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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ug 01. 2023

그리스에서 온 체코 남자

뎨꾸이와 제꾸이, 감사합니다의 간극에서

그리스에서 온 체코 남자는 캄사합니다와 깜사합니다 중간의 무엇에 가까운 체코어를 구사했다.


뎨꾸이와 제꾸이.


원래 발음은 데꾸이와 졔꾸이 사이의 무엇이니 별 차이는 없으면서도, 체코 사람은 아니구나 짐작케 할 미묘한, 아 다르고 어 다른, ‘ – ‘ 가닥 하나 차이 나는 체코어를 구사했다.


그럼에도 뎨꾸이와 제꾸이의 차이보다 실질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 자신의 이름이었다.



여행을 위한 길잡이로 고용된, 막 50줄에 접어든 남자는 우리 모두를 처음 만난 날,


Vasilis라는 그렇게 길지도 않은 이름 대신 Vas라는 짧은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보스랑 발음이 비슷해서, 약칭을 좋아한 건지, 편의를 위했던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의 약칭 역시 Vas와 Boss 중간의 무엇에 가까워, 발음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때론 이름을 잃는 것.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였다.



처음 미국 땅에 발을 디딘 내가 체감하게 된 것은,


살인적인 물가도, 한국식 영어보다 곱절은 빠른 원어민의 발음도 아닌,


채현을 발음하는 방식이 그리도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채횬, 채연, 채훈, 채혼, 채, 현, 채헌, 차이현, 차횬, 등)


결국 그처럼 적당히 부를 수 있는 이름, 성인 LIM으로 불러달라며 현실과 타협한들 그마저도 LIN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으니,


 Vas와 Boss, 데꾸이와 졔꾸이, 아 다르고 어 다른, ‘ – ‘ 가닥 하나 차이 나는 그 간극에서 이름을 잃어버린 그의 모습에서 난 수많은 이름 사이에서 표류하던 나를 발견했다.



여하튼, 뜻만 전달되는 간단한 영어를 구사하던 그는 젊은 날 10년을 보낸 프라하에 가까워지자 부쩍 수다스러워졌다.


맥주의 질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프랑스는 최악의 국가가 틀림이 없다고 파리의 음주문화를 까 내리며, 동일한 이유로 벨기에와 독일, 그리고 체코를 예찬했다.


맥주에 대한 체코인의 무한한 사랑과, 지중해 와인에 대한 그리스인의 자부심, 그리고 체코의 만성적 알코올 소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고루 갖고 있던 그는,


괜찮은 식당을 추천해 달라는 내 말에 대뜸 아고라(Agora)라는 그리스 식당을 권유했다.


가서 특제 Zebra 요리를 먹어봐야 한다는 영문 모를 말 한마디를 던졌다.


체코에서 그리스 요리를 추천했던 그 남자는 과연 체코에서 제대로 살았나 싶어, 아니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자유에 대한 미국인의 무한한 사랑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대한 한국인의 자부심, 그리고 미국의 만성적 빈부격차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고루 갖고 있는 나는,



그리스인 남자의 권유를 무시한 채


동유럽의 복판, 프라하에서,

여느 관광객이 그러하듯, 맥주를 마시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한식을 찾아 먹었다.


스스로 오른 유학길에서 도망치듯 탈주해 유럽에서 한식을 찾아 먹는 난 과연 미국에서 제대로 살았나 싶어, 아니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가끔 그리운 고향과 가족 생각이 날 때면, 난 저 바다 너머, 머나먼, 대륙의 복판에서 한식을 찾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되지도 않는 한글 몇 글자를 노트에 끼적인다.


애써 한국인임을, 내가 떠나온 그곳에 여전히 머무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며 나를 어르기 위해, 어딘가 속해 있다며 달래기 위해,


그러다 길고 긴 방황 끝에 한국에 와서는

식당에서 찬물을 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물도 찬물도 아닌 Iced Water를 주문한다.



미국에 남으라는

가족과 친구의 조언을 무시한 채 난,

유럽으로 떠났고

그리 떠나 찾은 유럽에서는,

그리스인 남자의 권유를 무시한 채,

소주를 한 잔 걸쳤다.



새장을 벗어난 새는

새장이 새장이 아닌 안온한 집이었음을,

그리고, 두 곳에 정착할 수 없기에,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현실을 살아낸다.


그렇게 난 오늘도 역마살이 낄 때로 껴버린 삶의 궤적을 따라

어디까지나 겉돌 수밖에 없는 뎨꾸이와 제꾸이 사이의

‘ – ‘ 하나 달라 어중간한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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