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출산 그리고 의식과 힘겨루기
숨소리, 100dB.
나 혼자 가짜인, 꿈속의 장면에 떨어진 것 같다.
시간과 상관없이 눈 감기가 무섭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내 숨소리가 끊어질까 봐.
희미한 간접등 사이로 내려와 있는 빛.
두 눈에 비친다.
바쁘거나, 지나치게 바쁘지 않거나의 사람들
답답한 숨 속, 조금이라도 숨을 더 내뱉으면 호흡기의 풍선이 펑하고 터질 것 같다.
관종이었나, 제발 나부터 아는 척해주길.
눈앞의 저 사람들이 조금은 걱정되지만, 그래도 나부터 아는 척 좀 해주세요.
'괜찮아요, 지금 좋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윙윙거리며 귀에 희미하게 꽂힌다.
겨우 겨우 기억을 진짜 꿈으로 가져간다.
밤이 내린다.
아이를 출산할 때 초산임에도 지나치게 빨리 출산하게 되어서인지, 병원 측의 의료과실인지 알 수 없지만
좌우지간 급속분만으로 인한 과다출혈이라는 이름표 아래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빨리 출산하고, 멀쩡해서 병원 측의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았는데.
뭔가 이상함이 느껴져서 간호사와 의사를 찾는 순간
내 의식은 점점 희미하게 느껴지고
뭔가 졸리지 않은데 지나치게 졸리게 느껴지면서
사색이 되는 간호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서울대병원과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서울대 병원과 상당히 가까운 편) 담당 의사의 판단에 따라 난생처음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괜찮을 거라는 남편의 말이 전혀 믿어지지 않고
누구는 이런 상황에서 지나간 일이 떠오르고 블라블라 하더니만 나는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다. 다른 생각이 껴들 틈도 없더구먼.
평소 나일론 신자처럼 다니던 교회의 주기도문부터 시작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오로지 내가 의식을 잃지 않는 것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이 기계에 들어갔었는데 정말 답답했다. 힘든데 숨까지 참으라고 하니 죽을노릇이었다.
숨 잠깐 참으세요(이런 말도 굉장히 멀리서 말하는 걸로 들렸다. )
근데 정말 숨을 참으면서 숨이 멎어버릴 거 같았지만 겨우 참았다.
중환자실에 실려가 호흡기 끼고 있으면서 시력은 있으니 주변을 살짝 보았는데, 정말 모든 사람이 눈도 못 뜨고 누워있었다. 뭔가 숨쉬기도 상당히 어려웠는데 간호사를 부르려면 손가락에 아주 약간만 힘을 주면 간호사를 부를 수 있었다. (톡톡)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떠져서 시계를 보면 시간이 중구난방이었다.
그런데 나보다도 더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제발 내가 어떻게 되나 안 되나 관심 좀 가져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좀 황당한(내 입장에서 그랬다는 거지 의식 확인을 위해서 필요하긴 한 듯) 것은
수술대 위에서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시때때로 내 정신머리를 확인했다.
"코끼리가 나뭇잎을 타고 잘 갈 수 있죠?"
"우산을 신발에 신을 수 있나요?"
"2+2는 6이죠?"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저런 느낌의 황당한 질문을 한다. 앞뒤가 안 맞는 질문들.
거의 죽을 듯 힘든데 그 와중에 되게 웃겼던 것 같다. 아마 의식이 제대로 있나 없나 확인하시는 거 같다.
뭐래는 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내적 웃음.(중환자가 할 생각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웃겼음)
색전술이라고, 과다출혈이 일어난 혈관을 찾아 꿰매는 듯한 수술이 진행되었는데 아마 상당히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희미하게 보이는 마지막 시력으로 사투를 다해 쳐다보니, 의사 선생님들이 땀범벅이 된 채로 바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수술 중이었다. 상당히 여러 명이 있었는데, 정말 다들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됐어요!"라고 어렴풋하게 말한듯하다. 그래도 아직까지 뭔가 긴장이 감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어떤 의사 선생님 중 한 분이 내 머리카락(긴 머리였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을 누워있는 침대에서 옆으로 넘기려고 하시는데 내가 "아프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거의 손뼉 치는 분위기) "이제 됐다, 됐어!"라고 말하면서 좀 정신이 드냐고 말하면서, 좀 어떠냐, 이러셔서 뭔가 그 상황에서 황당하게도
농담 비슷한 것을 건넸던 것 같다.(너무 걱정하는 것처럼 보여서 안쓰러웠다. 누가 누굴 생각하니)
그랬더니 뭔가 의사 선생님들이 다 기쁘게 웃으면서 의식이 돌아왔다고 잘되었다고 좋아하셨다.
가끔 뭐 의사 선생님들이 대충 진료한다, 마음 없이 그냥 돈만 번다 이런 얘기도 꽤나 많은데
개인적으로 골골대는 스타일로 중환자실까지 방문(안 해도 될 방문이었는데 씁쓸하긴 하지만)해본 결과는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아직까지 다 상당히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력을 다해 일하시는 분만 만났다.
어렸을 때도 아파서 자주 기절하고 병원에서도 의식과 힘겨루기 하고 별 난리를 다해본 입장으로서는
이상하게도 그냥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생은 감사한 일이다.
나 때문에 땀 흘리고 놀라고 걱정하고 사투를 벌여서 수술해 준 의사 선생님들도
찡찡거리며 제발 나부터 봐달라고 자꾸 불러댈 때마다 친절하게 와서 도와준 간호사 선생님들도
아플 때 걱정해 준 가족들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생에 발 디딜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루하루 열받는 일과 어이없는 일이 눈덩이처럼 굴러와서 지치고 짜증 나고 관두고 싶은 날도 부지기수임은 틀림없는데, 그래도 사는 건 즐거운 거다.
열받아도 잠깐 나가서 햇살 아래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 좋잖아.
맛있는 것 참을 수 없지.
아마 나는 개복치 유리멘털이라도 단순해서 지금까지 그냥저냥 잘 지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좀 편하게 살고싶다. 얼떨결에 성공하고 싶구나. 허허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