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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쏭 Apr 01. 2023

파리에서 쓰는 일기 (1)

여행의 묘미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니까요. “ (빨강머리 앤)


오랜 시간 고대했던 파리 여행을 일박 이일로 혼자 가게 되었다.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서 일곱 시 출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너무 피곤한 나머지 곧장 잠들어 버려서 비행기가 40분이나 넘게 지연된지도 모른 채 파리에 도착했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는 공항버스인 루아시 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버스 타는 곳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RER이라고 하는 지하철을 탔다. 요즘 영국은 여기저기서 파업이 한창인데, 파리 역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파업뿐만 아니라 시위로 위험하다는 소식도 들었기에 여행을 계획대로 가도 될지 마지막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숙소가 취소/환불 불가 규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지만 오히려 좋아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파리로 가는 지하철에서 낯선 비즈니스 맨과 어색하게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앉아서 가고 있었다. 자칭 파리지앵 분이 내 옆자리에 앉으셨는데,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맨에게 파리 대중교통 스트라이크 어쩌고 저쩌고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러키라고 여러 번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이 자칭 파리지앵 분은 지하철 같은 칸 이쪽저쪽에 있는 파리지앵들을 발견하시더니 프랑스어로 파리의 대중교통 상황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했다. 신기했다. 단순히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다짜고짜 스몰토크가 가능하단 말인가. 엠비티아이는 분명 대문자 E로 추정된다.


새벽 네시에 집을 나서서 비행기를 타고 지하철까지 타니 사실 몸이 너무나 피곤했다. 아침 열 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하루의 반나절이 지난 느낌이었다. 엑셀에 빡빡하게 파리 여행 일박 이일 일정을 정해서 왔는데, 시내에 도착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질 것 같아서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RER 지하철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점점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점심으로는 Le Relais De L'Entrecôte에 가서 스테이크를 먹어야겠다. 결론적으로는 낮 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어 숙소 체크인을 하고서는 낮잠을 한 시간 잤다. 이번 일주일 중 가장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3월 초의 나는 나 스스로 많은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시험을 패스해야만 했고, 취업 비자 연장이 무사히 마무리되어야 했고, 마지막 파리 여행까지 멋지게 완성해야만 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3월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어간다는 건 인간적으로는 좋은 일일지 몰라도 과연 무엇이 진정한 은혜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은혜는 오로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은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세상적인 기준으로 ‘일이 잘 풀린다’ 정도로 은혜를 그렇게 값싸게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 가까이해야 만한다는 일종의 빨간 불 같은 신호가 켜진 것 같다. ‘하나님 제 계획대로 다 되니까 이제는 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어요’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감사가 아니라 오히려 멸망일지도 모른다.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 같은 하나님이 아니시니깐 말이다.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것을 내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어떠한 일도 다 감사한 것이니까..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여행이기에 오히려 여행의 묘미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인생 역시도 가끔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 안에 내 인생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이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믿으면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히스로 공항에서 출발하면서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찬양을 들었다. 이 일기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찬양을 묵상해 보았다. 나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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