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멘탈이지만 원영적 사고
마음속에 '이런 건 글로 쓸 수 없어'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바로 그것이 여러분이 지금 바로 써야 하는 가장 소중한 테마예요.
가장 강력한 트라우마가 가장 강력한 예술적 승화의 에너지를 품고 있어요.
그래서 상처 많은 사람은 힘든 일상을 살 수 밖에 없지만, 글쓰기라는 차원에서 보면 상처 많은 사람이야말로 엄청나게 많은 내적 자산을 지닌 사람이기도 해요.
고립된 고통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 하지만 고통을 누군가와 교감하면 고통마저 기쁨이 될 수 있어요.
'아, 누군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내가 저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아'라는 그 느낌이 결국에는 기쁨이 되는 거죠. 원래 처음시작할 때는 고통이었는데, 그 고통에 대해서 글을 쓰니까 누군가와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 중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진실을 외치고 싶은데,
진실을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허용되지 않았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이었다.
엄마는 내가 사람들을 지나치게 믿거나, 지나치게 솔직한 것을 늘 걱정하셨다.
집이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다고 말하기를 바라셨고,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셔도 내가 이유를 모르기를 바라셨다.
상황이 어려워져도 그냥 모른 척 덮어두는 것을 택했다.
사회생활을 나름대로 10년이상 해보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 보니,
엄마가 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에게 조언하셨는지 어렴풋이는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결국 청개구리인지 엄마 말을 듣지 않은 채로
누군가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고, 여전히 지나치게 금방 믿는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다녀서 나에게 그것이 화살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존재하지만
그조차 내가 '나'로 솔직하게 살고 싶은 욕망보다는 적다.
각자의 삶은 각자에게 상영되는 하나의 영화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열심히 살면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면서 엔딩 크레딧까지 가는 것이고, 결국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그리고,
'별로라고 욕한다면, 그 순간보다 노력해서 더 나은 내가 되면 되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도 좌절도 어려움도 결국은 누군가의 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좌절이나 어려움도 한 사람의 삶 속에는 한 단면일 뿐이고,
누가 언제 어떻게 더 멋지게, 부유하게, 성숙하게 변할지는 확실한 예측이 어렵다.
지금 현재 우러러봐야 하는 그 누군가도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확실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다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현재 위치나 상황과 상관 없이 그 사람의 마인드가 어떤지에 따라 언젠가의 앞날을 조금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믿을 뿐.
이런걸 글로 써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정여울 작가의 글을 보고 조금은 용기를 가지고 써보고자 한다.
내가 나로 살아가고 싶어서 털어놓는 대나무 숲
그리고 에피소드를 이어나가는 중에는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은 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하고, 조금 더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나랑 비슷한 이사람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항상 "또 우냐"라고 할만큼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특정인들) 눈물바다로 지낸 날들이 많았다.
그리고 누가 생각해도 좀 슬플 것 같은 일들 혹은 충격적인 일들이 많았던 것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릴때는 냉소주의를 방패삼아 세상과 사람을 경멸하면서 내 생각의 껍질 안에 숨어서 산 적도 있었다.
정말 눈물콧물 마를 새 없이 다양한 좌절스러운 일들 속에서
오늘 넘어지고
내일 일어나고를 반복해온 삶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자주 상처받고 충격받고 열받고, 감정이 세계 3대 놀이기구 뺨치는 롤러코스터 위에 올라타있는데
어떻게 할일을 제대로 하겠어? 라고 스스로도 생각했었지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노력하니까
롤러코스터에서 어린이 기차 수준으로 변하기는 하는 것 같다. (이런 걸로 뿌듯하기 있기?)
은근히 할 일도 꾸준히 해 나갔다. (나 혼자 뿌듯하기)
한때 살아남아라! 개복치! 라는 아래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라떼는 시절, 좀 몇년 된 것 같다.)
실제로는 개복치가 이정도로 예민하진 않다고 하는데, 게임이 유행하는 바람에 개복치가 유리멘탈의 대명사처럼 쓰여져서 검색하면 유리멘탈 개복치라는 문구를 사용한 글도 많았다.
착수 시의 충격으로 죽음, 오징어 좋아하지만 많이 먹어 죽음, 비닐봉투가 해파리라 놀라서 죽음 등등...
엄청나게 예민하지만 금방 회복하는 게임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스스로 생각할 때 거의 게임 속 개복치 급으로(엄청 자주 좌절하지만 그래도 렙업중)
열심히 사는 중인 것 같다. (나자신 칭찬해)
엉망진창 좌충우돌 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내 삶을, 내가 해온 것들을, 내가 바라는 것들을 오롯이 솔직하게 좋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