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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ug 08. 2023

생떼의 나라

프랑스 파업, 시위, 폭동의 시사점

아니나 다를까 또 연착.


재수에 옴이라도 붙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평균 회귀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인지, 그간 연착되지 않았음을 책망이라도 하듯, 파리에서 코펜하겐으로 넘어가는 항공편에 이어 또 한 번  코펜하겐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항공편이 연착되었다.


(그 평균이 80%다…)



다만, 이번에는 변명거리가 확실한지, 스크린의 Delayed 문구 하나로 연착을 갈음하는 것이 아닌 승무원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크를 잡아,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 공항 인력이 부족해져 비행기가 연착되었음을 공지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대는지라, 아예 지하철에 파업을 반영한 시간표가 붙어 있는 나라. 연금 수령 시기를 2년만 늦추겠다 하니 1,000만 명의 국민이 4년 동안 들고 선 나라.


이탈리아 와인은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자국의 요리를 으뜸으로 치며, 영어를 이해함에도 종종 여행자들의 질문을 무시할 정도로 자국어에 대한 비틀린 자부심이 상당하고, 프랑스혁명으로 세상을 바꿨다는 사실에 어깨가 하늘에 닿을 듯이 올라가 있는 국민들이 똘똘 뭉쳐 사는 프랑스는


좋게 말하면, 변화의 나라, 혁명의 나라겠지만,


또 한 번의 연착을 겪은 여행자 입장에서는 파업의 나라, 폭동의 나라, 생떼의 나라일 뿐이다.


우선은 파업.


파업에 대한 문제를 보통 노동자에게서 찾으며, 귀족 노조라는 멸칭이 따로 존재하는 한국과 다르게 유럽에서 파업은 노동자의 일상 속에 이미 깊게 자리 잡아,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한국의 파업이 임금 문제에 초점을 맞춘 채 이뤄진다면, 유럽에서 목격한 파업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진행되는데, 비단 처우 개선, 임금 상승뿐만 아니라, 기업의 환경오염, 직장 내 LGBT 차별 등에 대한 불만으로도 일어난다. 물론 가장 주된 원인은 임금, 그리고 워라밸이다.


파업이라는 게 으레 사측 입장에서는 무리한 요구로 간주되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요구, 당연한 권리에 대한 주장이기에, 어디서나 그렇듯, 프랑스에서의 파업도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나,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파업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바로 그 빈번함에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말 그대로, 툭하면 파업한다.


잦은 파업으로 인한 기차 연착에 질려, 이렇게 파업을 자주 할 거면, 아예 파업 시기를 정해놓고 공지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하던 내가 무안해지게, 실제로 기차에 파업을 반영한 시간표가 붙어있을 정도이니.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프랑스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국인 여행자인 내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고작 해봐야 3분에 한 번씩 오던 지하철이 7분에 한 번 오는 수준이며, 공공기관을 방문해 서류를 처리할 것도,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회의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럼에도 내가 프랑스의 파업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것은 반쯤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반쯤은 말 그대로 이해가 불가능해서다.


< 5주 정도 된다. >


프랑스는 브라질과 더불어 가장 긴 휴가를 누리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기껏해야 2주 정도의 휴가를 즐기는, 아니 즐길 시간도 없어서 빽빽하게 계획을 짜고, 유럽이라도 가면 하루에 명소를 3군데씩 방문하며 전투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한국인과는 천지 차이. 삶의 여유란 걸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그 와중에도 개선을 외칠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워서, 질투심에 아니꼽다.


< 위키피디아 참조, 한국은 대놓고 며칠 밖에 못 쉬는 현실이 언급돼 있다. >


동시에 이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일자리에서 마주하는 문제들로 파업이 일어난다는 점은 이해하나, 애당초 전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사람들이 무슨 불만사항이 그리 많은지,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지. 한국 와서 아침저녁으로 지옥철도 경험하고, 나인 투 식스로 일한 후, 3, 4차에 걸쳐 이어지는 술자리라도 한 번 끌려가봐야 “아, 프랑스가 참 일하기 좋은 나라구나.”라고 자각이라도 하게 되는 걸까?


