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촌스럽다” MZ세대 외면받는 하이힐, 왜?
MZ세대는 획일화된 유행이나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된 미의 기준 대신 ‘나다움’을 중요시하는 특징을 보인다. 일부 여성들에게 하이힐은 자신의 이동성과 편안함을 제한하는 신발일 뿐 아무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기열 백석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나다운 것, 자연스러운 것을 겉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패션”이라며 “하이힐은 물론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스키니진 대신 통 넓은 슬랙스 바지가 대세인 것도 ‘나다운 패션’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한다. 패션에는 조화가 중요하다. 백 교수는 편안한 바지에 맞는 신발을 고르다 보니 하이힐이 낄 자리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 출처 : 경향신문 L매거진 / 2024.02.02 이유진 기자
87년생인 본인은 20대 초반 시절에 한껏 '나 오늘 예쁘다'를 주장하고 싶으면 '미니스커트 입고 하이힐 한번 신어줘야지?'란 말을 인출했었던 구시대 사람이다. (혹시 나만 그런건 아니겠죠 같은 80년대생님들..)
하지만 위에 인용한 기사의 내용처럼 최근에는 연예인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하이힐 보다는 편하지만 멋스러운 운동화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성성'의 강조보다 '나답고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괜스레 떠올려보는 라떼 기억
처음으로 하이힐을 구입한 것은 고2때였다.
남자친구는 20살부터 사귀어야 한다는 엄마와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던(남이 지켜준건가?ㅋㅋㅋㅋㅋ내가 지킨건지 남이지킨건지는 미궁속으로...)때였지만 인원수가 안맞으니 제발 같이 가달라는 친구의 말을 뿌리치지 못하고(플러스 한스푼의 호기심으로) 미팅에 참석했다.
회사도 아니고, 미팅이라고 하니 당혹스럽지만 달리 표현할만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다. (...)
커플인 친구가 주선하는 남3 여3 미팅을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하기로했었다.
지금 생각했을때 도대체 왜 여기서 한거지? 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사진첨부를 해보려고 구글링을 했더니....
05학번이즈 백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영상이 있었다. 참고로 나는 06학번이다. ^^ 아 나만의 기억이 아니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두의 기억이기에 여기 이런 영상이 제작되었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왠지 창피한건 무엇일까)
https://youtu.be/s9X1ZNEReFc?si=pxNxIy53Pff3Hq4P
그래도 남자사람 이성을 만나러 간다고 하는데 츄리닝을 입고갈 수는 없는 노릇인데 나는 딱히 데이트룩이라고 할만한 옷을 지니고 있지 않았었다. (뭔가 엄마따라 가서 사는 느낌의 옷만 살 수 있었음. 보수적인 부모님)
교실에서 심각하게 고민중인데 친구들이 방과후에 미팅에 입고갈 옷을 사자고 하여
이대와 명동을 돌면서 (요즘은 뭔가 패션스트릿 느낌이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그때는 ^^) 아래는 부츠컷 청바지 위에는 짧은 민소매의 딱붙는 티를 샀다.
아이쇼핑 시간이 길어져서 신발 살 시간이 모자란 .....
하지만 친구들은 모두 집에 하이힐이 있다고 했다.(이럴수가) 나도 꼭 사야하나? 굳이 ... 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왔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초조했다.(ㅎㅎㅎㅎㅎ)
옷은 집에 고이고이 숨겨놨다가 부모님이 안계실때 옷을 갈아입고 몰래 미팅장소로 향했다.
(결국 나중에는 부모님에게 들켜서 이실직고하였고, 이후에는 엄마가 좀 더 성숙한 스타일의 옷을 함께 구매하는 것으로 긍정적 결과를 맞이했다.ㅎㅎㅎㅎㅎ)
운동화를 신고 뛰어가다가 수많은 고민끝에 난생처음 아주 급하게 동네 구두 가게에서 하이힐을 구매했다.
수백번 고민하다가 처음 산 신발이라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금색 빛이 도는 4~5m 정도의 뒤가 막혀있지 않은 하이힐이였다.
처음 신다보니 발이 아파 죽는줄 알았다.
