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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몬 Sep 18. 2024

새벽 6시, 첫 차를 타야 해.

지하철 첫 차


새벽 공기가 아직 서늘하다.

우리 집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하얀 털을 숨소리에 보송보송하게

흩날리고 있는, 강아지만 있다.

강아지가 잘 자고 있는지 눈으로

여러 번, 확인한다.


확인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가 실제로 없는 것이 될까 두렵다.


푸르스름하게 반쯤 내비치는 창살 아래로

햇빛이 반틈만 고개를 내민다.


누군가 잘 지나다니지도 않지만,

동네 사람인 듯 한 발걸음과 다리가 반쯤 보인다.


지하에서 계단을 올라,

사람의 흔적이 아직은 잘 느껴지지 않는 곳,

긴 골목길을 걷는다.


북적이는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가

수많은 사람들 틈에 치이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 싶다.


바쁘게 첫 전철을 타고

과자로 아침을 때운다.

북적대지만 고요한 아침을 뚫고

달리는 전철 안에 겨우 발을 디뎠다.

슬픔도 기쁨도

바쁨 아래, 철길로 밟힌다.


지하에 있던 나와

정동길 분수대 앞에서 단정한 척 미소 짓는 내가

이질감이 느껴져 소스라 친다.


진짜 나는 첫차에 짓밟혀 버리고

진짜이고픈 나라는 역에 도착해

하루가 시작된다.





어머니는 대부분 나보다 집을 먼저 나서서

첫 전철을 타고 출근하셨고,

아버지는 자차로 어딘가로 일하러 가셨다.


소란스러운 알람을 뒤로하고 일어나 보면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깨워주는 일 없이 등교하는 것이 익숙했지만, 일어나도 못 일어난 것처럼

뒤척이거나 외면해 버리는 날들엔 지각이라는 단어가 생활기록부에 찍혔다.


고등학교 때 우리 동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서, 지하철로 60분 거리의 사립학교에 선지원 하여 다녔다.


진짜 첫차는 어머니가 타고 가셨고, 실제로 나는 두 번째 차 혹은 첫 급행차 정도를 타고 등교했다.


처음 등교할 때는 첫 차에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다닌다.

다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그 시각 전철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정이 희미했다.

내 마음이 뿌옇던 때라

그렇게 기억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아침까지 안 먹고 학교 가기 억울했지만, 집에서 차려먹고 가기 귀찮고 싫었다.

열량이 높으니까 아침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다이제스트라는 과자를 반쯤 까먹거나

시청역 앞 편의점에서 군것질 거리를 한 개쯤

사서 욱여넣고 돌담길을 경보하듯 걸어갔다.


좋은 직장들도 많고 유명한 곳도 많아서일까,

나의 편견일까.

아침의 그 길 위에는 참 괜찮아 보이는, 반짝이는 눈빛을 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어두운 내 마음의 그림자는 아까 먹은 군것질 거리에 넣어버리고 덕수궁 앞 돌담길을 걷다 보면,

외면해 버린 내 우울함, 복잡스러운 나의 삶, 나의 가정은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간접경험과 직접경험, 그리고
그 모두에 존재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 글쓰기.
나 자신이 되겠다는, 가장 강력한 행동.
새벽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불안, 우울, 불행의 그림자가 유독 짙은 시간에, 그 모든 감정을 글에 수납한다.

울고 싶지 않아도 울 수 있는 재주.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는 법을 배우거나 울지 않는 법을 배우고,
어떤 기분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잊어가면서 매일을 잘도 흘려보낸다.
남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괜찮은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믿어버린다.
 
리쿠가 부모 곁에서 멀어져 있는 동안,
리쿠가 그동안 두르고 살아왔던
삶의 태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가 더 명확해지고,
리쿠는 뒤늦게 진짜 감정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의 삶으로부터 거리 두기에 실패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진짜 나의 것이 되어 버린다.

- 이다혜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에서





진짜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도망 다녔던 것 같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자판 위의 손가락이 떨리는 게 아닐까 순간순간 의심될 정도로.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20년 가까운 자의 반 타의 반 타향살이, 내 진심을 외면하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어린 시절의

20년을 마주해 볼 실마리라도 생긴 것이 조금은 다행인 것 같다.


부패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남들에게 보여줄 문 앞만 청소한다면

어차피 다시 부패하는 것은, 순간일지 모른다.

유리조각처럼 널려있던 마음의 부스러기들은 이제 새벽의 글 속에 수납하려 한다.


자신의 진짜 삶과 상황, 무엇인가의 진실에서 도망 다니며 혼란스러움이나 양심의 가책, 죄책감 등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을 탓하거나 더 나아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는 그날이 오면, 혹은 마음의 힘이 강해지는 그날이 오면.

결국은 그런 날들이 당신에게 올 것이고,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

강제적 미라클 모닝일지라도 당신에게 기적을 선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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