쉴 시간이 많으니, 일을 적게 할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해 볼 시간도 많은 것인지, 가장 많이 쉬면서 불만사항도 가장 많아 보이는 프랑스인들의 파업 행태는 모순적이다.




사실, 파업 자체는 약과에 불과하고, 파업에 꼭 뒤따르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시위다.


파업이 파업에서 그치면 파업이지만, 극성맞은 프랑스인들, 프랑스혁명을 계승하는 그들의 면모는 시위 혹은 더 나아가 폭동에서 가장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일부 프랑스인들이 하는 시위는 하고 싶어서 하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수령 연령을 2년 늦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혁을 추진했을 당시, 프랑스 친구 녀석의 인스타그램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을 비난하는 스토리가 올라왔다. 그 친구의 요지는 경찰이 시위대를 과잉 진압한다는 것.


요지 자체는 납득이 갔으나, 일차적으로 멀쩡한 상점 유리창을 깨부수는 폭도를 과잉 진압해야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경찰 역시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의 피해자일 텐데 왜 비난받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결국, 원인을 제공한 마크롱 대통령에게 화살을 겨눠야 문제가 해결이 되든 말든 할 텐데, 마크롱 대통령을 비난하는 스토리는 두 번 정도 올리고, 나머지는 경찰이 문제라는 내용, 혹은 경찰과 대치하는 시위대 영상을 찍은 후, “엿 먹어라. 짭새들아.”류의 글을 적어 올렸건 것으로 기억한다.


심하게 얘기하자면, 시위를 할 껀덕지를 찾아 도시를 쏘다니는 느낌이었으니…


요즘 진행되고 있는 시위는 경찰이 검문과정에서 무고한 17세 알제리계 소년에게 발포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는데, 그 시위 역시 소년의 할머니가 시위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할 정도로 변질돼 가고 있다.




이러한 프랑스의 상황을 한국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대입해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우선, 한국 경찰이 무고한 소년에게 발포할 일은 전무하므로, 연금 개혁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내가 아는 한국인들이라면, 시위를 하더라도 조금 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끝낼 것 같다.


코로나 당시를 생각해 보면, 개인의 자유 및 권리 보장을 부르짖었던 서구 사회와 달리, 합리적이다 판단되는 조치에 대한 사회적/집단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 아래, 우리 국민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었기에, 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개혁이 추진되면, 시위가 아예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보수/진보, 정책의 타당성을 막론하고 반대당이 하는 일이라면 물어뜯기 바쁜 사람들은 어떻게든 비난할 구석을 찾을 터이고, 넷상에서 지독한 키보드 배틀이 진행되겠지만, 어디까지나 사태가 폭력사태로 확산될 가능성은 0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딜 가나 선을 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시위의 목적 역시 변질되기 일쑤지만, 들을 사람 없는, 동조해 줄 사람 없는 시위는 결국 공허한 외침이기 마련이니까.




여하튼, 이러한 유구한 생떼의 전통을 가진 나라. 이 나라의 국민들은 만족을 모르는 모순 덩어리이자, 파업/폭동 전문가 같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야라 식량 걱정할 일 없고, 과거 아프리카에 찍찍 멋대로 그어놓은 줄들이 여전히 국경선 노릇을 할 정도의 국제적 위상을 보유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품(와인, 치즈)들과 문화유산 및 관광유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만족을 모르는 모습을 보면 부러운 건 둘째치고 기가 찬다.


있는 놈들이 더한다고.


< Statisca 참조. 각 국가별 GDP 대비 우크라이나 지원금 >


주요 국가 중 GDP 대비 우크라니아 전쟁 지원금 수가 약 30위, 0.05%로, 0.04%인 한국과 별 차이도 없으면서 목소리는 크게 내고, 난민 받기 싫어하기로는 둘째가 서러워하는 작태를 보면 꼴값을 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달까.


아무런 상관도 없는 편의점 창문을 깨부수고, 무작정 경찰 타도를 외치며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 3류 국가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UN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강대국, 이견의 여지가 없는 부강한 국가이다.