지하철 승강장 사이에 발이 끼는거 아닌가 내가 계단에서 구르는거 아닌가
각종 불안덩어리를 등에 매고 .............. 약속장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이힐 신고 순대타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뭔가 얼굴이 없어지는 기분이 드는 기억이지만,
하이힐에 대한 첫기억은 여기서 끝
이후에는 종종 하이힐을 신었고, 키가 170대가 되는 효과와 뭔가 다리가 길어보이는 매직에 취해
생각보다 자주 신었다. 그리고 자꾸 신다보면 적응이 되어서 하이힐 신고 계주도 가능하다. ㅋㅋㅋㅋ
위에서 말했던 것 처럼,
'나 오늘 예쁘다'를 주장하고 싶으면 '미니스커트 입고 하이힐 한번 신어줘야지?'란 말을 인출하던 구시대 여자였기 때문에 20살에 첫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당연히 하이힐을 매번 신고다녔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잘해줘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첫 남자친구에게 정말 못해주었던 것 같아서
참으로 미안하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아니라 각종 연애 프로에서 나오는 팁 혹은 또래 친구들의 말에 의지해서 행동을 계산하던 때였다.
다시말해, 남자친구라면 이래야지! 라는 틀을 나혼자 만들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넌 날 덜 사랑하나보지?라고 짜증을 내던 정말 못난이ㅠ_ㅠ 상태였다.
그날은, 수업이 끝나고 남자친구와 만나려고 하이힐을 신고왔는데 옆 대학 축제에 걸어가자고 해서
갑자기 화가 너무 났다.
"넌 내가 하이힐 신은거 안보여? 생각이 있는거야?"라고 쏴붙이면서
너혼자가라고 씩씩대며 계단을 마구 올라갔다.
당시 남자친구는 허겁지겁 나를 쫓아와서 미안하다고 생각이 짧았다고 거의 빌다시피했는데,
정말이지 .........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지,
내가 예뻐보이고, 내가 대접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서로 존중하는 것과 일방적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은 차이가 큰 것 아닌가?
상대방을 사랑해서 아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커플 흉내를 내고 남들 다 하는거 해보고 싶은 호기심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없는 행동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힐에 내 못난 자존심이 한움큼 붙어버렸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내 물건과 내 자존심을 아끼고 있었다.
하이힐은 은근히 굽이 잘 부러진다.(혹은 내가 하도 뛰어다니고 덤벙거려서인지도 ^^)
나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였다. 동아리실에서 가을 연주회 합주 연습이 끝나고 기숙사 문닫는 시간(이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벌점을 받는다!!)이 되기 전에 동아리 친구들이 다같이 부랴부랴 기숙사 쪽으로 걷고 있었다.
(tmi :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 클래식 기타 동아리가 동아리 가입 희망 목록에 있기는 했지만 원래 1순위로 가려고 했던 곳은 '얼네'라는 대학교 연극 동아리였다. 1순위였던 이유는 고등학교때 미션스쿨을 다녀서 성극반 동아리 활동을 1학년 때 잠깐했었는데 부모님의 반대와 학업을 이유(핑계?)로 그만둔 것이 아쉬웠었다. 뭔가 나도 제대로 연극반 활동을 하고, 배우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미련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기타 동아리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그것을 '절대적 약속'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오디션 시간이 겹쳐서 얼네로 간다고 하니 대성통곡...이 있었다. 내가 대답을 한것은 맞긴 했기에 결국 기타 동아리에 함께 들어가서... 당혹스럽게 가입했지만 동아리 활동은 정말정말 좋았다. 그래서 어쨌든 해피엔딩)
봄과 여름의 사이쯤 되는 후덥지근한듯 하지만, 밤바람이 선선한 날이었다.
아뿔싸
같이 발맞추어 걷고있는데 내가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동아리 동기들이 "왜 안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 야 ㅠㅠㅠㅠㅠ 나 갈수가 없어"
동기 한명이 날 부축해주고 다른 한명이 도로에 낀 내 하이힐을 뽑았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뽑으면서 박장대소 한것은 덤
친구는 고맙게도
"어깨동무하고 갈래? 그럼 티가 덜나지않겠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라고 말했다.
음 어두우니 안보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뒷굽없이 앞으로만 딛으면서 열심히 걸어서 기숙사 도착^^ 하 힘들었다..............
'여성성'의 강조보다 '나답고 자연스러운 것'
생각해보니 하이힐과 함께한 모든 기억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의 모습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40이 다되어가는데도 아직 '나다움'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만 알겠다.
창피한 기억들과 함께인 물건이기는 하지만
마치 보석의 반짝거림에 저절로 눈이 가듯이, 예쁜 하이힐을 다시 한번 신고 싶기도 하다.
아마, '더 예쁜 나라는 환상'을 사고싶은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즘은 '나다운 나를 잘 알고 있는 멋있는 나'라는 환상을 추가하기 위한 패션이 유행하는 걸까?
삶에서 어쩌면 물건이라는 것이
정말 필수적인 것들은 몇 안되는데, 나에게도 세상에도 물건이 넘쳐난다.
쇼핑이라는 것 자체가 모두 환상추구 및 이미지 게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다움'에 대해 좀 더 고민이 깊어지는 밤
하이힐에 붙은 기억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