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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Jul 29. 2023

떠나오니 혼자였다.

인생 첫 배낭여행의 첫 밤

아침 일찍 절로 눈이 떠졌다.


노파심에 자기 전 챙겨놓은 배낭을 여러 번 확인한 후 아버지 차를 타고 역에 도착…


분명 첫 배낭여행이 가지는 의미와 안전과 관련된 잔소리, 잔소리를 빙자한 걱정을 역으로 가는 반 시간 내내 길게도 늘어놓으셨던 걸로 기억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기억나는 것도 없다.


떠나기 전 마지막 한 마디, “잘 다녀오너라.”는 말만 기억하고파 여전히 남아있을 뿐.


돌이켜 보면, 기이하리 만치 차분했던 내 태도 뒤에는 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넘쳐 흘러버릴, 격랑을 담은 잔잔한 수면의 불안이, 둥그러니 넘실대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첫날 오후엔 개막전을 봤다.


7:2로 기분 좋게 승리했지만, 내 관심은 경기 중에 친구가 쏟은 떡볶이에 가 있었다.


노량진에서 부대찌개로 대충 저녁을 때웠나, 수개월 만의 만남에 밤이 떠나가라 술을 마셨나, 코인노래방에서 김동률의 노래를 불렀나, 이제는 기억의 퍼즐이 조각조각 섞여버려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엎질러진 떡볶이의 시뻘건 국물은 잔상으로 남아,  구일역 2번 출구에서 노량진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오를 때까지, 노량진에서 강남으로 넘어가는 검은 택시에 몸을 실을 때까지, 서울의 밤길을 배회하다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픽 쓰러져 잠들 때까지, 내 머릿속에서 넘실거렸다.


이유 모를 불안감에 취해 여러 번 깼다 자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 불안감이 떠나가지 못할, 아니, 결코 떠나보내지 않을 불안감,


여행지에서의 긴장임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숙취에 절여진 채 일어나 한남동으로 넘어가 독서기행의 첫 장을 열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북파크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울 요량이었으나,


어제의 안주가 충분치 않았던 건지 술이 과해 배가 또 다른 안주를 찾는 건지, 허기를 해결하고자 1층에 위치한 식당에서 난생처음 명란 파스타란 걸 먹었다.


가격은 비싸고 맛은 평범한데 사진은 잘 나오는 것이 전형적인 서울식 파스타라


그간 내가 먹어오던


가격은 싸고 맛은 괜찮은데 사진으론 안 담기는 부산식 국밥과는 괴리가 있었다.


인스타용 요리가 다 그런 식인 건가 싶은 무난하게 먹을 만한, 그럼에도 가격표를 보면 흠칫하게 되는 맛.



읽을 수는 없으나 관상용으론 제격인 책 거치대를 지나 층계를 올라가니 북파크가 나왔고



가만히 앉아 차 한 잔을 오래도록 기울이며, 당시 화제였던 파친코와 김초엽 작가가 쓴 지구 끝의 온실을 읽어나갔다.


북파크 옆에는 아이돌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연습실이 있었는데, 미적분도 못할 아이들이 벌써부터 꿈을 그리고 매일같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이룬 건 없으면서, 아니 오히려 없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마찬가지로 앞만 보고 달려 나가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어디 놓아도 예쁘다, 끼가 많다는 소리를 듣겠다는 점에서 범생이처럼 생겼다는 말을 듣던 나와는 결이 달랐지만…


휴식이 필요하다며 배낭 하나 챙겨 도망 나온 백수가 옆에서 책을 읽는 와중에도 저기 저 연습실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게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화장실 가는 길 옆, 벽에 붙은 수상경력 포스터와 데뷔 확정 문구는 경쟁과 생존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너무도 한국적이었기에.




책을 다 읽고 일어나 버스를 잡아타, 파주로 넘어갔다.


프로방스 마을 근처 모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장인이 만들었다는 국물 없는 우동을 맛보고, 해지는 프로방스 공원을 거닐다 들어오니 하늘이 새까매졌다.



빨간 네온사인이 일렁이고, 푸른 비상구 사인이 깜빡이는 모텔은 적막에 잠겨, 유독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4월의 평일 밤, 주차장에 들어서 있던 차 한 대마저 어디로 떠나,  3층 건물에 홀로 묵게 된 나는, 이내 방에 들어가, 괜히 리모컨을 한동안 만지작거리다, 방안을 가득 채운 내 숨소리가 거슬려, 귀마개를 꼈다.


귀마개를 끼니 평소보다 거칠게 맥동하는 심장이 거슬렸다.


창문마저 굳게 닫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방이 갑갑해 창문을 열자, 스산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휑한 거리에 듬성 놓인 가로등 두 개가 종잡을 수 없이 깜빡였다.


떠나오니, 철저히 혼자였다.


가끔 상경할 때면, 게스트하우스 등지에서 여러 번 홀로 밤을 보냈던 내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혼자일 것이라는, 내가 머무는 이곳에 나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니, 사람의 형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온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듯한 감각은 무섭도록 생경하게 다가왔다.


절로 눈이 감겨와 피곤해질 때까지,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으며, 친구와 통화했다. 집에서 걸려 온 전화는 안부 몇 마디만 주고받고 끊어버렸다.


나는 두려웠고, 불안한 동시에 그 감정을 홀로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압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선명한 숨소리와 거칠게 맥동하는 심장 소리는 커지고 더 커져,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나를 옭아매어 갔고, 이내, 밤이 애써 괜찮음을 가장하며, 들킬까 두려워 전화를 끊어대던 나를 집어삼켰다.


저 밑으로 꺼지도록 잠기고 또 잠겨, 이내 의식이 아득한 심연 너머로 내려앉을 때까지.


닫힌 방에서 나를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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