달리 말하면, 파업과 시위, 그리고 폭동이라는 렌즈로 프랑스를 판단함에 있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거나 오류가 있다는 말도 되겠다.


프랑스에서 파업은, 시위는, 폭동은, 곪을 대로 곪은 프랑스 사회의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창구라고 볼 수 있다.


이민자라는 뇌관을 이미 건드려 버린 국가의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변화의 창구이자, 동시에 새로운 가치관들이 사회에 자연스레 섞여들 수 있도록 돕는 자정의 창구라고나 할까.


여하튼, 프랑스인들은 프랑스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의 목이 잘려 나가는 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아니다 싶으면 엎고 마는 민족이다.


달리 말하면, 프랑스인들은 요구 사항을 제시하는데 거침이 없다.


과도한 이민을 경계하고 있음에도, 이민자 가정의 소년이 죽자 거리로 기꺼이 나서고, 세대, 남녀 갈등이 극심한 한국과 다르게 모든 세대가 한 마음 한 뜻으로, 2차 세계 대전부터 일궈온 연금 제도를 수호하려 한다.


연금을 통합할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질 부담과 부자 감세를 단행한 마크롱 대통령의 이중적인 작태를 비판하며, 우수한 제도를 자식 세대, 손주 세대가 누릴 수 있도록,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 방향이 옳았는지는 결국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다만 달리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회에서 프랑스는 적어도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며, 피해 가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고여 있다.


반(反) 이민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연금 개혁은 정권을 막론하고 대선 기간에만 나왔다 대선이 끝나면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쏙 얘기가 들어가 버린다.


한국이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킬 방법을 찾지 못해, 탄력적 근무제를 떠들어 대고 있는 와중에, 프랑스인들은 이미 이민자를 받아들인 후 발생한 사회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으며, 어찌 됐든 연금 개혁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그 방향성을 논의하고 있다.


생떼를 부린다는 표현.


정말로 엄한 가정에서 자란 게 아닌 이상, 어릴 적 생떼를 부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떼를 쓰고, 그 행위가 때때론 통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체험하며, 아이는 현실감각을 깨우치고, 요구하고 또 수용할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한다.


그러나 떼 쓸 줄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해왔던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어쩌면, 이제 따라가는 게 아닌 앞서 가야 할 상황 속에서 생떼 부릴 방법을 찾지 못해, 길을 잃고, 한 발 한 발 조금씩  뒤쳐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생떼를 부리지 못해, 수년 전의 옥시크린 사태부터 최근의 부실시공 논란에 있어 당연히 주장해야 할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포기하길 강요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여행자의 입장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 하나, 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위는 대부분의 경우 위험하지 않다.


화염병 날아가고 최루탄이 터지는 대치상황은 당연히 위험하며, 알아서 조심해야겠지만,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해당 지역으로의 여행을 굳이 취소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차적으로, 시위가 도시 전역에서 혹은 국가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고, 그 시위가 폭동을 동반한 시위인 경우도 드물며, 시위대의 타깃이 외국인이 되는 경우 역시 드물다. 이차적으로, 더럽든 무섭든 똥은 피해 가면 된다.


달리 말하면, 프랑스 제1구에서 일어나는 시위로 말미암아 기차로 1시간 거리인 베르사유 궁전 관광을 취소하거나, 에콰로드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갈라파고스 여행을 취소할 필요는 없다. (관광지는 관광지다.)


물론 시위는 으레 확산되기 마련이고, 확산되면 별의별 미친 사람들이 합류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에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언론 혹은 정부 기관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시위의 폭력성 및 위험을 강조하는 것일 터이다.


결국 여행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안전한 여행을 위한 기본이다.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과테말라 시티를 새벽 4시에 걸을 방법을 고민할 게 아니라, 애당초 걷지 않으면 되는 것처럼, 시위의 위험도를 잘 파악해서 (‘파악할 수 있다면’이라는 대전제가 붙고, 이게 안 된다면 안 가는 게 당연히 맞다.)  시위를 피해 다니면, 문제가 될 일은 거의 없다. 이 과정에서 SNS 해쉬태그 등을 활용해 참조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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