투자자들 등이나 처먹는 일을 해보고 싶은데.”
“경제학이라고 뭐 별스러운 게 있나? 난 없다고 생각하는데.”
“올 연간 보고서는 조금 특별한데, 부록으로 남색 삽화를 삽입할 계획이라네.”
참고로 케인스는 동성애자이다.
케인스의 이런 자유분방함과 당당함은 그의 커다란 매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생애 내내 항상 인류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1차 세계 전쟁이 끝난 이후로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강화 회담에서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 그리고 케인스가 속해 있는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가 의도치 않게 유럽의 경제적인 불안과 다음 세계 전쟁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고 진저리가 난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베르사유 조약의 위험성이 가져올 결과에 관한 책을 작성한다. 안타깝게도, 그 책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미래의 제2차 세계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를 했다. 의도치 않은 결과로 전 세계인이 고통을 겪기는 했지만, 케인스는 평생을 경제학자로서 세계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현대 경제학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본적인 관념이 있다. 케인스학파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민 통화주의파다. 그동안 화폐에 대해 무시해 온 경제학자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통화주의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 通貨 공급량과 그것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케인스가 말한 수요와 정부의 개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은행, 정부, 국민, 경기 성장,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과 화폐 공급의 상호 작용이 꽤 복잡하므로 따로 찾아보았으면 한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통화주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인식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프리드먼은 케인스의 정부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 대해 비판했는데, 정부에 있는 정치인들이 항상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밀턴은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통화 공급량 조절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폐량을 일부러 조절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에 화폐 공급량을 함부로 건든 죄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부작용으로 파도처럼 몰려올 수도 있지만 말이다.
중국, 소련, 북한 등의 나라들을 보면 뭐가 연상되는가? 핵도 물론이지만, 경제학과 관련해서는 공산주의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적으로서 미움받고 사랑받아온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카를 마르크스는 책에 나오는 (그중 몇몇은 어렸을 때는 가난했으나) 존경받으며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교수나 정부 경제 자문단 따위를 한 다른 경제학자들과는 다르게 런던의 빈민촌에서 배고픈 경제학자 역을 맡았다. 비록 그 과정에서 안 좋은 환경 때문에 아이 셋을 질병으로 잃고 아내 손에 물을 많이 묻히게 했지만 말이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지적 생활을 조건 짓는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
위의 문장과 더불어 마르크스의 몇몇 이념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이 간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방법은 과하게 이상적이었고 굶어가는 노동자들을 매료시키는 데는 적격이었다. 비록 그 이후의 사회가 사람들이 원하는 사회와는 조금 다를 수 있었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독재자를 예측하지 못했고 동등하다는 것은 곧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유명한 마르크스의 선언 중 하나다. 마르크스의 이념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나라들이 생겼고 치열하게 경쟁하다 다시 사라지다 현실과 타협하고 그중 한 나라는 현재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마르크스가 관에서 일어나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보게 된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경제학의 역사가 무척이나 우리의 삶과 끈끈하게 연결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 있고 상호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그 오래된 역사는 오늘날을 만들어 냈다는 것. 경제학이라는 것에 손도 안 대본 나는 그동안 경제학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요거트 하나를 살 때도 기사 하나를 읽을 때도 그 안에서 스미스, 리카도, 맬서스, 밀, 갤브레이스, 등등 이 독후감에서 소개하지 않은 죽은 경제학자를 포함한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가 느껴질 것 같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나 같은 경제학 입문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같이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경제학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세상이 대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건지 정부가 무슨 목적으로 이 정책을 만드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몇몇 전문적인 경제 용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쉽게 예시를 제공해 주는 건 물론이고 중간마다 토드 부크홀츠의 신랄한 입담과 멀게만 느껴졌던 경제학자들의 재미난 일상을 팔랑팔랑 넘기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케인스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케인스의 친구였던 스트레이치는 정말로 유쾌한 사람들이어서 책을 읽다가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1989년에 처음 쓰인 책으로 사실 꽤 오래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래된 만큼이나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왔다고 믿는다.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부크홀츠의 다른 대표작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작은 번역 실수가 뒤에 갈수록 잦았지만, 번역을 맡아주셔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 출판사와 번역자께 감사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 표지를 안 끼운 게 더 내 취향이었다. 지금은 모던 타임즈를 읽고 있는데 그 책의 내용이 내가 읽었던 책들의 내용과 겹치니까 기분이 이상야릇하면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실 평소에는 할 일이 끝나면 스마트폰으로 무기력하게 유튜브나 뒤적거렸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책을 읽으니 머리가 개운하다.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모두 이 기회에 책이나 열심히 읽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