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때로는 솔직함으로 다가가야 할 때가 있다. 나의 마음이 아플지라도 차라리 누군가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어떠한 설명이 필요할 때, 겉핥기식의 어쭙잖은 핑계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고 진솔한 이유가 더 와닿곤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솔직함은 중요하다. 하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느냐 나아가지 않느냐를 통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종인지 자녀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 자녀로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알아가는 것에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종은 실수하면 주인이 처벌할 수 있겠지만, 자녀는 실수하면 용서받고 용납된다. 자녀의 어떠한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여전히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수련회에 은혜받고 난 이후로 허리가 너무 아파서 영적인 생활을 게을리했다. 큐티는 소홀한 지 오래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예배들도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로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팠지만 이후에는 핑계였다.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수련회 때 한 가지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놓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나의 수많은 인격적인 연약함과 부족함에 대해서 나 스스로 정말 잘 알고 있다. 나 스스로가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의인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그 원죄라는 것이 나의 죄이며, 윤리적으로 죄를 짓는 죄인들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어떠한 부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이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인데 말이다. 복음을 다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넘어지고 부서진다.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부분에서 내가 '죄'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내가 오기를 부리며 하나님을 피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은 다 아신다. 죄인임을 알면서도 죄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 역시도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신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재촉하는 나와 달리, 하나님은 그렇게 끝까지 사랑하시고 기다리시는 분이다. 이 시간을 견디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질 거라고 믿기에 언제나처럼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