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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몬 Sep 20. 2024

오후 2시, 저에게 아는 척은 하지 마세요.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따끈한 햇빛이 두 동공을 찔렀다. 


이성적인 척 따스한 미소로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푸릇푸릇한 만 원권 지폐가 사정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다음 말을 이어나갈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가까스로 탈출했다. 


원치 않는 배려에 얻어맞은 마음은 뒤로 하고

원치 않는 가시 돋친 말로 

엄마에게 상처 주었다. 


나쁜 년 역할 하나 제대로 감당하지 않을 거면서,

눈앞의 이익이나 챙길걸 그랬나. 혼잣말이 씁쓸한 한숨이 된다. 

알량한 자존심과 착한 척하는 비겁함으로 어떤 인간도 되지 못하였다.  


그날의 병동 앞은, 

집어삼킬 수 없는 뙤약볕

착한 척도 나쁜 척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기다리다가  

비틀어져 눌어붙은 내 분노와 슬픔이 

아스팔트에 위에 붙어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회사에서 제일 빠른 조퇴를 했다던 엄마를 원망하며 분노랑 싸워야 할지

눈물이랑 싸워야 할지 내 미성숙함이랑 싸워야 할지 우유부단한 핑곗거리나 찾고 있는 와중에


병동 안으로 사라져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당신은,

원치 않는 친절을 베풀며 환자실 앞에서 물품들을 챙겨주는 사람, 

그런데, 누구세요. 








이런 씨발 빌어먹을,

병동 앞에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니 사람들이 흘긋 쳐다본다. 


19살의 마지막은 대학 합격에 기뻐할 틈도 없이, 

타인 앞에서 괜찮은 척하기에 질리거나 멱살 잡히기 직전이었다. 


심장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숨이 쉬어지지 않고, 위험한 상황이 와서 병원의 응급 처치로 의식을 찾은 후 검진을 받으셨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조영제 부작용으로 쇼크가 오는 환자가 드물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심장의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투여한 조영제 약물 쇼크로 인해 중환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시작한 검진이 아버지를 진짜 중환자가 되게 해 버렸다. 


학교에 있다가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급하게 조퇴하여 병원으로 갔다. 


중환자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다 보니 고모, 오빠들, 삼촌 등 하나둘 씩 사람들이 대기실 앞에 모였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해주시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이가 어려 별 권한이 없던 나는 어른들이 의사와 나누는 대화를 엿듣기 바빴다. 


색안경을 쓴 것도 아닌데 병실 앞 풍경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나서 그랬는지 그냥 그 당시 기억이 훼손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오열하며 쓰러지는 친척들 틈 사이로,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엄마가 참으로 답답했다. 


며칠 동안 대기하고 잠도 못 자고 소파에서 구겨져 자던 사람은 엄마인데,

누가 누가 더 슬프나 내기하는 것 같아서 우습게도 쓴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너머로 드라마에서나 듣던 띠띠띠 소리와 함께 호흡기에 의지한 아빠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눈물을 삼켜 더 이상 삼킬 만한 것도 없다 싶은 순간쯤 되었다.

수술이 끝난 듯한 담당 의사가 기쁜 얼굴로 나왔다. 의사가 입을 떼기 전, 이미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고, 점차 회복하셨다. 가톨릭 병원에 수녀님들이 요즘보다 많이 계실 때였다. 

모두 인간적인 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고, 환자 가족인 우리와 아버지를 케어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다. 


더 바랄 것이 없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조금 더 일찍 도착한 어느 날. 아직은 혼자 전화하고 문자 하기 힘드셨던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냥 기분이 거지 같았다. 아버지가 편찮으신데 확인되지 않은 의구심으로 인해 

이런 기분이 드는 내가 나쁜 년 같아서 짜증이 올라왔다. 

부탁받은 대로 병원과 호실, 필요한 물품들을 말해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지 모르지만 묘하게 기억나는 듯한 어떤 여성분이 오셨다. 

한참 친근하게 대화하고, 물건을 챙겨주고 하는 동안 

병원 공용 대기실 창가 앞을 서성거리며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병실을 나서면서 그 여성분이 나에게 꽤 많아 보이는 만 원짜리 한 묶음을 용돈으로 주셨다.

