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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쏭 Mar 01. 2023

한국 것을 사랑해 하지만 한국에 살고 싶지 않아

이방인 라이프


영국에 처음 온 때가 2018년 3월이었고, 한 달이 지난 4월에 나에게 아주 좋은 영국인 친구가 생겼다. 이 영국인 친구는 당시 내가 살던 플랏의 플랏메이트들 중의 한 명이 언어 교환하면서 사귄 친구였는데, 플랏메이트가 한국에 돌아갈 때쯤에 내가 용기 내서 이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워홀 초반에 친해진 만큼 나의 찌질하던 모습을 많이 본 친구이다. 찌질하던 시절과 코로나 시국을 영국에서 함께 보낸 친구였고, 많은 부분에서 영국에서의 나의 삶을 서포트해 주던 친구였다.


친구는 2021년에 영국을 떠나 한국으로 이주했다. 영어 선생님으로 비자를 받아서 한국에 정착을 했고, 최근에 더 좋은 근무 환경으로 이직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 친구가 부탁하거나 내가 원하면 영국에서 택배를 보내주곤 한다. 이번에 친구 부모님이 친구한테 매트리스 토퍼 택배 보내신다고 해서 도와드리다가, 나도 오래간만에 과자를 보내줘야겠다 생각했다. 친구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니 친구는 딱 두 가지를 말했다. 워커스 치즈 어니언 맛 칩스, 그리고 Baked beans. 워커스 칩스는 워낙 나도 좋아라 하지만, Bakes beans는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맛이었다. 아무리 한국과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여도 Baked beans를 찾는 것을 보아하니 어릴 적 먹던 입맛은 어딜가지 않는구나 싶었다.


정확히 반대로 한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나는, 한동안 한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그다지 없다. 한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영국에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현재 나는 직장에서 한국인들과 일하며, 한국 교회를 다니고, 한국인 남자친구, 한국인 친구들과 놀고, 한국 음식을 주로 먹고 있다. 책을 읽어도 한글 책이 더 재밌고, 글을 써도 한글로 쓰는 글이 더 맛깔나고, 유튜브를 봐도 한국 유튜브가 훨씬 재밌다. 한국의 것을 이토록 좋아하면서도 한국에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참 웃기고 나 스스로 봐도 한국 사회 부적응자 같다고 느껴진다.


내가 말하고 내가 쓰는 나의 일상 이외에도 숨기고 싶은 일상도 많이 있다. 어디선가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들도 많다. 심지어 그런 순간들은 거의 매일 존재해 있다. 렌트비와 생활비뿐만 아니라 때에 맞춰 비자 신청도 해야 하고 이에 따른 비용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살고 싶은 이유는?


단정 지어 말하기는 참 어렵지만 몇 가지 확실한 이유는 있다. 현재로서는 한동안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들보다는 영국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다. 지금의 삶의 터전이 이곳에 있다. 신앙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타지 생활을 하면서 더 견고해지고 있다.


이번에 비자 연장을 신청했는데 아직 정부에서 나오는 비자 신청 번호를 할당받지 못했다. 문제는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제 한 달 후면 현재 비자가 만료된다. 비자 신청만 들어가면 문제는 없다고 변호사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사람일은 늘 불확실한 것 같다. 나의 마음은 영국에 살기로 결정했지만, 언제든지 하나님이 다시금 다른 곳으로 부르신다면 그게 한국이든 어디든 가야 하지 않을까. 비자는 당연히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모르게 약간은 떨리는 마음이 들었다.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현재는 신청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다음 주에 비자센터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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