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배 가야지”
누우면 곧장 잠드는 3초 수면인 나는 비행기에서도 곧잘 잔다. 한국 왕복이 12시간이라면 먹고 자고 반복으로 거뜬히 보낼 수 있는 게 나다. 시험 전이라든지, 어쩌다 정말 말하지 못할 심각한 걱정이 있다던지, 시차적응을 제외하고는 잠 못 드는 밤이 손에 꼽힌다.
비행기는 늘 설레지만 더군다나 한국이라니 얼마나 고대해 오던 여행인가. 비행기에 타서 영화 보고 저녁 먹고 자려고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설렘과 동시에 긴장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내가 떠나 온 “또 다른 현실”이기도 했다.
한국에 오기 전 꿈을 꿨다. 한국에서 친구랑 버스를 통로 자리에 각자 앉았는데 앞자리에서 누가 나를 뒤돌아보더니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선명하게 세 번이나 불렀다. 우리 할머니였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 할머니 건강하시느냐 물었는데 최근에 치매 증상이 심해지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치매가 있으셨던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마음이 아팠다. 가족들은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픈 소식들은 뒤늦게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 우리 할머니가 치매라니.. 충격이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2021년 가을 한국에 방문했을 때 가족들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근처 지역에 바람 쐬러 간 적이 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할머니가 80대가 되니 다리도 아프고 걷기도 힘들다고 하셨다. 70대 때까지만 해도 날아다녔다고 경쾌하게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이직도 생생하다.
할머니가 요양원을 매일 출근(?)하셔서 저녁에 잠깐 할머니집에 인사를 하러 갔다. 할머니가 나를 보면 항상 말씀하시던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었다. 내가 태어날 때 엄마가 하혈을 많이 해서 죽을 뻔했다는 에피소드, 명절 때마다 내가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갔다는 이야기. 에피소드는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할머니 자신이 이제 84살이라고 여전히 경쾌하게 이야기하셨다.
할머니는 자주 아빠한테 전화하셔서 “오늘 예배 가야지”라고 이야기하신다고 했다. 오늘은 월요일인데도 “오늘 수요예배 가야지”라고 또 말씀하셨다.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치매 증상으로 더 이상 요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예배 가는 날을 꼬박꼬박 기억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헤어짐의 슬픔만이 결코 전부는 아니겠지만, 부디 할머니가 천국 가시는 날까지 늘 경쾌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매 순간이 예배인 천국이 가까이 온다는 것에 오히려 기쁨으로 행복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