솔직히 직감적인 의구심 이외에 그분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 돈이 내쪽으로 향하는 순간 역겨움이 시야를 가렸다. 


돈도, 화장품도 받지 않았다. 

최대한 우연히 거절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어째서일까. 


그 여자분의 얼굴과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의 얼굴과, 

내가 자는 줄로만 철석같이 믿고 수화기 너머로 싸우는 어머니의 얼굴과, 

우리 집 거실 중앙에 놓여있던 커다란 괘종시계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하나로 겹쳐졌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냥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알 듯 말 듯 한 그 기묘한 기분이 거지 같았다.


헌데 우습게도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아버지 많이 힘드셨죠, 제가 곁에 있을게요. 외로워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왜지. 그냥 그러고 싶다. 


어머니에게도 난 항상 엄마 편이야.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난 엄마를 믿어.라고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그나마, 임종을 지킬 수 있었던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정말 저에게 좋은 아버지였어요."라고 말씀드렸다는 게 

그나마 나 스스로에 대한 먼지만큼의 면죄부이다.


그저 좋은 말 나부랭이는 아니었고, 지금 쓴 이 일들도 약 20년 전 이야기에 가깝다 보니 

생각이 참 많이 변해서, 진심이 된 말이었다. 그래도 슬프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이라고 규정된 것들에, 나서서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그저 시간이 흘러보니, 그리고 작년에 아버지가 더 많은 고생 끝에 먼저 하늘에 가시고 나니 

그냥 그 거지 같다고 여겼던 순간마저 그리운 건 내 사고회로가 녹슨 탓일까?







"가장 위험한 실수는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남들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분쟁의 근원이다."
- 칼 융


아주 어린 시절의 연애 때는, 상대방이 다른 이성과 눈만 마주쳐도 심장이 면도날에 베이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상대방에게 그림자를 씌우는 줄 몰랐다. 

싸우다가 뒷모습을 보이면, 버려지는 기분이었다. 

칼 융의 말대로 내 그림자를 남들에게 씌운 것이었다. 

한 때는 내면의 그림자를 상대방에게 자주 투영했는데, 점점 투영하는 정도가 줄어갔다. 

가끔 불안해진다면, 스위치를 끄려고 노력하고 대체로 먹히는 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을 '부조리함'에 두지 말고 부조리의 두꺼운 천장을 뚫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겠다는 전의다. 그 누구도 날 인정해 줄 필요 없다. 그 어떤 부조리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내가 죽는 순간 스스로 삶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 또 충분하다. 놀라운 사실은 자신만의 해답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극복하니 이게 부조리한 삶에 대한 가장 명쾌한 답이 아닐까?
 고윤,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삶의 순간순간, 피 튀기듯 전쟁 같은 감정이 여기저기 튀는 날도 많았지만 

머쓱하게도, 나는 현재, 그리고 과거의 하루가 모인 기억이 소중하고 좋다. 



"마법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로버트 달은 우리에게 꿈을 꾸고, 그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꿈을 꾸는 삶을 지향하자. 도전과 모험의 기회를 받아들이자. 꿈이 없는 삶은 정체된 삶이며,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전진해야 하며 낙관적인 마인드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한계를 돌파하는 인생은 여기서 탄생하게 된다. 
- 고윤,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부모님도 한 개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에서 내가 원망하거나 분노를 끌고 다니거나 기타 등등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각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감정의 포기나 옳음을 지향하는 것에 대한 포기는 아닌데.

막상 표현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다양한 일들을 나름대로 겪고, 시간들이 흘러가보니.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재단하기 이전에, 그냥 그때 조금 더 젊은 날의 분노와, 슬픔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햇살 앞에, 무력해지는 것 같다. 


용서나 사랑이 옳지 않은 것에 향한다면 무력해서 비겁하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냥 내 상처를 옳음이라는 칼로 방어하며 스스로를 수용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말하고 싶다.

고생 많았어, 이제 그만 그때의 너와 화해하렴. 충분히 최선을 다했어. 

(솔직히 아직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타자 치는 내 손목을 잡아끄는 기분이지만.)


읽으면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공감의 울림이 있어 조금은 상처가 옅어지기를. 


 "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사는 것이 초콜릿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이요."
-로알드 달 


기도하는 수달이
행복해져라 주문 중. 기도는 저처럼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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